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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사목헌장 61항 - 전인적 문화, 오직 참된 인간교육을 통해서만...
   함세웅 신부   2004-12-30 14:44:40 , 조회 : 2,158 , 추천 : 260

전인적 문화 - 오직 참된 인간교육을 통해서만 실현될 건강한 문화
- 사목헌장 61항 -


보편적 가치를 상실한 전문화 시대
문화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양이 있어야 한다고도 합니다. 문화와 교양이란 바로 참된 교육과 연마를 통해서만 이룩되는 결실입니다. 교육이란 무엇입니까? 결국 윤리도덕에 기초한 자기실현, 자아완성입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이 원리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학문과 예술 세계의 다양한 발전과 세분화 그리고 전문화에 따라 윤리도덕이라는 기본적 보편 가치는 약화되고 오직 전문성이라는 부분적 가치가 우세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사목헌장은 우선 현실을 진단합니다. 비교적 단순했던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 우리 사회는 다원화되었습니다. 학문과 예술도 한가지입니다. 대학(university)문화란 바로 다양성 안에서 일치성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것이 바로 '보편적'(universal)이란 종합적 의미인데, 오늘날에는 보편보다는 특수와 전문이 우세하고 평가받는 사회입니다. 이것이 보편성의 상실에 따른 심각한 위기이며 또한 현대인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그 두드러진 예가 바로 어린이들의 학원교육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늘 제기되고 있는 이른바 공교육의 부재와 사교육의 범람이 이를 대표적으로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저는 젊은 부부들에게 사목자로서 성서적으로 많은 자녀가 축복의 표징이니 가능한 한 자녀를 많이 낳아 잘 기르라고 말하면 그들은 빙그레 웃으면서 "신부님, 저희들이 동물인가요? 교육비가 얼마나 많이 드는지 아세요? 한 명만 낳아 잘 기르기도 힘든데 어떻게 여러 자녀를 낳아 잘 키울 수 있습니까? 신부님은 현실을 너무나 모르세요!" 하고 핀잔 비슷한 대답을 듣곤 합니다. 자녀가 많은 것이 축복이라는 성서적 가르침도 이제는 한낱 원시적 생활풍습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구 현상이 한 가구당 평균 0.7명의 자녀를 낳고 있는 셈이라서 OECD국가 중 인구 감소율이 첫째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부부 둘이 적어도 두 자녀를 낳아야 현상 유지가 될 텐데 1명도 출산하지 않으니 인구 감소는 필연적입니다. 과거 1960년대는 정부가 앞서서 산아 제한을 거의 강압적으로 요구했었는데 40여 년이 지난 지금에는 정부가 오히려 인구 감소를 염려하고 세 자녀 이상이면 특별 지원을 하고 있는 실정이니 40년이란 한 세대 안에 우리는 참으로 격세지감을 직접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1인 만능 시대였습니다. 이른바 특출한 학생이 모든 면에서 뛰어났기에 이른바 공부만 잘하면 성공이라는 도식이 통했고 또 원시적 시대라 조금 능력 있는 사람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목헌장이 선포된 1965년에도 이미 이러한 시대는 지나갔음을 공의회는 깨닫고 보편적 학문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인간이 본래 추구했던 보편적 인간상도 어쩔 수 없이 약화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40여 년이 지난 지금 오늘의 현실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야말로 급변의 시대, 세분화, 전문화된 특수 시대입니다.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매일 달라지는 무서운 시대입니다. 더구나 폭우처럼 쏟아지고 있는 TV매체의 광고 홍수는 인간의 욕심만을 불러일으키고 본능만을 재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어디에서도 보편적 인간을 추구하는 전인적 교육 내용은 찾아보기 힘든 현실입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우선되어야
저는 오늘의 현실을 지켜보면서 풍자만화를 떠올립니다. 유럽 각 지역의 큰 도로변에는 큼지막하게 큰 글씨로 토요특전 오후 6시, 주일미사 오전 6시, 9시, 11시, 오후 4시, 오후 6시라고 쓴 성당의 미사시간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미사 시간 안내판 옆에는 그 보다는 좀 작지만 더욱 선명하게 24시간 개업, 배달주문가능 이라는 악마의 광고판이 있습니다. 주일미사는 대여섯 번이지만 악마는 24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장사를 하고 있으니 상대가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의 종교현실과 세상문화를 일별할 수 있는 핵심을 찌른 지적입니다.
백화점, 영화관, 오락실, 골프장, 야구장, 축구경기장, 스키장 …… 등, 새로운 문화공간이 때로는 인간성을 심각하게 상실케 하는 무서운 현실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현실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과 품위를 고백하면서, 지성, 양심, 자유를 지닌 인간의 가치를 더욱 역설해야 합니다. 때문에 사목헌장은 결국 죽음 앞에 선 한 인간이 그리고 절대자 앞에 단독자로 선 인간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숙고하는 실존적 인간이 되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만연된 본능적 삶, 이기적 삶, 그리고 노동자들의 임금투쟁의 현실도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성을 파괴하는 슬픈 현상들입니다. 이는 교육을 통해 조절되어야 합니다. 교육이란 결국 자기와의 싸움(克己), 욕심의 자세, 양보와 절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타인을 인정하고 수락하는 삶에서 확인되는 종합적 가치입니다. 물론 오늘 우리 시대에 아름다운 모범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능과 욕심, 개인과 주관만을 앞세우는 오늘의 풍토는 근원적으로 개선되어야 합니다. 참으로 절제와 양보가 미덕인 세상을 꼭 실현해야 합니다.
전문교육 이전에 보편교육, 사교육 이전에 공교육, 사회교육 이전에 가정교육과 올바른 윤리도덕교육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경우 신앙교육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보편적 인간상의 실현입니다.
운동선수도, 연예인도, 과학자도, 예술가도 온갖 영역에서 참된 인간의 가치에 기초한 교육이 전제되고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목헌장은 바로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역설하고 있습니다.

혼인의 신성성과 가정 교육의 중요성
가정과 혼인의 신성성을 우리는 이미 48항에서 확인하고 고찰했습니다. 사실 가정이 사회와 교회공동체의 모체임은 자명합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은 부모를 통해 사랑을 체득하고 인간적으로 성숙됩니다. 혼인성사의 가치, 부부의 신뢰와 사랑이 그 기초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슬픈 현실은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40%에 육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른바 결손가정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젊은 부부들이 다투고 갈라선다고 하면 부모들이 무섭게 야단치고 검은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살아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오히려 부모들이 먼저 갈라서라고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기도 합니다. 혼인의 불가해소성이란 한낱 교과서의 낱말일 뿐입니다. 각 교구에 이른바 법원이라는 곳을 가보면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혼에 대해 정직해야 할 교회법원
가정과 결혼이 신성하고 불가해소적이라는 것은 신학교과서와 전례기도에서의 용어일 뿐 교회법원 현장에서의 적용은 전혀 다릅니다. 저는 교회법원 담당 사제에게 제안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국가법원은 매해 사건 결과에 대해 판결 통계를 발표하여 법에 대한 이해와 적용, 공통점 또는 판사에 따라 판결이 다른 경우, 구체적으로 사례를 제시하여 모든 사람들의 검증을 받도록 합니다. 그런데 교회법원의 경우, 같은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사제에 따라, 그리고 교구에 따라 판결의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반대되는 경우도 있으니 이것은 너무 큰 모순입니다. 각 교구법원은 매해 또는 2 - 3년에 한번씩 판례집을 공표 하여 적어도 대다수가 신학적으로나 상식적으로 공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지도 않으면서 교구법원에 서류를 제출하여 혼인무효선언을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사실 교구법원의 판례의 경우 국가법원의 심의조사, 조정, 판결 과정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혼인무효라는 교회법 용어도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은 언어의 유희입니다. 물론 혼인이 원천적으로 무효인 경우도 있습니다. 강제, 사기, 허위 등 일반국가법에 명시되었거나 신학적으로 자명한 경우에는 혼인무효란 표현이 마땅하지만 이미 자녀를 낳고 몇 년 동안 산 부부가 여러 가지 이유로 헤어지게 되는 경우에 이것은 분명히 '이혼' 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법원은 언제나 기계적으로 '혼인무효'라는 용어를 남용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비현실적이며 모순된 웃기는 표현입니다. 교회공동체는 모름지기 하느님과 역사 앞에서 정직한 용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온 세상이 세기를 두고 '이혼'이라고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혼은 절대불가하다'고 교과서적으로 선언하고는 사실상 그 숱한 이혼 사건에 대하여 '혼인무효'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판결하고 있는 것은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역사 앞에 정직하지 못한 위선과 거짓입니다. 오히려 교회공동체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고백해야 합니다. 결혼과 가정은 하느님의 축복의 표징으로 신성합니다. 따라서 사랑과 신의로 결합된 부부는 원칙적으로 헤어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가톨릭의 기본교리입니다. 그러나 교회공동체는 개인과 사회 등 여러 상황을 참작하여 때로는 이혼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 조치입니다.
분명히 가톨릭교회 안에도 이혼은 있고 이혼이 가능하다는 이 점을 일깨워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혼인은 신성하고 부부는 절대로 갈릴 수 없다는 교회법적 선언은 사실 바리사이파적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은 가정과 부부의 신성성을 전제하고 강조하면서 특히 이혼의 경우, 문화와 종족 그리고 지역과 국가 등 상황에 따라 너무도 다양하기에 이 문제는 그 나라 정부와 문화의 관습과 결정을 따르는 것이 더욱 타당하고 합리적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신앙고백과 언어가 정직해야 하듯 가정에 대한 교회공동체의 가르침과 실제적 적용도 정직해야 합니다.

교회의 기본단위이며 사회의 모체인 가정
어쨌든 가정은 참으로 교회공동체의 기본요소이며 사회의 모체입니다. 부부가 서로 신의를 지키며 사랑하고 존경하며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때 그러한 가정을 기초로 사회와 교회공동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건실한 가정도 건실한 사회에서 가능합니다.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오늘날 주 5일제가 정착되고 있는 이 현실에서 부부 자신은 물론 자녀들도 부모와 함께 인생과 미래 그리고 조국에 대해 가치론적으로 대화하고 고민하고 합의를 찾는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건강한 여가선용
사목헌장은 건강한 가정을 위해 무엇보다 여가선용을 꼽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스포츠 경기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을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특수한 영역과 문화도 있습니다. 이를 바로 선별하고 청소년들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부모들은 물론 교사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영적, 정신적 양식을 공급하는 제2의 부모들입니다. 오늘날 스포츠와 영화, 연예에 대한 청소년들의 관심은 거의 극적이며 때로는 광적입니다. 이를 통해 청소년들은 일종의 에너지 곧 젊음을 분출합니다. 문제는 에너지를 분출하는 방법도 건강해야 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과감한 문화적 표현의 근간도 캐어보면 결국 본능적, 즉흥적, 동물적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자연스럽다는 의미를 함축할 수 있지만 결국 동물적 욕구의 발산인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교사 등 기성 지도자들은 젊은이들의 시대적 요구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지만 젊음의 그 힘을 창조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계속 모색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스포츠를 예찬하고 즐기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상업성이 깔려 있음을 지적하고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합니다. 올림픽도 월드컵도 각종 국내, 국제 경기 이면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늘 검은 돈의 흥정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스포츠와 예술의 한계성이기도 합니다. 사실 많은 경우 예술과 스포츠의 이면에는 본능과 욕심이 합법이란 이름의 거짓 탈을 쓰고 있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예술이든 문학이든 문화든 그 어떤 것이든 인간의 모든 것은 결국 하느님과 함께하지 않고서는 허망할 뿐이라는 인간의 실존적 한계를 늘 되새기고 고백해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이외에 모든 것이 쓰레기라고 고백한 사도 바오로의 철저성을 새삼 되새겨야 합니다(필립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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