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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제2부-(사목헌장 46항-48항)
   함세웅 신부   2004-08-08 10:29:07 , 조회 : 1,810 , 추천 : 229

제2부의 긴박한 주제를 논하면서
(사목헌장46항)

제2부 서론인 46항은 무엇보다 혼인, 가정, 문화, 경제, 사회, 정치생활, 국제관계 등 이 모든 문제를 복음의 빛으로 바라보고 재해석해야 할 시대적 소명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성서라는 랜즈를 통해 이 모든 문제를 세밀히 진지하게 관찰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사목헌장은 무엇보다도 먼저 혼인과 가정의 존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혼인과 가정의 존엄은 바로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의 존엄과 품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걸작인 인간은 남녀로 창조되었고 이 남녀의 결합인 혼인은 그 자체로 신성하며 부부의 만남과 그 삶의 자리도 또한 거룩한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인격적 존재입니다. 이들이 함께 만나 사랑과 신의를 다짐하고 자녀를 낳아 이룩할 가정공동체는 바로 하느님의 반영이며 교회와 사회의 기본적 단위이며 모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극도의 이기심과 일그러진 성(性)인식과 성상품화로 인해 인격이 파괴되고 가정이 파탄에 빠지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에도 같은 징후가 있었지만 우리 시대는 참으로 소돔과 고모라의 부도덕성을 방불케 하는 참으로 윤리 도덕적으로 무질서한 현실입니다. 바로 이때문에도 우리는 더욱 인간의 존엄과 함께 혼인 그리고 가정의 존엄을 함께 확인하고 참으로 성숙한 가정문화를 이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현대세계의 혼인과 가정
(사목헌장 47항)

사목헌장은 무엇보다도 현실에 대한 사회적 진단과 신학적 반성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도 누구나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완성 그리고 보편적 구원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완성과 구원은 바로 개인의 성실한 삶 뿐아니라 건강한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혼인과 가정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이른바 결손가정의 문제점이 바로 역설적으로 가정의 고귀함을 말해주는 구체적 증거입니다. 사별 등 피치 못할 사정으로 결손가정이 된 경우, 우리는 그 가족과 자녀들을 인도주의적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사랑으로 돌보고 그들이 어려운 처지에서 그 난관을 극복하도록 돕고 또 이를 중 많은 이들은 건강한 가정의 자녀 못지 않게 참으로 아름답게 성장하는 좋은 경우를 우리는 목격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부부들의 갈등과 무책임으로 인해 가정이 파괴된 경우의 자녀들은 성장과정에서의 상처 때문에 대부분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잘못된 인격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엄연한 우리의 현실입니다. 최근 이혼율에 대한 통계는 약 30%였었는데 바로 1개월전의 통계는 40%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고 슬픈일 입니다. 역사적으로 결혼과 가정의 존엄이 일그러진 현상은 다처주의와 남성들에게 사실상 허용된 외도문화, 곧 가부장적 문화를 손꼽을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가부장적 문화권에서는 남성들의 외도는 이해되고 여성들의 외도만 문제삼는 불평등한 문화구조였습니다. 그리고 서유럽을 통해 밀어닥친 성개방, 방임주의 등이 가정을 파괴할 뿐 아니라 청소년들까지도 해롭게 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또한 요사이 영화, 연극, 영상문화, 인터넷 등을 통하여 무분별하게 보급되고 독버섯처럼 뿌리내린 성상품화와 음란물은 인간성을 상실케 합니다. 이것은 모두 개인주의, 이기주의, 향락주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동물적 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성과 의지를 통한 절제와 극기를 통해 이 동물적 본능을 제재하며 정신적으로 함께 성숙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시대의 경제와 상업문화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고 목적을 이루고자하는 철저한 이기적 사고방식과 물질 소유욕만이 지배하고 있기에 우리는 모두 부지불식간에 이 현대적 사조에 말려들고 있습니다. 개인은 물론 공동체 그리고 교회공동체 안에도 이러한 영향이 무섭게 스며들고 있습니다. 황금만능주의, 동물적 본능주의, 무책임한 성방임주의 등 이 모든 것이 사실 현대판의 우상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건전한 사고와 의지적 결단 그리고 인격적 수양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실된 믿음으로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타파해야 합니다.
더구나 국가정책상 인구조절을 위해 권장하는 인공피임에 따라 그 본 의도와는 다르게 상상도 못할 일탈된 결과가 생기기도 합니다. 제한된 공간, 좁은 영토에 살고 있기에 우리는 사회적 책무와 함께 각자 그리고 부부가 함께 합의하여 자녀수를 조절하고 제한할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은 인간적, 상식적, 그리고 윤리적, 도덕적 범주 내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따라서 인공피임과 낙태 등 인간의 생명을 위해하고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방법은 우리가 모두 철저하게 배격해야 합니다. 인공피임과 낙태 등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뿐아니라 여성들에게는 목숨까지도 해칠 수 있는 무모한 일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교회공동체는 부부가 합의하고 절제하여 자연주기법과 함께 점액관찰법 등을 잘 이용하면서 건강하고 성숙한 부부생활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이 오늘날 우리가 고민해야 할 과제들입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욱 빛나지 않습니까? 인간성이 상실되고 인간이 자기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이러한 현실일수록 우리는 더욱더 가정의 존엄과 혼인의 가치를 돋보이게 해야 합니다. 따라서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현실에서도 더욱 빛나는 가정을 이룩함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목헌장은 혼인과 가정의 신성성, 부부애, 혼인의 결실, 생명의 존엄성 등의 가치실현을 위한 인간의 보편적 책무 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혼인과 가정의 신성성 (1)
(사목헌장48항)

혼인은 하나의 계약입니다. 계약은 쌍방이 동등한 관계에서 맺는 약속입니다. 약속에는 필연적으로 신의와 사랑이 전재되어야 합니다. 신의는 인격 판단의 결정적 기준입니다. 신의가 없는 사람은 불성실한 사람입니다. 무릇 계약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에 따라 보충, 수정, 연기, 취소 등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결론의 계약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한번의 약속으로 한 평생 신의와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이 혼인의 불가해소성입니다. 한번의 약속으로 평생을 책임짓는 혼인, 바로 여기에 혼인의 위대함과 가치가 있습니다. 혼인의 유일회적 의미입니다. 사실, 사람이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른 핵심적 가치중의 하나가 바로 이 혼인입니다. 혼인, 남녀가 서로 인격을 기초로 사랑과 신의를 전제로 한평생동안 성실한 삶을 살겠다는 공개적 약속이며 선언입니다. 사람이 만일 신의를 저버린다면 그것은 인격에 대한 상실과 같은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결혼을 통해 부부는 성서말씀과 같이 참으로 한마음 한몸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부부의 결합은 창세기에 언급된 대로 부부일심동체를 말한다.(창세2.24) 어쨌든 사람은 만물의 영장으로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플라톤은 그의 작품〈향연〉에서 본래 사람은 남녀합체의 존재로 창조되었는데 사람이 제우스(Zeus)신에게 반기를 들자 이에 당황한 제우스신이 남녀합체인 사람의 존재를 남자와 여자로 분리시켜 갈라놓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자와 여자는 본래 한 존재였기에 서로 합하려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성(異性)에 대한 이끌림은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은 나름대로 남녀의 본성을 신화적 설명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성서도 또한 아담의 갈빗대를 자료로 여자를 창조했다는 창세기2장의 설화도 이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플라톤의〈향연〉이나 창세기의 남녀창조설화는 어쨌든 남녀의 합일과 사랑, 그 이끌림에 대한 시대적 해석이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다 이성에 대한 본능적 원욕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남녀가 서로 합할 때 인격을 완성한다는 결론의 가치를 암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자와 여자는 개별적으로 완전한 존재이지만 남자와 여자는 상대적으로는 불완전하며 상호의존 그리고 상호보완적 존재이다. 결론은 바로 보완을 통해 인간을 성숙한 경지에로 이끄는 자연적 배려이며 하느님의 섭리이다. 사실 자연의 모든 원리는 음과 양의 합에 의해 생명이 지속된다. 사람이외의 모든 것은 자연원리로 가능하지만 사람은 자유의지의 선택으로 가능하다. 여기에 인격성과 아름다움이 있다. 따라서 사람은 서로 연대하여 살아야 한다. 사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다. 홀로 살 수 없고 함께 사는 사회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가정제도이다. 남녀의 결합은 부모와 가정을 떠나 새로운 삶을 이루는 개척과 창조에 있다. 이와같이 사랑이란 늘 타자를 통해 타자 안에서 확인된다. 결론은 자기중심의 이기적 영역을 넘어 늘 타자를 확인하고 고백하는 과정이다. 이와 같이 일치에로 향하고, 일치실현이 행복의 지름길이며 결론은 바로 배우자에게 전적 봉헌을 통해서 나를 실현하는 사랑의 극치다. 혼인이 바로 사랑의 가시적 표현이며 징표이다. 그런데 이들의 합일에는 늘 자유와 책임 수반되어있다. 그 책임은 신의와 사랑이며 자녀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다. 역사상 사람은 여러 단계를 통해 오늘의 문화를 이루고 있지만 사실상 부부의 사랑에 가장 적합한 것은 일부일처의 삶이다. 성서와 교회공동체가 오늘날 일부일처제를 결혼의 핵심과 본질로 선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아직 미숙한 원시단계에서 사람은 혼혼, 근친혼, 군혼, 일처다부제, 일부다처제 등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왔다. 가정과 가설에는 실제로 그 흔적이 있지만 남녀의 인격을 기초로 가장 이상적 관계는 1부1처제이다.
따라서 성서와 사목헌장은 부부의 관계를 하느님과 이스라엘,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의 관계와 충실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때문에 부부의 만남과 혼인은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이다. 부부의 합일은 곧 하늘과 땅 하느님과 인간합일 나타내는 가장 권위있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혼인을 축복의 성사로 드높이고 기억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부부는 가정의 핵심이며 동시에 자녀들을 위해 모범적 삶으로 가정자체가 교회의 기초가 된다. 자녀들을 위한 부모의 현실과 교육은 그 자체로 성스러운 임무이다.
가정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사회의 원리를 체득한다. 건강한 가정이 건강한 사회와 교회의 기초가 됨을 바로 이 때문이다.
가정안에는 물론 가족??서로 도와주고 보완해야 한다. 혼인의 원리가 타자를 확인하는 것이라면 이제는 나아가 다른 가정의 존재와 행복을 확인하고 함께 협조해야 한다. 건강한 가정들의 존재와 연대가 바로 건강한 사회와 교회 공동체를 이루기 때문이다. 부부의 임무를 에페소서는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한다고 합니다. 순종이란 기울여 듣는다는 뜻이다. 둘이 함께 하는 공동체에서 아내는 남편의 말에 귀 기울이란 그 말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한편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때 사랑은 남편을 자기 아내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결단을 지니라는 뜻이다.


혼인과 가정의 신성성 (2)
(사목헌장48항)

함 세 웅
혼인의 신성성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을 위하여 각 교구는 혼인교리 이수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혼인교리를 통해 젊은이들이 결혼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하고 인생의 근본목적과 특히 결혼이 지닌 인격적 가치와 하느님과 맺는 일치와 사랑의 관계를 깊이 깨닫고 확인하기 위해섭니다. 이를 우리는 혼인신학, 부부신학, 가정신학이라고 부릅니다. 가끔 보도를 통해 듣습니다만 한국의 경우 이혼율이 급증하여 얼마전까지만 해도 30%라고 하더니 바로 두달 전부터는 40%라는 것입니다. 열쌍의 부부 중 네 쌍의 부부가 이혼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혼인교리 과정은 교구와 본당에 따라 다소 융통성 있게 운영되고 있지만 그 기본 골격은 똑 같습니다. 1960년대 이전에는 혼인의 목적을 ①자녀 출산 ②부부사랑 ③자녀교육 이라는 도식으로 설명했지만 오늘날에는 ①부부사랑 ②자녀출산과 교육이라는 순서로 혼인의 핵심이 부부사랑에 있음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혼인교리는 일반적으로 이 원리를 전제로 ①부부생활과 자녀출산 ②부부생활의 갈등과 그 극복방법 ③혼인의 핵심과 본질 등을 논하고 있습니다.
점액관찰법
따라서 보통 첫 시간에는 자녀 출산에 대한 부부의 책무를 주제로 남녀의 신체적 구조와 심리적 차이, 임신과 출산과정, 무엇보다도 인간 생명의 존엄을 확인하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인공중절은 불가함을 가르칩니다. 사실 식물과 동물의 경우에는 암수의 결합이 거의 자연적 또는 본능적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에는 본능과 함께 인격적 선택이라는 두가지 법칙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생명의 전수라는 자연원칙은 남녀의 결합이란 물리적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남녀의 결합은 동물의 결합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격적 선택과 사랑이 전제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잘 아는 바와 같이 동물들은 발정기때에만 암수컷이 결합되며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유롭게 모든 시간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유성에는 늘 큰 책임이 따릅니다. 곧 자유와 절제를 통해서만 성숙됩니다. 이것이 부부가 지녀야 할 덕성입니다.
오늘날 모든 부부들이 자녀를 하나 또는 많아야 둘 정도만 출산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본의든 아니든 누구나 피임을 합니다. 여기서 교회는 자녀의 수를 결정하는 것은 부모의 권리와 책임이지만 늘 생명의 고귀함을 전제로 하느님께 기도하며 결정하도록 강조합니다. 사실 자녀는 부부사랑의 결실이며 하느님의 큰 축복입니다. 어쨌든 피임의 경우 자연적피임과 인위적 피임이 있습니다. 교회는 어떠한 경우에도 인위적 피임은 불가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위적 피임은 약물, 도구, 수술 등 일체의 인공적 행위를 말하고 있으며 이것은 사전(事前)피임과 사후(事後)피임으로 구별됩니다. 사후피임에는 인공중절 곧 낙태라는 살인과 같은 윤리적 큰 죄를 동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쨌든 교회는 모든 인위적 피임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경우 약물복용 등으로 인한 뜻밖의 부작용과 함께 기형아 등의 출산, 여성의 심각한 건강악화 등도 초래합니다. 때문에 교회 공동체는 자연피임 곧 자연주기법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자연주기법이란 여성들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듯이 매달 한번의 배란기에 부부생활을 절제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 사람에 따라 또는 건강상태에 따라 주기가 일정치 않기에 불확실하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에 학자들은 오늘날 “점액 관찰법”이라는 보다 과학적 경험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매일 자신의 체온과 몸을 관찰하면 평상시의 체온보다 여성들의 경우 2도 이상 상승하는 4-5일간이 바로 배란기라는 것입니다. 이때에는 여성의 몸(질)에 점액이 생깁니다. 이때에 부부생활을 절제하면 임신을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죽이고 상대방을 수렴하는 삶
두 번째 과정은 부모세대의 선배 부부들의 체험을 듣는 시간입니다. 십인십색이라는 말과 같이 각 사람의 삶과 양식은 다르게 마련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삶에는 공유적 가치 곧 공통점도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희망과 좌절, 건강과 질병, 선과 악, 사랑과 증오, 갈등과 화해 등 여러 교차되는 요소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부의 삶에는 그 살아온 날만큼의 변화무쌍한 여러 사건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부부는 누구나 다 한때 열렬히 사랑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줄 정도의 열애기가 있고 그리고 결혼한 몇해 뒤에는 거의 필연적으로 냉담기, 권태기 등 갈등의 시기가 수반됩니다. 그리고 다시 원자리에로의 회복 곧 화해와 성숙의 단계로 되돌아옵니다. 물론 갈등이 없는 이상적 부부도 있겠지만 이것은 극히 예외적입니다. 어쨌든 문제는 이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갈등 극복의 비결이란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원리, 사랑의 원리입니다. 나를 죽이고 상대방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나를 완전히 내어주고 상대방과 동화하는 일입니다. 결혼한 부부사이에는 결코 “나”라는 이기적 존재가 우선해서는 안됩니다. 부부적 삶의 원리는 오직 상대방을 위한 자세가 기본이며 핵심입니다. 사실 갈등과 다툼의 원인을 캐어보면 작은 일, 하찮은 일에서 시작됩니다. 때문에 부부는 늘 결혼 때의 약속과 다짐 그때의 사랑과 신의를 되새기며 이 갈등을 풀어야 합니다. 특히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은 엄청납니다. 그 누구도 자기가 원하여 이 세상에 스스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의 만남과 부부의 사랑으로 자녀가 출생됩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의 존재가 바로 부부 사랑의 뿌리를 찾아주고 그 원자리를 묶어주는 계기입니다. 각 부부들은 나름대로의 심각한 고민과 갈등을 지니고 있지만 이것은 결국 자신의 처지에서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한다면 모든 갈등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비가 온 뒤에 땅이 더욱 굳어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부부의 다툼과 갈등도 이와 같이 때로는 땅을 적시는 단비 구실을 할 때도 있습니다. 늘 부부 서로 여유 있는 대화와 유머감각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할분담 그리고 함께 해야 한다는 협력과 일치의 관계 속에서 자녀를 바라보고 생각한다면 이 갈등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사실 부부들의 얘기를 듣노라면 각 가정마다 나름대로의 어려움과 갈등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갈등과 문제 앞에서 우리가 어떠한 자세를 취하느냐 입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의 결과라는 적극적 사고로 우리는 모든 갈등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부부에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자세입니다. 그 자체가 갈등해소의 첫 걸음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쌍방적, 상호적이라는 것입니다. 서로 듣고 서로 양보하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결혼의 본질과 핵심은 바로 이 “서로”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있습니다. 사실 먹구름이 걷치면 아름다운 하늘, 빛나는 태양의 기쁜 날이 오지 않습니까? 날씨도 일년 열두달 매일 다르지 않습니까? 날씨의 신비가 곧 부부의 신비입니다. 성녀 소화데레사도 가르멜 수도원에서 나름대로 갈등을 체험할 때가 있었는데 하느님이 전혀 계시지 않는 듯한 암흑의 체험시기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어둡고, 절망입니다. 이때 소화데레사는 하늘을 보고 날씨를 보며 기다리는 지혜를 배웠습니다. 매일이 궂은날, 구름 낀 날, 폭풍우가 치는 무서운 날일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끈질기게 기다리노라면 언젠가 밝은 태양이 빛날 그 날이 꼭 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선배부부는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도 고백하며 후배들이 같은 우를 반복치 않고 선배들의 부끄러운 삶을 능가하도록 자신의 모든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용기 있는 아름다운 증언들입니다.
본능과 절제, 신의와 사랑
세번째 시간은 바로 본의적 의미에서 혼인교리입니다. 사목헌장이 말하는 결혼과 가정의 신성성이 바로 이것입니다. 결혼의 신성성은 바로 생명의 존엄성에 기초합니다. 사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사람은 누구나 이성(異姓)에 이끌리는 본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본능대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 본능을 절제하고 자제해야 합니다. 때문에 남녀의 만남과 고귀한 사랑은 본능에 기초하되 그 본능을 인격적 선택과 도덕적 가치로 조절해야 합니다. 따라서 결혼이란 바로 본능과 절제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약속, 계약입니다. 혼인은 무엇보다도 남녀가 자신의 인격을 걸고 한평생동안 어떠한 경우에도 서로 사랑하고 신의를 지키며 서로 존경할 것을 약속하는 봉헌의 결단입니다. 약속과 계약에는 꼭 신의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신의는 인간의 가치판단의 핵심적 기준입니다. 신의는 바로 인격의 본질입니다. 신의는 부부 서로 또는 친구 그리고 인간사이에 맺어지는 믿음과 사랑의 극치입니다. 신의는 인간관계의 생명입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 현실, 특히 상거래에 있어서 사람은 신용이 있어야 합니다. 신용불량자는 사회공동체에서 외면당하여 일체의 금융거래 자격을 상실합니다. 신용불량자는 그 사회에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제명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께 대해 사랑과 충성과 다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예언자들과 순교자들은 하느님을 위하여 자신의 전 존재를 봉헌하며 참으로 철저한 삶을 삽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희생을 우리는 신앙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신의(信義), 신용(信用), 신앙(信仰)은 모두 인격과 양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인간과의 관계, 상거래,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이 믿음(信)입니다. 곧 이 셋은 상통된 가치이며 바로 하나에서 연유됩니다.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는 신앙인은 사회공동체에서 모범이 될 뿐아니라 모든 면에 있어서 양심을 따라 살고 참으로 모든 이에게 신용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참신앙이란 친구들과의 신의이며 부부와 가정 생활에 있어서도 성실과 신의입니다.  부부 사랑의 신의는 바로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차원과 똑같아야 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삶은 절대적입니다. 여기에는 그 어떠한 변칙이나 예외가 없습니다. 부부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부부는 서로의 인격 안에서 자신의 생각, 바람, 원의 등 모든 것을 배우자를 위하여 살겠다고 다짐했기에 모든 경우에 늘 배우자가 우선해야 합니다. 결혼이란 이와 같이 이제까지 자기중심으로 살아온 삶의 양식에서 배우자를 위하여 배우자 중심으로 살겠다는 삶의 새로은 전환입니다. 결혼은 참으로 제2의 세례, 제2의 회개이기도 합니다. 제1의 회개인 세례가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고 하느님께로 향하는 결단인 것과 같이 혼인의 삶도 끊임없이 배우자 중심으로 살겠다는 삶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무릇 선택에는 희생과 끊음 곧 단절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결혼 전에는 누구든지 그 어떤이를 배우자로 선택할 권리와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 권리 행사는 결혼을 통해 끝납니다. 결혼이란 바로 나의 남편과 나의 아내 외에는 모든 남자와 여자를 끊어버리겠다는 엄청난 결단입니다. 때문에 어느 신학자는 혼인을 바로 수도자들과 사제들의 서원약속에 비유했습니다. 말하자면 배우자의 선택은 바로 하느님 앞에서 행한 서원이라는 것입니다.
서로 듣고 내어주는 삶
결혼은 사랑의 약속입니다. 에페소서 5,22-25의 말씀은 부부에 대해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 구절은 21세기 남녀 평등의 시대에 다소 껄끄럽게 들립니다. 그러나 그 말씀의 어원을 캐어보면 순명과 사랑은 바로 같은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성서는 여성에게 순종을 요청합니다. 순종(obedientia)이란 어원적으로 귀 기울여 듣다(ob-audire)는 말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사실 두 사람이 동시에 말하면 의사소통이 불가능합니다. 누군가가 말할 때 상대방은 들어야 합니다. 성서는 아내의 역할이랄까 특징을 귀기울여 들으라는 뜻에서 순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실 사람의 신의와 사랑은 의사가 소통되는 가운데서 자라고 확인됩니다. 그렇다면 아내란 누구인가 라는 물음 앞에서 성서적으로 정의한다면 아내란 한평생 끊임없이 남편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그의 뜻을 감지하고 그 말을 귀담아 듣는 존재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상담의 기본입니다. 잘 들어 주면 문제 자체가 해결되며 새로운 은총의 힘을 얻습니다. 이에 대한 남편의 응답은 사랑입니다.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서에서 말하는 사랑(Agape)의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은 자신을 내어주는 전적 봉헌으로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1요한4,10). 그 사랑은 바로 철저한 헌신으로 부모가 자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는 그러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에는 그 어떤 계산이나 조건이 없습니다. 참으로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사랑의 귀감이며 모범입니다. 이러한 사랑으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때의 사랑은 바로 남편은 한평생 동안 끊임없이 아내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다는 약속이며 선언입니다. 남편의 말을 귀담아 듣는 자세(순종)와 아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남편의 결단(사랑), 이 둘이 한짝이 되어 이룩되는 삶이 바로 부부의 삶, 결혼의 삶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결혼은 신성합니다. 혼인은 바로 신앙과 사랑 그리고 충성의 서약이기 때문입니다.
혼인의 불가해소성
교회공동체는 원칙적으로 부부의 약속과 혼인의 계약을 절대로 취소하거나 변경할 수 없는 것이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결혼의 불가해소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결혼은 절대로 취소할 수 없는 절대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불가해소의 원리가 바로 부부의 사랑과 신의 그리고 가정을 지키는 보호막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결혼서약에 충실치 못한 채 이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에 교회는 이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로 새로운 기회와 신앙생활의 계기를 준다는 뜻에서 예외적이지만 사실상 이혼을 추인하는 식으로 교회공동체내의 가정법원을 통해 혼인무효선언을 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혼인의 불가해소성의 원리는 어쩔 수 없이 상대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번 약속을 평생토록 지켜야 한다는 이 충실성은 늘 변함이 없습니다.
다음은 서로 존경해야 합니다. 부부의 만남은 그 자체가 축복이며 하느님의 은혜입니다. 배우자의 인격 안에서 부모의 모습을 읽고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의 고귀함을 직시하여 살면서 서로 길잡이가 되어 서로 닮아가면서 배우자 안에서 자신의 참 모습을 키워야 합니다. 부부는 늘 함께 존재합니다. 결코 독자적 존재가 아닙니다. 부부는 늘 배우자에게 종속된 존재로 둘이 함께 생활할때에만 완전한 존재라는 것이 확인됩니다. 부부일심동체라 하지 않습니까? 따라서 배우자에 대한 존경은 바로 자신에 대한 존경입니다. 이 점은 특히 유교배경의 가부장적 문화권 속에서 살고 있는 한국의 남성들이 크게 깨닫고 실천해야 할 내용입니다.
사목헌장은 바로 이러한 혼인의 신성성을 기초로, 부부의 사랑과 가정의 고귀함이 바로 사랑의 귀감이기에 성서에서는 하느님과-이스라엘, 하느님과 인류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와 교회 예수그리스도와 신앙인의 관계를 마치 부부사랑의 관계 그리고 가정의 관계에서 설명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결혼과 가정은 하느님과의 사랑을 깨닫고 터득하는 기준이며 출발점임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가정은 바로 하느님의 집이며 신앙의 교육장입니다. 부모들이 기도생활의 모범이 되어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자녀들은 부모를 마치 하느님을 공경하듯 모셔야 합니다. 가정은 바로 부모님의 사랑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터득하는 신앙과 사랑의 학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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