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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사목헌장 58항 - 복음과 문화 사이의 복합적 관계
   함세웅 신부   2004-10-29 11:48:26 , 조회 : 2,050 , 추천 : 271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을 향한 내적 가르침이며 확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누구도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하느님께 대한 내적 체험과 확신은 인간의 구체적 언어로 집필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이란 바로 인간의 문자로 하느님의 행업을 기록한 한 시대문화의 결실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인간의 언어로 하느님의 말씀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와 문자로 하느님의 말씀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성서말씀 구절과 단어 자체가 하느님의 말씀을 물리적으로 사실 그대로 전해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성서말씀 문장과 전체 맥락에서 하느님의 말씀과 그 뜻을 해독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느님 말씀이라는 계시와 구원의 복음은 인간의 언어라는 문화 형식을 통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문화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보물을 담은 그릇인 셈입니다. 그 예범적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입니다. 하느님께서 육체를 취하여 인간이 되시고 이 세상을 찾아오신 이 사건은 바로 하느님과 인간의 합일로 복음과 문화의 불가분의 관계를 암시한 대표적 모형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강생은 구원의 핵심이며 복음 선교와 토착화의 기초입니다. 이에 요사이 신학자들은 복음 선포의 핵심인 강생을 그 민족, 그 문화와 하나가 된다는 의미에서 복음화는 바로 인간화이며 문화화(inculturalizatio)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복음이란 언제나 그 시대, 그 문화, 그 지역, 그 언어, 그 풍습의 옷을 입고 뿌리를 내린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시대에 따라, 그리고 다양한 문화에 따른 여러 나라, 지역, 서로 다른 언어와 관습에 따라 복음이라는 본질과 씨앗은 하나이지만 그 크기와 열매는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유일성, 문화의 다양성

  이것이 바로 복음의 유일성과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복합적 관계입니다. 문화의 다양성은 언제나 획일성과 배타성을 거부합니다. 사실 유다교는 오랜 세월 하느님의 말씀과 계시를 독점하고 선민이라는 우월의식 속에서 타민족과 문화를 배척해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편적 구원을 실현하시면서 유다인들의 패쇄적 구원관과 배타적 종교관을 깨고 보편적 구원과 만민평등이라는 그리스도교 새문화의 터전을 마련하셨고 바오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보편적 그리스도교의 구원을 실현했습니다. 이에 그리스도교는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확산되면서 유럽 전체의 신앙과 정신 그리고 문화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2000여년을 지내오면서 그리스도교의 보편성이 유럽문화에 뿌리를 내리면서 이제는 로마가톨릭이 그리스도교와 동일시되면서 유다인들이 지녔던 그 폐쇄성과 독점성, 배타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부끄럽고 어처구니없는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유다교의 패쇄성을 깨고 보편적 그리스도교의 기초를 마련한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유럽의 그리스도교가 이제는 과거에 유다교가 저질렀던 그 같은 우를 반복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히고 우스운 일입니다.
  이에 특히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숱한 종교 개혁가들과 계몽주의의 선각자들 그리고 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후현대학자들(Postmodernists)에 의해 유럽중심, 로마중심의 그리스도교 문화를 넘어 이제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보편적 교회의 위상을 마련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특히 이 사목헌장을 통해 이 점을 깨닫고 선언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40여전전인 제2차 바티칸공의회도 변화의 과도기였을 뿐 그 당시에도 이 모든 것을 다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열린 자세를 지녔다는 것은 그 당시의 상황에서는 가히 혁명적이었습니다.
  따라서 교회공동체의 쇄신과 깨닫는 과제는 여전히 지금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바티칸 내부에는 요셉 라칭거 추기경을 비롯한 수구적 관료신학자들과 관료행정가들이 포진해 있기에 그리스도의 복음보다는 법과 체제, 제도와 규율이 더 우선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문화라는 옷

  복음은 바로 인간성의 회복으로 건강한 문화증진을 위한 활력소입니다. 때문에 복음은 문화의 정신입니다. 온갖 악과 오류를 제거시키는 길잡이기도 합니다. 복음은 늘 문화를 정화하며 윤리도덕을 증진시키는 힘입니다. 언제나 시대정신을 파악케하고 보다 깊은 인간성을 확인해 주고 언제나 인간을 높은 가치에로 이끕니다. 물론 한때 그리스도교는 십자가 전쟁, 권력형 체제, 종교재판, 마녀사냥, 과학연구금지 등 인류의 역사진전과정에서 문화와 부딪히며 문화발전에 걸림돌이 된 경우도 많았지만 이제 교회공동체는 각 민족, 문화와 언어와 풍습을 껴안고 성가, 전례, 또는 의식을 수렴하며 보다 풍요로운 종교의식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과 복음의 진리를 보다 아름답게 표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교회 공동체 문화를 하느님의 소식과 구원의 복음을 전달하는 한 방법으로 이해해왔습니다. 문화란 바로 교회공동체의 옷이기도 합니다. 옷이란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갈아입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옷이란 기능은 늘 같습니다. 사람이 꼭 옷을 걸쳐야 하듯이 교회공동체는 문화라는 옷을 꼭 걸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교회공동체가 하느님의 신비를 전례와 의식을 통해 꼭 표현해야 하는 한 문화는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인간의 삶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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