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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사목헌장 60항 - 문화 혜택에 대한 각자의 권리 인식과 그 실현을 위해
   함세웅 신부   2004-12-30 14:43:45 , 조회 : 2,044 , 추천 : 298

문화 혜택에 대한 각자의 권리 인식과 그 실현을 위해
- 사목헌장 60항 -


예수님의 마음
오늘은 예수성심 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깊이 생각하고 특히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각자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과 마음을 진지하게 묵상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사실 우리는 사람에 대해 언급할 때 그 사람의 마음이 좋다, 넓다, 깊다 라고 표현합니다. 이때 마음이란 바로 그 사람의 전 인격을 나타내는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사실 마음이란 외형적으로 포착되지는 않지만 그 사람의 전인격을 나타내는 특징적 요소입니다.
중세부터 가톨릭 신심은 예수성심, 성모성심을 생각하며 성장해 왔습니다. 또 몇 해 전부터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 날을 '사제 성화의 날'로 정하여 사제들 스스로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고 하루를 기도중에 잘 지내도록 당부하고 신자들은 사제들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제의 온 생애가 예수님과 같은 생애여야 하는데 특별히 이 날을 사제성화의 날로 정했다는 것은 오늘날 세상이 혼탁해진 것처럼 사제들도 그만큼 때가 묻고 속되게 되었기에 성화(聖化)의 날을 정한 것 같아 다소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오늘은 아니 매일이 성화의 날이고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는 날이 되도록 새삼 다짐하며 우리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는 신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또 우리 사제들이 마땅히 섬기고 봉사해야 할 신자들을 위해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처럼 헌신적 삶을 살도록 다짐합니다. 매일 모든 일에 있어서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지니도록 다짐하며 오늘은 사목헌장 60항 문화 혜택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임무를 생각해 봅니다.

문화 혜택의 공평성
문화 혜택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누구나 세상에 살면서 문화적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문화란 바로 시대의 삶과 자연환경 속에서 인간이 이룩한 일체의 조건과 총체적 상황을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자연의 혜택, 땅과 자연 등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한 태양 아래 모두가 하나이고 동일하듯, 사랑의 원리에서 고찰한다면 무엇보다도 사람은 자연과 역사 앞에서 공평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삶의 과정과 현장에서는 늘 모든 것이 다르게 마련이고 또한 뭔가 구별되거나 차등이 있게 마련입니다. 태양이 쨍쨍 내리쬐어도 양지바른 곳이 있고 음지도 있고 물가가 있고 언덕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자연환경과 장소는 상황에 따라 다 다르게 마련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서로 다른 조건과 환경을 가능한대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그 혜택이 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공유의 정신과 나눔 그리고 사랑과 분배의 원칙입니다.

일차적 의무교육 제도
이에 사목헌장은 문화 혜택에 대해 무엇보다도 먼저 무지로부터의 해방, 곧 인간의 교육을 꼽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배우는 존재입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로부터 그리고 유치원, 학교, 사회, 직장, 교회공동체, 동네 그리고 이웃과 맺는 인간관계에서 사람은 누구나 배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배움의 과정과 조건도 천차만별입니다. 때문에 적어도 기본적 과정은 함께 배우고 균등한 기회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 이른바 의무교육 제도입니다. 사실 사람은 배우고 깨달아야 합니다. 신앙도 바로 배우는 과정, 곧 인식과 앎을 통해서 더욱 알차게 성장합니다. 무지란 죄의 결과이기도 하고 무지는 때로 맹목을 통해 무서운 우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믿음을 갖는 이 모든 과정이 바로 인식의 과정 곧 교육과 연마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것이 곧 구원이며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무지로부터의 해방이 구원의 첫 걸음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의무교육 그리고 무상교육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고등학교 과정까지도 의무교육으로 확산될 추세입니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문맹 퇴치가 바로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며 문화 혜택의 기본 토대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또 인구 비율로 보아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에 있습니다. 그러나 배경과 과정이 어떻든지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향학열과 관심도는 아마 세계적으로 첫째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은 지나친 출세욕에 기인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공교육의 자리가 약화되고 사교육이 판을 치는 기현상의 교육문화 풍토를 조성해 왔습니다.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은 한결같이 그 이유가 일제의 억압과 군사독재시절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에 밀착되어 부를 축적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비뚤어지고 일그러진 부도덕성과 무뎌진 윤리관에 기초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목적은 공동선익, 연대의식의 확인
어쨌든 20세기를 통해 한국이라는 특수적 상황에서 빚어진 우리의 교육은 일종의 비정상이라는 역기능을 가져왔지만, 반면에 문맹을 퇴치하고 국민들의 지적 수준을 높인 순기능도 가져왔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높은 향학열과 지적 수준을 공공이익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공동선의 실현을 위해 활용해야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하는 건강한 공공의식과 함께 이웃과 공동체를 위한다는 연대의식을 갖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공유정신입니다. 공공의식과 공유정신 그리고 공동선의 자세는 무엇보다 인종, 성별, 국적, 종교 등 모든 차별성을 넘어서는 보편적 사회적 윤리가치입니다. 사실 우리의 경우 모두가 염려하고 지탄하는 것은 지역감정이라는 망국병입니다. 건강한 윤리가치관, 올바른 공공의식과 연대의식은 개인과 지역에 기초한 이 망국병을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명약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지적 교육의 향상뿐 아니라 참된 윤리관 그리고 민족의 도덕성을 함께 드높여야만 합니다. 환언하면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이른바 일류대학 출신이라 하더라도 또는 출세하고 갑부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가 만일 지역감정에 종속되어 있는 한 그는 가장 유치한 동물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셈입니다. 성숙한 지성인의 윤리가치와 선택과 판단의 기준은 오직 연대성과 공동선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올바를 윤리가치 교육입니다.

차별성을 타파해야
그런데 부끄럽게도 우리의 현실은 이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이며 신앙인인 우리가 구체적 현장에서는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않게 지역감정이라는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 똑같이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인인가를 구체적으로 하느님과 역사 앞에 진지하게 되물어야 합니다. 지역감정에 기초하여 차별성을 지니고 있는 한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3,28의 세례의 원리를 깊이 되새겨야 합니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를 입은 우리 신앙인은 사도 바오로가 분명히 거부한 당대의 3중의 차별성 곧 유다인과 이방인의 차별성, 자유인과 종의 차별성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차별성을 근원적으로 깨야 합니다. 지역감정의 차별성을 깨지 못한 채 살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참된 세례인일 수 없습니다. 차별이란 성서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엄청난 죄입니다.
이러한 한국의 상황에 대해 묵시록의 저자는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들을 책망하고 그들에게 충고했듯이, 오늘은 바로 우리 한국 지역공동체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통해서 무섭게 꾸짖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서울 사람들아, 너희가 수도에 살고 있다고 하느님 앞에서도 돋보일성 싶으냐? 천만의 말씀이다. 너희는 지금 배불리 먹고 호화 아파트에서 풍요롭게 살고 있으며 모든 것을 독식하고 있으니 결국 언젠가 배 터져 죽을 날이 오리라.
너, 인천과 수원과 경기도의 이른바 수도권의 백성들아, 너희는 앉아서 배부르고 거저 성장하고 있으니 지금은 신난다마는 너희도 어느 날 바빌론처럼 비참하게 되리라.
너, 청주와 대전 그리고 충청도야, 신행정수도가 세워지고 천도가 이루어진다니 헛바람이 부풀대로 불어 배에 꽉 찼구나. 그래 행정수도만 건립되면 만사가 형통이란 말이냐? 옛날처럼 양반의 긍지를 좀 지녀라.
너, 전주와 광주와 전라도 사람들아, 너희는 참으로 오랫동안 짓눌려 살았었지 그러나 이제 그 아픔과 고통이 승화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 중에는 툭하면 광주민중항쟁하며 광주를 너무나 많이 팔아먹고 사는 장사꾼들이 많다. 제발 "꾼"들을 정리 좀 해라.
너, 대구와 부산, 마산, 경상도 사람들아, 너희는 너무나 오랫동안 좋은 떡, 맛있는 떡, 큰 떡만 먹고 자랐구나. 그런데 그 떡의 출처를 알기나 하느냐? 너희가 호화스러웠던 만큼 너희의 이웃은 더 굶주렸었단다. 이제는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옹졸함 좀 버려라!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짐승도 제 새끼를 품는 다는데 너희는 큰떡 좀 얻어먹으려고 아직도 썩은 송장 뒤를 맴돌고 있느냐? 껄끄런 떡이라도 좋으니 제발 땀 흘려 얻은 진짜 떡좀 만들어봐라.
강원도 너 감자바위야, 참으로 오랫동안 너는 괄세를 받아왔지 그러나 내가 다 알고 있으니 슬퍼말아라. 네 옆에는 동해가 있고 또 북쪽으로는 금강산 길이 열려 있지 않느냐? 산 좋고 공기 좋은 땅 강원도가 한 번은 쨍하고 해뜰 날이 있지 않겠니. 그날을 기다리며 더욱 착심하고 노력해라.
그리고 너 제주도야, 외딴 섬에서 참으로 홀대받았었지. 그러나 너의 걸어온 길을 내가 잘 알고 있다. 이제  4·3의 아픔도 잊고 일어선 너는 참으로 가장 건강한 거인이 될 것이다. 풍악을 울릴 날을 기다려라.
그리고 남한의 모든 도시와 도민들아 내 말을 들어라.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 독재자들에게 짓밟혔던 고난의 때를 생각하며 개구리가 되었다고 우쭐대지 말고 높은 하늘과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곰팡이 같은 지역감정 좀 타파해라. 제발 부탁한다. 그리고 같은 겨레 북한의 굶주린 동포들에게 입을 것, 먹을 것을 좀더 많이 그리고 빨리 전해주어 동포애를 확인해다오!"

전인적 교육, 사랑과 박애
결국 교육이란 무엇입니까? 인성교육, 전인교육입니다.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육의 원리, 나눔과 분배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모두에게 골고루 문화의 혜택을 주어야 합니다. 특히 농어촌, 산골, 섬 등 낙후된 곳에 눈길을 돌려야 합니다. 그 나라 그 도시 문화의 판단 기준은 그곳에 높은 빌딩이 얼마나 많이 서 있는가가 아니라 바로 시골이나 산골, 섬 등 외딴 지역에 얼마나 문화적 혜택이 전달되고 있느냐 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공교육 이른바 무상교육이 잘 정착된 셈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문화와 부의 공정한 분배가 잘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곧 평준화나 획일화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능력과 수준은 다르지 않습니까? 각자에게 알맞은 교육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더 큰 능력을 지닌 사람은 그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전문인 양성
특히 물리 화학 등 전문 분야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특혜를 주어야 합니다. 축구 골프 등 각종 운동경기에 관심을 쏟는 그만큼, 아니 그 보다 더 우리는 연구실에서 한평생을 바치는 학자들을 기억하고 우대해야 합니다.
어째든 문화 혜택은 모두가 누려야할 보편적 권리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보다 못한 이웃을 도와줄 의무가 있습니다. 오늘날 아파트 가격 상승 등 물량적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의 도시문화 현실은 참으로 비정상적입니다.

노동의 고귀함과 노조의 절제와 양보 자세
또한 노조파업과 관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도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지만 노조간부들, 정규직, 특히 대기업의 노동자들도 함께 희생하고 양보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노동운동은 참으로 집단적 이기심의 표본입니다. 파업이란 최후의 수단으로서 행사될 노동자들의 신성한 권리로 이것은 인간의 권리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불의한 권력자들을 "무력의 방법과 저항이 아니면 제거할 수 없는" 이라는 조건과 같이 자신의 전 존재적 그리고 인격적 결단으로 한평생 한 번 정도 행사할 극약의 처방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노조문화는 균형을 잃고 파업을 밥먹듯이 하고 있으니 이것은 노동자 스스로 인간의 고귀한 노동의 품위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사실 한국의 노조문화는 근원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세계 각국에서 노동자와 농민,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친 성스러운 투신가들 그리고 우리의 경우 6,7 - 80년대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 피눈물을 흘렸던 선배 노동자들 그리고 자신을 불태운 전태일 청년과 같은 마음을 갖고 순수한 열정으로 거듭 태어나야 합니다. 인간다운 그리고 따뜻한 인간의 신뢰, 무엇보다도 양보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오늘의 노동운동은 인간의 본능, 욕정의 끝없는 발동으로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모두 절제와 극기의 미덕을 발휘할 때입니다.

여성의 존엄과 가치
끝으로 사목헌장은 여성의 권익과 여성에 대한 배려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끝난 지 40여년이 지난 오늘 전세계적으로 여성에 대한 인식과 활동은 거의 기적과 같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여성부가 신설되었고 각 부분 영역에서 제도적으로 여성의 참여가 보장되고 지난 4·15 국회위원 선거 결과 39명의 여성 의원이 탄생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통받는 여성들이 많이 있지만 많은 이들이 함께 고민하면서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만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수적으로만 평가될 것이 아니라 여성을 상업화하는 현대 광고문화의 근원적 개선과 함께 여성의 인격적 존엄이 확인되는 남녀평등의 사회를 이루도록 교회공동체가 더욱 분발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몫이며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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