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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원 문 활짝 열어 다친 세상 치유하고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기쁨과희망   2013-07-01 11:26:23 , 조회 : 1,184 , 추천 : 128

서울 정릉동 성가소비녀회 본원에서 김근태 고문 치유 센터 개소식 열려/문양효숙 기자  



25일 오후, 고요하기만 하던 수녀원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가 수녀원 전체에 울려퍼지고 삼삼오오 모인 이들은 수녀원 정원 옆길을 걸으며 전시된 사진을 보기도, 나무 그늘 아래에서 김봉준 화백에게 글귀를 선물 받기도 한다.

이날은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숨’(이하 치유센터)이 문을 여는 날이다. 치유센터는 서울 성북구 정릉동 성가소비녀회 성재덕관에 자리를 잡았다.

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1985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 씨 등에 의해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던 김 전 고문은 지난 2011년 12월 30일 파킨슨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작년 10월 김 전 고문의 유족과 고문 피해자, 함세웅 신부, 김상근 목사, 이석태 변호사 등 각계 인사 70여 명이 참여해 김근태 치유센터 설립추진위원회를 꾸렸고, 성가소비녀회의 공간 제공에 힘입어 문을 열게 됐다.

개소식에는 김 전 고문의 부인인 민주통합당 인재근 의원을 비롯해 한명숙 · 서기호 · 남윤인순 · 안철수 의원 등 국회의원과 <남영동 1985>의 정지영 감독, 배우 권해효 씨가 자리를 함께했다.

“처참하게 고문 받고도 많은 영혼을 위로한 김근태, 고맙다”

개소식은 오후 4시, 김 전 고문이 겪은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남영동 1985>를 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개소식에 참여하기 위해 오사카에서 온 재일동포유학생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이철 씨는 “오늘로 두 번째 보는 영화인데도 보는 내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누군가 허리를 차는 듯 했다”고 말했다. 그간 산산조각 난 영혼을 달래느라 힘겨웠다는 이 씨는 “영화 속 김근태가 ‘어쩔 수 없는 거야. 아무도 버티지 못하는 거야’라고 할 때 위로 받았다”면서 “김근태 선생이 누구보다도 가혹하고 처참하게 고문 받아서 많은 영혼이 위로 받았던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수녀원에서 마련한 저녁 밥상을 나눈 후에는 배우 권해효 씨의 사회로 야외 음악회가 열렸다. 권 씨는 “분노, 억울함, 고통, 저항할 수 없는 무기력, 이런 많은 아픔을 치유하고자 하는 이곳이 열리는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둡기만 한 것 같다”며 “치유의 시작은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도 치유의 출발점이 아닐까 한다. 성가소비녀회에서 울려퍼진 작은 목소리가 우리 사회 큰 울림으로 널리 퍼질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치유센터 공동대표 함세웅 신부는 “김 전 고문이 생전에 고통을 많이 받으셨지만 돌아가시면서 우리에게 큰 가르침과 선물을 주셨다”면서 “수녀원에 자리를 잡에 된 것은 더없는 기쁨과 은총”이라고 말했다. 함 신부는 “어떤 의미에서 남북한의 8천만 모두가 상처와 고통을 안고 갈등 속에 살아왔다. 고통 받는 분들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평화의 밤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센트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5중주와 성가소비녀회에서 준비한 노래 공연으로 이어진 음악회가 끝나갈 무렵,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 온 고등학생 강승아 양(길음동성당)은 빗속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강 양은 “신문에서 오늘 개소식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수녀원을 개방해서 자리를 내주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수녀원이 이런 선택을 해서 참 좋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보살핀다는 점에서 천주교 신자의 정체성에 맞는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닫힌 수녀원 문을 열고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

지난 1년여 간 인권의학연구소에서 트라우마 치유를 받아왔고 치유센터 설립 추진위원으로 함께한 유동우 씨는 문을 여는 치유센터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무엇보다 유 씨 자신이 치유과정에서 자신의 상처를 많이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남영동에서 한 달 이상 고문당한 후유증으로 몸과 마음의 병을 심하게 앓아왔다.

유 씨는 “집을 뛰쳐나가 구걸도 하고 노숙생활도 했다. 대인 기피증이 심해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들을 찾아 치유하려는 이런 움직임이 비록 늦긴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는 것이 참 좋다면서 “문제는 민간뿐만 아니라 가해 당사자인 국가가 고통 받은 이들의 회복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치유센터를 위해 수녀회 공간을 개방한 성가소비녀회 총장 차 클레멘스 수녀는 “우리는 문을 열고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로 설립 70년이 되는 우리 수녀회의 2013년 총회 주제는 ‘세상의 절박한 곳으로 주님의 영이 우리를 다그치신다’였다. 그동안 수녀원은 늘 닫혀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향해 수녀원을 개방하고 상처 입은 이들을 살리도록 노력하자는 데에 마음을 모았다. 이 터는 500여 명 되는 수녀님들이 정성과 기도로 가꿨기 때문에 좋은 기운이 깃들어 있다. 이곳이 치유의 터전이 되길 바란다. 함께 기도하며 연대하겠다.”

치유센터는 앞으로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치유와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국가폭력의 피해와 치유에 대한 연구조사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또 공권력 남용 방지와 피해보상의 법제화, 국가폭력 피해자와 유족을 위한 사회연대 기금 조성, 국제 민간단체들과 고문방지 협력사업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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