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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사목헌장 57항 입문 - 신앙과 문화 사목헌장 57항에 대한 입문
   함세웅 신부   2004-10-29 11:41:21 , 조회 : 1,852 , 추천 : 262

부활은 고통의 수락, 십자가의 확인
- 신앙과 문화 사목헌장 57항에 대한 입문 -


  관점과 해석

  오늘은 3월 25일 주님탄생예고대축일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모영보대축일이라고 불렀습니다. 같은 사안을 놓고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하느냐에 따라 주어와 목적어 등이 달라지니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재미있고 또 우습기도 합니다. 신앙과 문화라는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한 사물을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과 설명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신앙의 관점에서만 설명하고 말끝마다 성서말씀의 구절을 인용하고 주님의 뜻,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면 듣는 이들이 거부감을 갖게 됩니다. 현실 감각과 균형을 잃게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화를 언급하면서 꼭 눈에 보이는 것, 실증 가능한 것만을 주창한다면 이 또한 무모한 일입니다. 우리는 늘 모든 것을 함께 보고 읽는 종합적 사고를 지녀야 합니다. 사실 인간의 존재 자체가 몸과 마음 또는 육체와 영혼, 외적 요소와 내적 요소 등 여러 요소를 갖고 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리스의 고대문학 체계가 이를 분명히 입증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 세상 우주를 눈에 보이는 물질계와 물질계를 넘어선 세계로 구분하여 물리학(物理學, 形而下學, physica)과 형이상학(形而上學, metaphysica)으로 나누어 논했습니다 물리학이 요사이 표현으로는 자연과학 이공계이고 형이상학은 철학을 중심으로 이른바 인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문계에는 인문학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신학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의 모체는 본래 신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결국 죽게 마련이니 죽음을 생각하고 논하다보니 불사불명, 영생, 낙원, 천당, 천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원과 절대자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존재한 이래 제사 등 종교와 함께 인류사가 진전되었음은 너무도 자명한 일입니다. 때문에 인간은 바로 종교적 존재라고 정의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종교와 신앙을 논할 때에는 근원적(根源的)으로, 곧 뿌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인간은 왜 죽어야 하나? 죽은 다음에 인간은 어떻게 될까? 등 동서고금을 통해 제기된 이러한 근원적 물음 앞에 제시된 해답이 바로 종교입니다.

  종교와 문화 그 필연적 관계

  때문에 종교는 그 자체가 인간적 삶의 표출이며 문화의 기본입니다. 새삼 종교와 인간, 종교와 문화, 신앙과 문화라고 구분하여 논하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우습고 모순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단순히 인간의 기본적 삶 하나에로 귀결할 수도 없기에 우리는 세분화 과정을 거치면서 인생의 삶을 여러 관점에서 고찰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때문에 그분의 탄생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당시 유다문화권에 종교, 정치, 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혁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복음서와 당시 역사기록을 통해 이 점을 분명히 확인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본질, 믿음의 핵심

  어쨌든 복음 선포의 핵심은 예수라는 분의 삶과 가르침입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그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게 마련인데 그분의 죽음에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죽음이 자원적 죽음, 자발적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분은 결코 자살의 길을 택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참으로 아름답게 약한 이들을 도와주면서, 특히 병자들,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민과 애정을 갖고 그들을 치유해 주시고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시면서 사셨습니다. 그리고는 꼭 병을 고치고 건강한 몸으로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죄를 짓지 말고 이웃과 하느님을 위해서 아름다운 삶을 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셨습니다. 때문에 그분은 유다교 종교지도자들 특히 대사제, 사두가이파,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을 무섭게 비판하셨습니다. 그들은 위선자들의 표본이었고 뭘 좀 배우고 안다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우습게 보고 별것도 아닌 법규정 하나만을 그야말로 신주 모시듯이 하면서 법조문의 노예가 되어 이것이 마치 법준수의 모범인양 우쭐거렸습니다. 세상이 뭐 그렇고 그런 것인데 하고 지나치면 될 것을 예수님께서는 이런 현실을 묵과하시지 않고 가끔 의도적으로 그 법규정을 어기셨습니다. 이러한 뜻에서 예수님은 좀 짖꿎으신 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내라는 제3계명에는 무려 39개의 세부 규정이 있습니다. 안식일에는 5리 이상을 걷지도 말고 일을 해서도 안 되고 물건을 들고 다녀서도 안 되는 등 많은 금지조항도 있었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본래의 법 취지는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라는 것이었는데 그 법의 본질은 잊어버리고 부차적인 것만 강조되고 있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모순의 현실이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이 따위 금지조항들은 사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일부러 안식일에 사람의 병도 고쳐주시고 상당한 거리를 걷기도 하시고 또 치유된 사람은 자기 물건을 들고 가야 하니 결국 이 모든 것이 문제가 되어 고발됩니다. 예수께서는 늘 자신을 고발하는 이들에게 법의 근본 취지를 설명해 줍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위선자들입니다. 아니, 안식일에 만일 여러분의 소 한 마리가 구덩이 빠졌다고 하면 그대로 놔두겠습니까? 꺼내겠습니까? 라고 반문하시면서 당시 종교인들의 우매한 법인식을 깨고 "법이 사람을 위해서 있지, 사람이 법을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2000년 전의 종교문화 체계 속에서 예수님의 이 선언은 가히 혁명적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신관(神觀)의 혁명도 일으키셨습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야훼 하느님의 이름을 감히 직접 부르지도 못할 정도로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나의 아버지, 어머니 또는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하느님께서 자기 안에 계시고 자신도 하느님 안에 계시다면서 나아가 하느님과 자신은 하나이라고 그야말로 놀랄만한 신관을 피력하셨습니다. 그러니 경건한 유다 종교인들이 유다종교 체계의 원리에 따라 하느님을 모독했다고 분노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죄인들, 세리, 병자 그리고 여성들과도 친분을 맺으시면서 하느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고 무엇보다도 여성들을 벗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돌출된 행동을 하는 주인공 또는 당시 미풍양속을 해치는 분으로 낙인찍힐 만한 분이셨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술과 음식을 즐겨먹는 사람" "마귀의 두목 베엘제불" "스스로 하느님이라고 한 사람" "목수의 아들" "마리아의 아들" 등의 악의적 모함을 당하시고 경시의 대상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는 참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은 예언자이시고 메시아셨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단순히 종교적 법의 위반자로 몰아 죽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었든지 이것에다 백성들을 선동했다는 정치사회적 죄를 하나 더 붙여 정치범으로 몰아 로마 빌라도에 고발했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참으로 처절한 실패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처절함과 비참함에서 부활이 싹틉니다. 꿈과 희망을 확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어떠한 경우에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간직하는 사람입니다.

  영화의 교훈과 묵상자료

  요사이 미국에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예수의 수난'이 한국에서 개봉이 되었습니다. 이에 수난과 부활을 잘 이해하기 위해 미국 가톨릭 주간지 'National Catholic Reporter' 2004년 2월 20일자의 내용을 소개해 드립니다.
  이 영화에 대해 누구나 한마디씩 합니다. 이 영화가 감동적이다 또는 아니다 너무 참혹하다라는 등 의견이 다양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실천적 교훈과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에 대한 현실적 또는 역사적 의미를 재숙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하나를 보고 타종교와 타문화에 대해 뭔가 보편적 평가를 한다는 것은 무리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사고와 그 지평이 넓어집니다. 비판적 시각과 새로운 시각이 항상 환영받지는 않지만 그래도 역사를 통해 용기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하나의 숨결입니다. 살아 숨쉬는 유기체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나라를 향한 나그네이며 순례자입니다.
  예수의 수난사건과 십자가 죽음이 물론 그리스도교 전체 역사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과 생활 주변에서 숱한 십자가와 부활사건이 전개되면서 더욱 다양하고 풍요로운 꽃들이 봉오리를 맺고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 영화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도대체 세례가 무엇인지에 대해 근본적 성찰을 요구하며 어떻게 우리 자신이 매사건 앞에서 그리고 역사 앞에서 주님의 수난을 해석해야 할 것인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제시하는 묵상 주제는 참고 역할을 할 뿐이겠지만 어쨌든 이 짧은 길잡이는 교사들, 청소년 지도자들, 성서 연구자들, 부모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대화에 앞서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성서를 진지하게 한 번 숙독해야 합니다(마태26,1 - 28,20 ; 마르 14,1 - 16,20 ; 루가 22,1 - 24,53 ; 요한 13,1 - 20,31).

  묵상 주제 - 수난과 고통 그리고 폭력

  영화의 핵심은 예수의 수난과 고통입니다. 올리브동산에서 체포되어 십자가위에서 죽으시기까지 행해진 폭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현실에서 행해지는 폭력은 어떠합니까?
  1) 잔인한 폭력 장면에 대해 무엇을 생각합니까? 예를 들어 로마군인, 백인대장이 예수께 대해 내려친 무지막지한 채찍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러한 잔인한 폭력에 대해 당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생각합니까? 지나친 과장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당신은 무엇을 생각합니까? 예수님의 고난이 오늘날 우리 현실의 폭력과 고통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이라크, 아프카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침략, 각종 고문, 폭력 등에 대해)
  2) 이러한 사건 과정에서 당신은 예수의 모습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있습니까? 십자가의 고통 중에 예수께서는 하느님께 대하여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부재(不在)를 체험하셨겠습니까? 또는 예수께서 "하느님, 어째서 나를 버리셨습니까?" 라고 한 절규가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희망의 기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3) 교회공동체는 예수께서 완전한 인간이며 완전한 하느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리스도 신자로서 예수님의 수난에서 참으로 예수의 인간성을 보고 있습니까? 또는 어디에서 그분의 신성을 보고 있습니까? 당신은 과연 한사람이 다른 이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4) 그리스도 고난의 핵심적 순간은 바로 올리브 동산에서 계속 매맞고 계신 장면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는 행위는 바로 악의 화신(化身), 아니 악마 자체입니다. 그렇다면 영화제작자가 왜 이것을 강조했다고 생각합니까?
  5) 만일 하느님께서 모두를 사랑하신다면 왜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이 이와 같은 끔찍한 고통을 당하도록 허락하셨을까요?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이러한 고통을 끝내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참으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고통을 당하고 계신다고 생각하십니까?
  6) 세기를 통하여 위대한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고통에 대해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설명을 제시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고통 받고 죽으신 근본적 메시지를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7) 십자가에 못박히신 장면과 함께 우리는 예수께서 행하신 과거의 최후의 만찬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제작진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8) 이 영화를 본 후 참으로 예수의 고통과 죽음의 책임이 바로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9) 이 영화를 보고 당신은 참으로 기도의 힘을 느끼고 기도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기도를 바쳤습니까? 또는 어떤 나눔을 다짐했습니까?
  그 외에 묵상자료로 예수님의 모습, 성모 마리아, 제자들, 사적 환시 그리고 부활에 대해 많은 내용을 제공하고 있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합니다.

  체제 변혁을 지향하는 십자가의 구원의 원리

  이것은 하나의 길잡이입니다. 현재 우리의 영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확보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여기서 개인의 존엄과 가치는 과연 무엇이며 국가와 정부의 존재 이유와 그 근거는 무엇인가를 우리는 진지하게 되물어야 합니다. 개인의 자유와 존엄 가치를 짓밟는 정부와 국가는 한낱 폭력집단에 불과하다는 신학자들의 지적을 귀담아 들으면서 잘못된 사회구조, 정치구조, 기존 체제를 인간이 인간답게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체제로 바꾸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 지향하신 해방과 구원의 핵심입니다.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을 이웃에게 행하지 말라!"
"네가 원하는 것을 이웃에게 행하여라!"
사랑의 황금률입니다. 십자가의 교훈입니다. 예수님의 핵심적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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