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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사목헌장 56항 - 난관과 사명
   함세웅 신부   2004-10-29 10:39:00 , 조회 : 2,107 , 추천 : 286

사목헌장 56항 - 난관과 사명


  난개발 문화의 이변

  오랜만에 고국을 찾아 온 분들의 공통된 지적은 서울 등 각 도시의 크게 변화된 모습에 놀라면서도 한편 씁쓸해 하면서 온통 사방팔방에 높게 건립된 아파트를 보고 분노를 토해냅니다. 삼천리금수강산은 옛말이 되었고 그야말로 난개발강산이라는 것입니다. 외국의 경우 아파트 단지는 자연과 도시의 조화 속에서 신도시 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며 산기슭이나 교외에는 2-3층 정도의 건물만 건축하여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장면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참으로 충격을 주는 아파트 문화라는 것입니다.  구체적  예를  하나 든다면 용인에 있는 명동성당 묘지의 주변도 옛날에는 산골이었는데 이제는 바로 그 입구에까지 아파트가 들어섰으니 그 누가 보든지 참으로 답답하고 기막힌 노릇입니다. 그동안 6·25전쟁 이후 폐허된 산천초목을 일구기 위해 모두 나무심기 운동을 벌이고 정책적 차원에서도 산림보호법 등을 기초로 녹지대를 지정하여 일차적으로 산림을 보호하여 자연환경을 이만큼 지켜왔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선심을 쓰느라고 녹지대 규제를 마구 풀어놓으니 그렇지 않아도 난개발로 몸살을 앓던 터에 이제는 불에 기름을 부은 듯 앞날이 뻔하다며 많은 이들이 개탄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여러 환경단체가 헌신적으로 나서서 이 정도로 자연을 지켜왔건만 동강에서 새만금에 이르기까지 공무원들의 책임 없는 일처리와 무감각, 공동선과 미래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단세포적 사고의 행정은 참으로 우리 모두를 슬프게 합니다. 사안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러저러한 구실로 그 분명한 원리가 짓밟히는 현실은  분명히  모순입니다.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신음 섞인 한탄만 반복되는 현실입니다. 이것뿐입니까? 모든 분야에 있어서 문제는 똑같습니다. 환경파괴, 녹지대 해제, 아파트 난건립 등은 그래도 우리 눈에 보이는 대상이기에 그 변화가 즉시 감지되어 환경단체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우리와 같은 소시민들도 함께 공감하며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문화 발전의 이면에는

  그러나 문화의 파괴, 문화의 난개발 등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감지하지도 못하는 참으로 중병입니다. 문화의 발전은 분명히 바람직스럽고 꼭 이룩해야 하지만 그 발전으로 인해 고전(古典)문화가 파괴되고 있는 현실을 상기해야 함을 사목헌장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문화 발전의 이면에는 아름다운 옛 문화가 짓밟히고 훼손되는 엄청난 아픔과 상상할 수도 없는 피해가 있음을 진지하게 숙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결코 공짜가 없다는 말과 같이 문화의 진전과 함께 사람들은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그 혜택만큼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아는  일입니다만 오늘날  전기(電氣)는  인간의 삶에서 거의 필수적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전기 공급을 위해 많은 핵발전소를 건립하곤 합니다.  그런데  핵발전에 따른 핵폐기물은 큰 숙제입니다.  전력  사용은 유용했지만 핵폐기물은  애물단지인  셈입니다.  때문에  이제  여러 나라에서는 자연을 이용한  풍력,  수력발전  그리고 태양에너지를 이용하는 이른바 친환경적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핵발전소는 작은 예에 불과합니다. 핵심은 문화 혜택을 얻는 만큼 우리 인간이 치러야 할 대가가 꼭 있다는 사실입니다.

  국제 교류로 인한 고유문화의 손실

  이에 첫째로 사목헌장은 각 국가 사이의 빈번한 교류로 인해 생기는 필연적 과정에서 많은 문화적 이익이 있음을 전제로 하면서도 한편 그로 인해 각국의 고유문화가 파괴되거나 흡수되고 선조들의 아름다운 전통적 예지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특성도 없어지며 양육강식이라는 동물세계처럼 문화도 본능적, 감각적, 시각적 또는 쉽고 편리한 것 등이 판을 치고 절제와 양보라는 윤리도덕원리와  전통에 기초한 민족 고유의 정신과 가치가 사라질 위기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살아 온 과정을 잠시 되돌아보더라도  이것은  곧  확인되는  내용입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1950년대 초  6·25전쟁이  끝나고 복구사업이 한창일 때 우리는 미국의 절대적 보호 아래 있었기에 미국이 은인이요  구세주로  생각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중학생이던 우리들 앞에서 학생회의 지도를 맡았던 돌아가신 최석호 신부님은 미국이 우리나라에 와서 전쟁을 이기게 한 것은 사실이고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이 땅에왔기 때문에 잃어버린 고유문화의 가치가 받은 은혜보다 더욱 많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는 또한 윤리도덕의 가치가 떨어지고, 남녀유별의 미풍이 잊혀지고, 서로 돕고 사는 공동체 정신의 상실을 아파하면서 특히 이 모든 것은 미국의 외래문화와 전쟁 때문에 생긴 전염병 같은 것으로 우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극도의 이기주의와 상업주의를 판치게 한 괴문화라고 통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루빨리 미군은 이 땅을 떠나야 한다고 역설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이런 말씀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놀랍고 충격스러운 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공감했습니다. 눈앞의 이익보다는 민족의 미래와 문화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마음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얘기입니다만 그 후 최 신부님은 그 강론 내용과는 다른 행보를 우리 후배들에게 보여 주셨기에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자신과 다른 생각을 지닌 후배들의 말을 경청하셨던 그 소탈한 자세를 우리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어쨌든 삶의 과정에서 일관된 가치와 변질되지 않는 신념을 간직한다는 것은 참으로 귀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일관된 생각과 일관된 가치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문화발전과 미국의 도움을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그 때문에 잃은 고전적 가치에 대하여 아파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기술 문명과 고전문화의 해체

  둘째는 전통의 유산을 충실히 살리는 일은 무엇일까 입니다. 그리고 문화를 동시에 발전시킬 수 있는, 이른바 윈윈의 방법, 공존의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때문에 문화발전 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때 한번 숨을 가다듬고 이 문화발전과 개발이 과연 전통문화 유산과 공존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숙고하는 일입니다. 물론 이것은 일차적으로 정부 당국자들이 해야 할 일이지만 우리 국민 모두도 각자 이러한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사실 현대문명은 과학과 기술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온통 과학과 기술의 혜택을 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고전문화와 얼마나 함께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우선 예를 들어 가옥문화의 획기적 변화는 편리성을 주었지만 핵  가족과 아파트문화의 삶에서 우리는 노인을 모시지 않은 새로운 문화 구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장남은 물론이고 적어도 자녀 중 하나는 부모를 모시도록 되어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으레 자녀들이 부모 모실 생각을 하지 않을 뿐더러 부모 스스로도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각각 사는 추세입니다.

  특수 문화와 함께 지향해야 할 종합적 가치관

  셋째는 학문의 모든 분야가 특수화되고 전문화되어 있습니다. 전문화는 한 영역에서 그야말로 심오한 경지에 오름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 전문화는 타 영역의 전문화와 호흡을 같이해야 합니다. 그것이 학문적으로 또는 윤리도덕적으로 또는 사회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 가를 함께 연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 그 인격이 일그러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문화되면서도 종합적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요사이 젊은이들은 재미있는 것, 쉬운 것, 돈버는 것, 노래하고 춤추며 살뿐 인생의 궁극적 가치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용어도 그렇습니다. 언어는 그 사회문화의 반영입니다. 청소년들의 새로운 용어가 거칠고 원색적임은 절제와 조화가 결여된 본능의 표출은 아닌지 함께 숙고해야 할 일입니다. 물론 청소년의 독특한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을 껴안아야 되겠지만 인간의 기본 덕목인 절제와 희생과 양보 등 기본적 교육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교사의 책임의식과 사회의 기본적 인식이 고양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예지를 발전시킬 관상과 경탄의 능력을 과연 어떻게 보존할 수 있을까?
  이렇게 사목헌장은 고민하고 있습니다. 선현들의 가르침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이 되어라"는 가르침을 되새겨야 합니다. 인간이 되는 삶, 기본적 덕목과 자세, 기본 교양 토대 위에서, 전문화 교육이 펼쳐져야 합니다. 대학에서 교양과목이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양과목은 대학에서 마치 2급 과목처럼 여기는 풍토입니다. 건축이든, 운동이든, 기초가 튼튼해야 하지 않습니까? 문화의 기초는 바로 건강한 인격과 종합적 사고입니다. 예를 들어 법조인들은 그야말로 넓은 상식과 교양 있는 인격을 갖추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법고시의 경우, 이러한 인격적 덕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더구나 학업과 연구도 상관없이 이른바 고시촌에서 법조문과 그 관계 내용만을 암기하여 시험에만 합격되면 된다는 식이니 결과는 자명하지 않습니까? 법관, 검찰관, 변호사 등 법조인들은 전문인이기 이전에 참으로 종합적 가치를 지닌 한 인간이어야 합니다. 법조인뿐 아니라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전문인들은 우선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전문인이 결코 괴물이어서는 안 됩니다. 때문에 바른 교육정책의 설립이 급선무입니다. 이를 위해 교육부 관료들의 기계적 관념과 사고를 깨야 하며 학부모와 학생 등 우리 모두 건강한 윤리도덕관을 앞세우는 인간 중심의 문화를 형성해야 합니다.

  다양성을 위한 대안교육

  네번째는 획일화된 교육정책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각자 나름대로 재능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대안교육, 대체교육 또는 다원화 교육을 강구할 것을 사목헌장은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중학교까지의 무상교육 의무도 중요하지만 영재는 영재대로, 특기생은 특기생대로 그리고 다소 지적 이해가 부족한 학생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의 조건에 맞는 다양한 교육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육의 근본은 늘 보편적 가치의 확인에 있습니다. 대학교(universitas, university)는 일치(unitas, unity)와 다양성(diver - sitas, diversity)의 합성어입니다. 하나를 지향하되 그것은 늘 다양성에 기초하고 있음을 명심하고 다양한 삶 가운데서 우리는 꼭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편성 곧 큰 배움입니다. 선현들이 강조한 도덕과 인격이 바로 교육의 기본입니다.

  경천애인의 인본주의

  다섯째로 사목헌장은 현대세계의 주제어가 된 자율성과 인본주의가 결코 개인적 방임이나 이기적 삶으로 타락되지 않도록 당부하고 있습니다. 자율성이란 자연과 이웃, 공동체를 생각하는 책임의식과 건강한 사회의식이며 그리고 인본주의는 인간 사랑이 바로 자연의 사랑이며 나아가 하늘을 우러른다는 애주애인(愛主愛人) 또는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십계명의 영원법에 기초해야 함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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