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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사목헌장 53항 - 문화에 대한 교회의 새로운 이해
   함세웅 신부   2004-10-29 10:03:15 , 조회 : 2,278 , 추천 : 299

제2부 2장 문화 발전의 촉진
- 문화에 대한 교회의 새로운 이해(53항) -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무엇보다도 세상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고자 노력한 사목적 공의회입니다. 사실 사목헌장 머리말에서 이미 확인했듯이 세상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바로 교회에 대한 관심과 사랑입니다. 세상과 교회는 결코 별개의 이질적 존재가 아닌 이미 하느님께로부터 함께 창조된 한 실체로서 그 역할만 다를 뿐입니다. 말하자면 세상은 교회의 바탕이며 발판으로 세상은 교회를 통해 변모되고 교회 안에서 성화의 계기를 갖게 됩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바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핵심입니다. 세상은 결코 더 이상 배척해야할 삼구(三仇)와 같은 대상이 아닌 바로 우리 교회 삶의 자리입니다. 왜냐하면 그 세상 한가운데에 교회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과 교회는 하느님 안에 깊이 일치되어 있습니다. 이때 세상은 바로 인류를 포함한 그 모든 삶의 양식과 존재 등을 지칭합니다.

  아죠르나멘또 - 신앙의 일상화, 문화에의 관심

  세상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이해를 요한 23세는 강론 중 아죠르나멘또(Aggiornamento)라고 표현했습니다. 영어로는 up to date로 번역됩니다. 일본어로는 현대화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현대화란 'Modernization'의 번역이니 아죠르나멘또를 현대화로 번역한 것은 아무리 의역이라 해도 일그러진 해석입니다. 아죠르나멘또는 어원적으로 볼 때에나 영어의 번역을 참고하면 우리말로는 오히려 일상화(日常化)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일상화, 신앙의 일상화, 이것이 바로 세상을 껴안고 세상 안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아름답고 철저한 봉헌의 삶입니다.
  사실 신앙이란 매일 매일 새롭게 결단하고 선택하는 또 새롭게 시작하면서 일상의 모든 삶을 하느님 안에서 재해석하고 그 의미를 찾고 하느님께 봉헌하는 삶입니다. 신앙의 일상화는 바로 일상의 신앙생활이며 작업입니다. 이보다 더 큰 봉헌과 다짐이 있겠습니까? 매일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정리하고 다짐하는 것이 바로 신앙의 귀감입니다.
  사실 어원적으로 '아죠르나멘또'는 다가간다는 라틴어의 'ad' 이태리어의 'a' 영어의 'to'와 같은 전치사와 매일을 지칭하는 이태리어의 'giorno' 영어의 'date'와의 합성어입니다. 아죠르나멘또란 매일 다가가고 매일 적응하는 일입니다. 매일 적응한다는 것은 필요하다면 모임의 장소를 옮기고 새롭게 회의를 시작한다는 뜻도 됩니다. 이태리어만의 이 독특한 뜻을 사실 외국어로 그대로 번역할 수 없어 이제는 아죠르나멘또가 바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특징적 용어가 되었고 우리에게도 이제는 교회 내에서는 적어도 외래어로 정착된 셈입니다.
  이와 같이 아죠르나멘또는 본질적으로 움직임과 변화를 전제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기존의 가치와 장소에서 머무르지 않고 뭔가 새로운 것을 찾고 실현하는 인간의 삶 자체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우리네 속담이 바로 아죠르나멘또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일상화, 신앙이 성당 안에서 기도중의 다짐만이 아닌 일상생활 속에서 세상의 삶 한가운데서 실천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때 교회공동체는 신자 개개인의 변화를 통해 엄청난 폭팔력을 지닌 성령의 새로운 힘에 기초한 참으로 신선한 공동체로 거듭 태어날 것입니다.

  사목헌장의 전체적 구성

  세상을 언급하면서 사목헌장은 제1부에서 무엇보다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 공동체의 가치, 그 우주적차원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 안에서의 교회공동체의 소명을 이론적으로 다루었고 제2부에서는 긴급한 과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곧 가정, 문화, 경제, 사회, 정치, 세계평화를 논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의 삶의 구체적 자리는 가정입니다.
  우리는 제2부 1장에서 가정의 중요성과 신성성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2장에서 우리는 문화를 고찰합니다. 말하자면 제1부 4장에서 언급한 세상 안에서의 교회의 사명을 제2부에서는 구체적으로 문화, 경제, 사회, 정치, 세계문화의 주제로 세분하여 논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가정입니다. 가정을 먼저 논한 뒤 그 다음에 문화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문화란 경제, 사회, 정치, 세계평화 등 모든 것을 포괄합니다.
여기서 문화는 변모하는 세상, 진전하는 세상과 사람들의 삶을 말하며 또한 세상 안에 사는 인간의 변모되고 진전하는 삶의 양식 일체를 말합니다. 물론 가정도 문화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교회와 복음선교, 그리고 문화(文化)와 문화화(文化化)

  오늘날 세상에 대한 교회의 선교적 소명과 실천을 우리는 토착화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토착화란 표현 그대로 그 땅에 뿌리내린다는 의미에서 'indigenizatio'라고 합니다. 그런데 토착화란 말 그대로 땅에 뿌리내린다는 한자식의 표현과 원주민화라는 그 본래의 고정적 의미 때문에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은 토착화란 표현보다는 오히려 문화화(inculturalizatio)라는 표현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문화화란 그 문화 속에 젖어든다는 의미에서 문화적 동화를 뜻합니다. 문화와의 합일과 일치가 바로 토착화이며 그리스도의 강생 또는 육화를 가장 잘 들어내는 것으로 그 민족의 현실과 삶에 뿌리박고 새롭게 태어나야 할 교회공동체의 구원 사명과 의무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입니다. 때문에 문화화란 바로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의 본질적 요소이기도 합니다.
  문화란 바로 세상 안에 펼쳐진 인간의 총체적 삶을 뜻합니다. 그 문화를 수용하고 그 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그 문화와 함께 하는 동화의 과정이 바로 토착화이며 이 때문에 땅에 뿌리를 내린다는 토착화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삶과 조건에 기초하고 동화한다는 뜻에서 문화화란 말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사실 토착화든 문화화든 그 근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조건을 취하시고 인간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강생의 신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강생이 바로 토착화와 문화화의 근거이며 예수께서 선택하시고 찾아오신 이 세상과 인간의 조건 그리고 그 모든 삶과 문화가 우리 교회의 일차적 관심임은 더욱 자명한 일입니다. 교회는 바로 그리스도 삶의 재현이고 반복이기 때문입니다.

  문화와 문화인

  사목헌장은 문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문화(cultura)란 어원적으로 라틴어의 "밭을 갈다"(colere → cultura)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따라서 문화란 바로 자연환경에 적응해 보다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며 자연 속에서 뭔가를 생산하고 이루어내는 삶의 총체적 결실을 뜻합니다. 자연을 응용하여 삶을 영위하는 인간의 문화는 필연적으로 진전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문화란 바로 인간의 삶 자체이기도합니다. 이것이 바로 문화에 대한 광의적 해석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문화인이며 문화를 형성해 나가는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일반적 넓은 의미의 문화를 본의적 의미에서 압축하고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먹고 사는 인간의 본능인 안전 욕구 다음에 추구하는 가치 곧 수용 욕구와 자존 욕구 실현을 위해 서로 양보하고 협조하고 인내하며 공동의 가치를 지향하고 형성합니다. 이것이 문화입니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교육과 수련 또는 단련이 요구됩니다. 따라서 문화란 단순한 삶을 넘어 수양의 결과로 얻어지는 교양, 인품, 인격형성의 요소입니다. 때문에 여기서 문화 개념은 인간의 본능적 곧 동물적 욕구를 넘어선 정신적, 도덕적 가치 충족의 삶을 지향합니다. 문화인이란 표현이 바로 여기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문화에는 본능적 욕구에서 출발한 인간이 상조 협조를 통해 연대적 가치를 확인하며 보다 아름다운 삶의 양식을 추구하는 일체의 노력을 포함하여 사람이 이룩한 결실과 그 결실을 기초로 끊임없이 진전해 나아가는 총체적 생활상을 뜻합니다.
  이와 같이 광의적 의미의 문화는 일반적 삶 전체를 말하며 보다 구체적이며 본의적 의미의 문화는 일종의 공유적 가치를 통해 형성된 절제된 삶의 양식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고대문화, 중세문화, 현대문화를 구별하고 나아가 지역을 중심으로 서양문화, 동양문화, 유럽문화, 아시아문화 또는 세부적으로 고대의 이집트문화, 그리스문화 그리고 중세문화 또는 한국문화 등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문화는 필연적으로 역사적 요소와 사회적 요소를 포함하며 나아가 사회학적 그리고 민속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의 삶은 역사의 발전과 문화의 진전을 통해 자연을 경작하고 이용하는 그 과정 속에서 그리고 일정한 생활양식과 관습을 통해 많은 것을 이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만 하더라도,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현대 생활양식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화의 핵심적 맥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고유 문화 안에도 주변국의 영향과 많은 이질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문화란 복합적 요소를 지닌 한 시대의 삶의 양식입니다.

  문화를 이루는 기본적 요소

  여기서 문화를 이루는 기본적 요소를 고찰하면 첫째, 언어의 공유입니다. 언어 곧 말이라는 의사 소통의 방법으로 그 민족, 그 문화의 고유한 영역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사상이 형성됩니다. 둘째, 종교적 요소입니다. 출생, 결혼, 장례 등 인간의 삶의 과정에 나타난 기본적 단계에는 꼭 종교성이 함께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 문화는 그 지역의 특성 곧 기후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지정학적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화의 다양성은 필연적이며 십인십색입니다. 사실, 사물의 이용 방법, 노동, 자기 표현, 종교적 행업, 입법과 제도, 학문과 예술의 발전, 미의 발굴 등 삶의 다양한 양식에 따라 문화는 다양하게 마련입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삶의 과정 속에서 나름대로 관습, 관행과 전통이 형성됩니다. 전통이 바로 문화의 기둥입니다. 문화는 생동적이며 진전하게 마련이므로 역동성을 지닙니다. 그리고 문화는 서로 진전하면서 부딪히고 교류합니다. 문화는 또한 흡수하고 흡수됨으로써 제3의 결과를 가져오며 일종의 통합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기로 합니다.
  때문에 개인은 문화 형성과 함께 문화에 예속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사목헌장은 인간은 문화를 통해서만 참된 인간성에 도달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것 물론 교육을 전제로 한 표현입니다.

  토인비의 정식 = 도전과 응전의 결실인 문화

  문화는 자연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문화는 생성되면서 동시에 사멸되기도 합니다. 약육강식의 원리와 같이 건전하고 강한 문화는 전승을 통해 살아 남지만 그렇지 못한 문화는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토인비가 그의 대작 "역사의 연구"에서 언급한 문화 진전에 대한 정식(定式)을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토인비는 문화의 진전을 도전(challenge)과 응전(response)이라는 도식으로 설명했습니다. 인간은 늘 자연과 현실, 역사라는 도전 앞에 직면해 있습니다. 자연의 재앙, 조건 또는 이 민족의 위협과 침입 등 참으로 숱한 도전들이 있는데 인간은 개인과 집단이 함께 그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응전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힘을 합해 이 모든 역경을 극복하도록 노력합니다. 만일 이 모든 난관과 고통을 극복했다면 그 개인과 집단은 살아남습니다. 살아남는 결과가 바로 문화(culture)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천재이든 인재이든 그 난관 앞에서 주저앉고 패했다면 그 민족과 집단은 소멸됩니다. 이것이 바로 죽은 문화입니다. 옛날에 한때 번성했던 문화가 오늘날 사라졌다는 것은 바로 그 당대인들이 그 도전을 극복치 못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문화란 인간이 자연과 역사의 현실 속에서 능력을 다해 극복하여 얻어낸 생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곧 건강하고 강한 문화는 살아남습니다.
  이러한 도식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개인이든 민족이든 누구나 나름대로 고통과 어려움 앞에 직면하게 마련인데 그 앞에서 당당하게 응전하며 싸워 이길 때 비로써 문화의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사목헌장은 넓은 의미로 문화란 인간이 정신과 육체를 연마하고 발전시키는 데 이용하는 일체의 사물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화의 범주에는 바로 인간의 존재와 자연과의 관계, 종교생활, 노동, 자기 표현, 관습 등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문화는 바로 인간의 삶 자체입니다. 종교 자체가 문화이니 교회가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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