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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사목헌장 57항 - 신앙과 문화
   함세웅 신부   2004-10-29 11:45:51 , 조회 : 2,034 , 추천 : 267


  신앙과 문화의 조화와 그 필연적 상관성

  신앙과 문화의 주제는 이미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초자연과 자연, 은총과 자연, 신앙과 과학, 신앙과 이성 또는 내세와 현실 등 독자적 영역을 지니고 서로 분명히 구별되면서도 동시에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한 실체의 양면이라고도 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그리스 철학의 영향과 함께 수덕 실천과 신비신학의 육체 경시와 현실 극복이라는 명제 때문에 은총과 자연의 관계를 조화 속에서 이해하기보다는 대칭적 관점에서 이해해 왔습니다. 때문에 믿음이 돈독하고 신앙이 강한 사람은 으레 현실을 경시하고 이성을 무시하고 나아가 과학과 문화를 배척해야 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되기도 했었습니다. 아직도 이러한 경향이 교회공동체와 우리 신자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지만 이러한 경향은 성숙한 신앙인이라면 마땅히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그분의 삶과 가르침 등 구원의 원리를 좀더 진지하게 묵상한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바로 육체를 취하여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취하신 육체, 예수께서 찾아오신 세상, 예수께서 사셨던 이 세상은 그래서 아름답고 좋고 거룩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주 쉽게 비유로 설명하시면서 씨, 누룩, 가라지, 진주, 보화, 그물, 물고기 등으로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여인, 밭에서 일하고 있는 농부, 고기 잡는 어부, 물건을 사고 파는 상인, 천상신비를 연구하는 학자 등의 삶을 통해 바로 우리 인간의 구체적 삶의 현실 속에 담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일깨워 주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쟁이라는(요한 4,20) 말씀은 바로 눈에 보이는 이 현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긍정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나라와 내세를 언급하는 것은 그 자체가 분명한 모순임을 지적하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의 마음에 와 있다는 말씀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현실 속에 하느님의 신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 현실 속에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와 있다는 것은 이 세상 현실을 하느님의 나라로 바꾸어야 한다는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임무를 강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아름다운 세계 건설, 보다 풍요로운 문화 형성은 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더욱 증진시키는 하나의 표지입니다. 달란트의 비유가 바로 이를 말해주고 있으며 주인이 올 때까지 맡은 바 책임을 다하라는 충직한 종의 비유도 바로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은 하느님 때문에 더욱 이 세상일에 충실하고 이 세상의 문화를 아름답게 창출해야 합니다. 작은 일에 충직한 사람이 큰일에 충직하다는 말씀도 함께 연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과학과 기술 그리고 문화 발전을 위한 자극제이며 또한 원동력입니다. 말하자면 신앙은 문화의 활력소, 문화의 영혼, 문화의 추진력이 된다는 뜻입니다. 신앙은 끊임없이 하느님께 다가가는 하느님을 찾는 노력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인은 과학과 문화 발전을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문화 발전의 원리인 이웃 사랑

  사람은 왜 사는가. 그 목적은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 질문 앞에서 우리는 때로 당황하게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생명과 이 세상을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 자체로 던져진 존재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실존을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 안에서 이해하고 고백하면서 우리 존재의 근원과 목적이 바로 하느님임을 깨닫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일정한 신앙교육을 통해 무엇보다도 성서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가 터득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심리학에서는 사람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자아 완성' 또는 '자기 실현'이라고 합니다. 또는 '나는 나여야 한다'는 실존적 측면에서 설명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마슬로우(A. Maslow) 등 여러 학자들은 '자기 실현' 다음에 '자기 초월'이라는 한 단계 높은 과정과 가치를 설정했습니다. 결국 사람은 자기 실현을 통해 자기를 초월하며 자기보다 더 큰 것을 이룩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초월'이란 바로 사랑과 헌신을 통한 투신적 자세 또는 순교적 결단, 초인적 봉사, 모성애의 발휘 등 공동체를 살리고 공동체에 모범이 되는 삶입니다. 또한 순직과 순국, 살신성인의 삶이 모두 이 범주에 속합니다 또한 과학자 등 전문가들이 자기 연구 영역에서 일생을 보내며 새로운 과학의 원리를 발견하며 인류의 삶에 획기적 도움을 주는 이들의 삶도 한가지입니다. 그리고 한평생을 연구실에서 현미경과 함께 사물과 우주의 신비를 연구하며 생명과 자연의 신비를 해독하는 분들의 삶이 또한 그러합니다. 그뿐 입니까? 운동, 예술,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는 모든 초인적 행업들이 바로 하느님의 절대성과 섭리를 감지케 하는 하나의 징표이며 상징 그리고 곧 성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자기 완성'의 과정이며 이것이 결과적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크게 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것이 바로 하느님과 이웃,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목헌장은 바로 이 점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노력을 통해 창조적 삶을 이룩한다면 그것이 결국 "헌신적으로 형제자매들에게 봉사하라 하신 그리스도의 큰 계명을 이행하는 것입니다"(사목헌장 57항 2).
  이것은 모두 인간의 능력을 예찬하는 것으로 결국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한 일을 할 뿐 아니라 내가 한 것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요한 14,12) 라는 요한복음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그 누가 감히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도 요한은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 인간의 능력, 창조적 능력입니다. 과학과 문화 그리고 우리의 신앙적 삶은 바로 이러한 창조적 능력에 기초하여 발전되어 증진되고 있습니다.

  문화 발전의 근거인 지혜

  사실 학문적 열정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철학, 역사, 수학, 자연과학 그리고 예술에 전념한다는 것은 바로 진선미를 추구하는 삶의 한 방법이며 이것이 바로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사실 보편적 가치란 윤리도덕, 자연법과 같은 논리로 그야말로 동서고금을 통해 확인되는 인간의 일체의 공유적 가치와 판단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양적 가치를 넘어선 질적 가치를 말합니다. 보편적 가치 실현은 오직 인간의 참된 정신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집니다. 사실 학문, 예술 등의 바탕은 인간의 정신입니다. 이 정신을 성서는 지혜라고 부릅니다. 지혜는 바로 하느님의 힘입니다.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길잡이입니다. 지혜는 또한 내적 판단의 기준이며 인간내부에 반영된 하느님의 가치 기준입니다. 사실 학문적 전공에도 사랑과 헌신의 자세가 요구됩니다. 곧 위타적 자세입니다. 말하자면 학문 연구에 대한 분명한 목적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전공 영역을 택할 때 모든 것을 물량적 또는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여 계산하는데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서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분명한 신관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사실 모든 학문의 출발은 철학과 역사입니다. 철학이란 바로 우리 삶의 원리이고 역사란 삶의 과정과 이야기입니다. 일상의 삶에서 늘 고민하고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함께 생각하는 역사 의식이 요구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이와 같이 분명한 역사 의식을 갖고 또한 학문, 예술, 도덕 분야에서 문화의 진전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모든 전문적 학문은 어쨌든 보편적 가치를 수렴하고 인정하게 마련입니다. 진선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실 신학과 철학이 추구하는 진리와 윤리도덕이 추구하는 선의 가치, 그리고 예술이 지향하는 미는 토마스 신학의 설명에 따르면 바로 최고선인 하느님께 도달되는 것으로 결국 같은 것입니다. 절대자 하느님이 바로 최고유(最高有)로, 진리 자체이시며, 최상선(最上善), 최고미(最高美)입니다. 그렇다면 한 분야 또는 한 영역에서 도통한다면 그것은 동시에 다른 가치와 상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올바른 사상가, 올바른 윤리도덕, 올바른 예술가는 이렇게 서로 통합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지혜의 결실입니다. 사실 지혜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의 얼과 영 그리고 하느님을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특징입니다. 지혜문학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의 구원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선미의 인식과 더불어 우주 만물의 하느님을 고백합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지혜)는 (하느님)과 일치하여 조수 노릇을 했다.
     언제나 그 앞에서 뛰놀며
     날마다 그를 기쁘시게 해드렸다.
     나(지혜)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 즐거워
     그분이 만드신 땅위에서 뛰놀았다"(잠언 8,30 - 31).

  지혜의 기원과 뿌리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행업, 창작, 발명 계획 등이 바로 지혜의 작업이며 동시에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창작력, 창조력, 이것이 지혜의 작업이며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입니다. 이것이 또한 인간의 능력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능력과 지혜는 그 자체로 해방적 힘을 지닙니다. 에집트 노예생활에서의 탈출, 바빌론 유배에서의 해방 등 자유로 향한 이 모든 여정과 움직임이 바로 지혜의 힘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지혜를 통해 만물의 원리를 깨닫고 하느님을 칭송하게 됩니다. 이 지혜는 곧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지혜와 말씀은 결국 하느님의 본질을 나타내는 특별한 표현으로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때문에 사목헌장은 이 지혜와 말씀을 강조하면서 모든 것을 하느님의 빛 안에서 해석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과 문명의 발달 등 이 모든 문화가 바로 인간 능력의 결실이며 이것이 바로 지혜의 뜻입니다.

  문화 발전은 바로 하느님께 영광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제기됩니다. 인간능력과 인간 정신의 결실이 문화이지만 그렇다고 과학기술과 문명을 혹시라도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결과적으로 그것은 하느님을 떠난 우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 있을 때에만 그 참 가치가 확인되지 그렇지 않고 과학기술 만능, 문화 만능을 주창한다면 그것은 결국 하느님께 대한 배반과 불신이 된다는 것을 사목헌장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이 만물의 신비를 다 풀 수 있는 열쇠는 결코 아닙니다. 과학기술은 주어진 현실을 연구할 뿐 이 우주만물의 원인과 목적은 오직 하느님임을 겸허하게 고백하도록 사목헌장은 우리 현대인들을 모두 초대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인해 인간이 자기 능력을 과신하거나 또는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한계적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그 인간의 능력과 결실도 한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한계적 인간의 결실인 과학기술과 문명도 또한 한계적입니다.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바로 건실한 인간의 자세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칭송하고 하느님 안에서만 인간은 위대할 수 있다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만 자유롭고 생명을 지닙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오직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의 숨결 속에서만 자유롭고 그 위대함이 확인됩니다. 때문에 사목헌장은 현실만을 주창하는 현상론과 그 외 모든 것은 알 수도 없고 알바도 아니라는 이른바 일체의 불가지론을 분명히 배제하고 꾸짖고 있습니다. 인간의 과신은 그 자체가 유혹이며 우상의 첫 걸음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이 결코 인간의 능력과 힘을 감소시키지 않음을 사목헌장은 역설하면서 오히려 하느님과 함께 할 때에는 더 큰 결실을 맺을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은총과 선물이며 이 모든 것을 통해 사람은 보다 쉽게 자기완성을 이루고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목헌장은 여기서 다만 어떠한 경우에든지 인간은 스스로 최선을 다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보다 열심히 학문을 연구하고, 서로 돕고, 개선하고, 보다 아름답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신하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는 옛 정치적 표현이 이제는 결국 모든 것은 하느님께로 향한다는 신앙고백으로 이어지도록 우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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