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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사목헌장 55항 - 문화의 주체인 인간
   함세웅 신부   2004-10-29 10:31:49 , 조회 : 2,071 , 추천 : 271

사목헌장 55항 - 문화의 주체인 인간


  문화의 주체는 인간입니다. 너무도 자명한 이 사실을 사목헌장이 새삼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문화와 문명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오히려 인간이 이 문화구조에 종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 세상 모든 것에 앞서 인간이 우선하고 인간이 중심이며 인간이 목적이 되는 그러한 인간문화를 형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이에 사목헌장은 첫째, 인간의 자아각성 둘째, 자율성과 책임의식 셋째, 정신적 윤리적 성숙 넷째, 세계화의 원리인 진리와 정의를 열거하면서 끝으로 이것이 바로 새로운 인간문화(novus humanismus), 곧 새로운 인본사상을 창출하는 것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2004년 1월 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평화의 날 메시지를 주보를 통해서 읽고 확인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사목헌장 55항의 가르침을 기초로 교황청 '정의평화 위원회'가 초안한  문건으로 물리·경제적 힘으로 이웃 나라와 온 세계를 제압하려는 강대국들, 특히 무력으로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를 침략한 미국에 대해 윤리 도덕적으로 꾸짖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의 언론은 문제의 핵심과 본질은 논하지도 않고 온통 부차적이며 곁가지에 불과한 것들만을 흥미 삼아 보도하기 일쑤이며 냉철한 이론과 이성에 기초한 객관적 사실에 접근하기보다는 표피적 문제나 다루고 그것도 감각적 수준에서만 언급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것은 본질과 핵심을 왜곡시키는 엄청난 잘못입니다. 문화의 주체와 중심인 우리가 바로 이러한 언론의 일그러진 모습을 바로 잡아야 할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 예로 우리는 한반도의 뜨거운 감자라는 "핵" 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생각해 봅시다. 핵 개발은 그 자체가 문화발달의 결과입니다. 아인슈타인도 후회했다지만 다만 핵 연구가 핵무기 개발에만 치우쳐 결국 인간을 파멸시키는 핵전쟁 유발 우려 때문에 온 인류가 두려워하고 이에 제재를 가하려는 것입니다.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의 핵 개발만 언급하고 있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이른바 큰 나라들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들에 대해서는 별로 말이 없습니다. 북한 핵무기 개발을 거론하는 그만큼 우리는 늘 미국을 비롯한 이른바 핵보유국에 대하여 그 핵무기들을 폐기하고 해체하도록 함께 강력히 요구해야만 합니다. 큰 나라들은 수천, 수만기의 핵무기를 갖고 있으면서 핵무기가 있는지 없는지도 확실치 않은 북한에 대해서만 왈가왈부 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일 뿐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모순입니다.
  사목헌장은 바로 문화의 진전을 예찬하고 수용하면서도 이렇게 늘 객관적 보편적 원리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1. 자아 각성과 인식의 확산

  사실 문화의 주체는 우리 인간 자신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아니 늘 인간은 오히려 이러한 사회구조와 체제에 종속되게 마련입니다. 사실 종교든 국가든 그 기본취지는 아름답고 훌륭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원리가 형해화 되면서 오히려 그 핵심은 사라지고 종교와 국가라는 껍데기 제도만 남고 그 껍데기 제도를 고수하는 것이 바로 핵심인양 착각하기도 합니다. 사실 참된 종교와 참된 국가는 그 제도 자체를 끊임없이 바꾸고 또는 부수어 언제나 인간이 중심이며 목적이 되는 종교문화, 국가문화를 형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종교라는 제도, 국가라는 체제만 지속될 뿐 그 중심이 되어야 할 인간이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 때문에 기존제도와 문화에 대한 인간의 저항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기존의 유다교를 송두리째 변혁한 예수 운동, 기존의 인도 계급문화를 타파한 부처운동,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헌신한 모든 사상가들, 불의한 정치권력에 맞선 자유투쟁가들, 국가독점의 권력과 경제 체제에 대항하는 시민운동가들, 특히 온 세계의 NGO운동가들, 그리고 올해 2004년 4월 15일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펼쳐진 '총선 물갈이 국민연대'와 '낙천 낙선운동' 등이 바로 민중의 각성 그 인식확산의 결과입니다.
  사실 이러한 관점에서 종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불교, 개신교, 가톨릭 등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쇄신운동과 교직자 특히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기존 종교문화 구조와 체제를 만민의 남녀평등 종교문화로 바꾸어야 한다는 자각과 인식이 바로 그 첫걸음입니다.
  종교의 핵심인 회개도 이 자아각성과 인식의 작업이며 이 자각의 확산이 참된 회개 운동입니다. 하느님을 바로 알고 자신의 한계를 겸허하게 고백하며 그리고 이웃과 함께 아름다운 평등문화를 이루는 작업이 참된 회개입니다. 따라서 오리제네스(180 - 254년)의 영성과정으로 요약되는 ① 완덕의 개념 ② 자아인식 ③ 심전(心戰) ④ 수덕실천 ⑤ 영적 상승 ⑥ 하느님과의 일치라는 여섯 단계의 핵심은, 참된 영성이란 바로 자아인식과 각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아 각성이 영성의 첫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든 국가든 자아각성을 방해하고 오히려 우민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새삼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선현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2. 자율성과 책임성

  자아각성은 바로 빠울로 프레이레가 '민중교육론'에서 제시한 관찰, 판단, 실천이라는 이른바 3단계의 교육과정 중 첫번째 관찰에 해당됩니다. 관찰이란 자신이 처한 현실, 자신의 문제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황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바로 이러한 자아각성과 인식이 인간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키웁니다. 여기서 자율과 책임은 늘 한 짝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권리와 의무의 도식도 같습니다. 자율과 자유란 결코 방임이나 방종일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자아각성과 인식에 기초한 회개란 바로 자신의 책임을 인식하는 작업입니다. 인간의 행업에는 늘 책임이 동반합니다. 자유와 책임은 보편적 의미에서의 주제이고 자율과 책임은 일상 사회생활 가운데 인간이 지니고 행해야 할 윤리적 관점을 전제로 한 표현입니다.
  우리 한국인의 경우 자유와 책임, 또는 권리와 의무에 대한 인식의 결여로 늘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성숙한 단계로 올라가는 한 과정으로 봅니다. 일제 36년의 강점, 해방이후 무려 4·50년 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비롯한 역대 불의한 독재정치 체제에서 저항 해왔던 우리에게는 자유와 해방이 급선무였습니다. 책임과 의무의식이 결여된 배경에는 이러한 정치적 이유가 있습니다.
  특히 노동운동의 경우에도 많은 이들이 이미 지적하고 있지만 7·80년대 유신과 군부독재 하에서 인간의 기본권리만 주장했을 뿐, 그 정치적 탄압의 원인과 배경을 규명하고 반성하고 종합하지 못한 성찰의 결여에 큰 원인이 있습니다. 사실 7·80년대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생존권과 기본권을 위해 투쟁했었습니다. 그런데 87년 6·10항쟁 이후에 펼쳐진 노동운동은 민주화를 전제한 상황에서만 가능한 것인데 민주화가 요원한 가운데 파업 등 극약처방 등으로 치달았기에 노동운동이 핵심을 놓쳤습니다.
  그뿐 아니라 오늘날 대기업의 종사자들, 이들의 연봉은 수천만 원대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임금투쟁을 통해 임금을 올리면 올릴수록 이른바 하청업체의 종사자들은 그 임금이 삭감된다는 것입니다. 노조의 지도부들은 이를 명심해야 합니다. 이른바 대기업내의 일용직 근무자들은 비록 노조를 결성했다 하더라도 마치 2급 노조원처럼 인식되고 더구나 하청업체의 종사자들과 또는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은 대기업의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되는 그만큼 오히려 삭감되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노동자들은 동료 노동자들의 아픔과 소외를 아랑곳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노동운동 자체에 대한 모독입니다. 이제는 노동운동계에서도 성찰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노조위원장이 하나의 권력상징이 되고 노동귀족이라는 새 부류가 탄생함은 바로 노동운동의 타락입니다. 이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들 사이의 엄청난 임금의 격차를 줄이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책임성입니다.
  사실 시민운동, 환경운동도 한가지입니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그 근본이유는 잘못된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 청산작업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라 고 생각합니다. 일제잔재가 청산되지 않고, 군부독재자들의 불의가 청산이 되지 않은 이러한 상황에서는 여전히 같은 모순의 문제가 남습니다.
  세상과 교회를 바꾸는 물갈이 운동 때문에 저는 물갈이 운동에서 많은 암시를 받았습니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와 최열 환경운동가가 주축이 된 이 모임에서 몇 가지만 생각해본다면 물갈이는 판갈이, 통갈이 등 여러 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항을 비유로 첫째, 어항의 물을 갈 때에는 적어도 ⅔는 갈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새로운 물이 어항의 물보다 더 깨끗해야합니다. 셋째, 어항에 담긴 돌, 나무, 풀 등도 깨끗이 닦아야합니다. 넷째, 무엇보다도 어항자체를 깨끗이 닦아야 합니다. 나아가서 필요하다면 어항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설득력 있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물갈이의 주체인 시민운동가들의 도덕성이 문제입니다. 때문에 이들은 스스로 윤리강령을 제시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반성하고 모범이 되겠다는 다짐입니다. 자신이 주장한 것을 실천하는 모범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날 물갈이 모임에서 새삼 "세례"의 교훈을 떠올리면서 세례자 요한이 왜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치셨는지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왜 세례를 받으셨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세례를 받아야하는지 그 깊은 뜻을 생각하면서 우리 교회구조도 물갈의 대상임을 깊이 되새겼습니다. 그렇습니다. 2천년의 묶은 때를 벗기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교회구조 물갈이 신앙인 연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예언자 운동, 성령운동, 수도원 창설 운동, 각 신심단체 운동은 바로 회개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 회개운동이 바로 물갈이 운동이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강조하고 늘 우리가 배우고 실천하려는 교회쇄신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3. 정신적 윤리적 성숙을 위해

  자아 각성과 인식, 자율과 책임의식은 바로 인간의 정신적 윤리적 성숙을 위한 필수적 과정입니다. 사실 미성년은 어른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러나 성년이 되면 모든 것을 자율적으로 처리할 권리를 지닙니다. 그런데 권리에는 꼭 의무가 수반됩니다.
  사실 민주주의가 정착되기까지 우리는 지난날 긴 세월 정치적으로 왕 또는 봉건제도에 종속되어 살아왔습니다. 또한 교회를 비롯한 많은 종교들도 인간을 성숙한 존재로 대접하지 않고 일그러진 신관과 종교제도와 관행으로 인간을 억눌러 왔습니다. 그러나 계몽주의 이후 인간은 이성과 자유를 통해 이 일그러진 정치, 종교, 제도, 문화를 극복하고 인본주의 문화를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적 본성으로 인해 인간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마찰과 갈등이 있게 마련입니다. 민주주의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갈등이 있게 마련입니다. 때문에 법과 규정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법과 규정은 사실 통제의 의미가 있기에 늘 자율성을 훼손할 염려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는 '법 없이도 살수 있는 사람과 사회'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신적, 윤리적으로 성숙한 사회입니다.

  4. 세계화 원리인 진리와 정의

  요한 바오로 2세는 2004년 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평화란 요한 23세가 '지상의 평화'에서 언급한 진리, 정의, 사랑, 자유라는 네 기둥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따라서 진리와 정의, 사랑과 자유라는 네 기둥은 서로 필연적으로 연결된 가치로 한 개념 속에 네 개념이 모두 함축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무역기구(WTO), 자유무역협정(FTA)등 이른바 세계 경제화의 물결 속에서 흔히 지구촌, 세계화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큰 문제는 약육강식이라는 동물세계 원리가 우리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힘센 놈만이 많이 먹는 동물이지만 그 동물도 배부르면 약한 놈을 잡아먹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 놈의 강대국들은 배가 불러도 한없이 약소국을 잡아먹으려하니 동물보다 못한 인간이 아닙니까? 인간에게 인격이 있듯이 국가에도 국격(國格)이 있어야 합니다. 진리와 정의가 바로 인격과 국격의 기초입니다. 진리란 상식이며 정의란 올바른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의 세계화 운동이 과연 상식과 올바름에 기초하고 있는지 우리는 끊임없 이 되물어야 합니다.
  용산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옮기는데 드는 엄청난 돈을 우리가 부담해야 한답니다. 그런데 더욱 기막힌 것은 미국정부가 그 내역을 공개할 수 없다니 더욱 어처구니없고 그래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못나고 부끄러운 우리 국민들입니다. 그런데 최근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임명된 반기문 씨는 10여 년 전에 외교부 국장일 때 대통령이나 장관의 승인도 없이 양해각서를 써준 장본인이랍니다. 그러니 더욱 부끄럽습니다. 진리와 정의는 바로 우리 안에서 먼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덕목이며 의무사항입니다.

  5. 새로운 인본주의의 창출을 위해

  사람을 잘 보면 하느님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적이라면 그는 하느님과 같은 사람입니다. 새로운 인본주의란 참된 인간이 되어 함께 하늘을 우러르는 공유의 삶입니다. 문화가 바로 공동 작업이듯 인본주의는 우리 모두의 공동 소유, 공동 가치, 공통적 꿈의 실현이며 확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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