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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승훈 신부, “괜찮아, 다 잘 될거야”라던 당신 ... 지금여기
   기쁨과희망   2013-09-16 16:04:21 , 조회 : 895 , 추천 : 123

고(故) 김승훈 신부, “괜찮아, 다 잘 될거야”라던 당신
10주기 추모행사 “우리 기억을 통해 다시 당신의 말을 듣습니다”

아무 기교도 모르고
아무 야심도 모르고
아무 소리도 몰랐습니다

사제관에 가면 남아있는 것 다 내놓으며
다 먹고 가
다 먹지 않고는 못가하고 평생 식구같았지요

오늘 당신 가십니다
가시는 그곳이 어디인줄 모르지만
그곳이 동떨어진 저 우주 승층이 아니라
이 세상 우리들 현실의 연장일 것입니다
당신은 가시더라도 남은 우리 걱정으로 편히 쉴 겨를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소서 가소서

- 고(故) 김승훈 신부 장례 당시 고은 시인이 쓴 추모시 중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태동을 함께하고, 유신정권에 두려움 없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으며, 죽는 날까지 노동자와 민중의 아버지로 살았던 ‘민중의 벗’ 김승훈 신부.

2003년 9월 2일 선종한 김승훈 신부의 10주기 추모행사가 9월 2일 오후 8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1층 강당에서 100여 명의 지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천주교인권위원회,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주최로 마련된 이날 추모행사에는 김승훈 신부의 가족, 함께 활동했던 사제들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새세상을여는천주교여성공동체, 박종철기념사업회 등 단체 회원과 신자들이 참여했다.

이날 추모행사는 김승훈 신부를 기억하는 이들이 각자의 기억에 비춰 추모와 감사의 인사를 나누는 자리였다. 이들은 한결같이 “괜찮아, 다 잘 될거야”라는 말로 위로하며 묵묵히 앞장서고, 누구나 따뜻하게 맞아 대접했던 사제로 김승훈 신부를 기억했다.

안충석 신부(서울대교구)는 “늘 신비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던 분, 오늘날 이 당혹스런 사태들을 봤다고 해도 ‘괜찮아, 다 잘 될거야’라고 위로하며 앞장섰을 분”이라고 기억했다. 이해동 목사는 “신부님은 역사 속에서 여전히 말씀하고 계실 것”이라며, “역사 속에서 그렇게, 그와 같이 말하는 이가 많아질 때, 역사는 바르게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 씨는 “그분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일찍 데려가신 하느님, 대신 우리에게 부당하고 잘못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이부영 전 의원은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진실을 밝혔던 1987년 5월 17일의 미사를 회고했다. 이 전 의원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성명서를 발표하기 전 김승훈 신부가, 제의가 뒤집힐 정도로 신자들을 향해 깊이 인사했던 모습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또 “그 순간은 역사적 순간이었으며, 국민과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순명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진실을 전하는 조용한 목소리에 철옹성 같은 저들이 무너졌다”면서 그리움과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원풍모방 노동자로서 김승훈 신부와 인연을 맺었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박순희 전 대표는 “노동자들에게 항상 힘을 주셨던 분, 만나면 항상 ‘배 고프지 않느냐, 밥 먹었냐’고 물어주셨던 분”이라면서, 원풍모방 투쟁 때 김 신부가 구사대의 모욕적 언사를 묵묵히 견디던 모습을 기억하며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후배 사제이자 현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를 맡은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는 “다들 김승훈 신부님이 살아계셨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라고 물었다.

“김승훈 신부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더 편한 사제였을 것입니다. 용산의 그분들을 형제처럼 만날 수 없었을 것이고, 강정마을은 내 일이 아닌 것으로 그쳤을 것입니다. 쌍용차 노동자들도 내 친구와 형제가 될 수 없었을 테지요.”

나 신부는 “김승훈 신부님 덕분에 하나를 잃고 또 하나를 얻었다. 사제인 나에게 큰 선물을 주신 분”이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교회가 사회문제, 그 중에서도 가장 무력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중세 교회와 다를 바 없다. 얼마나 편안한가. 교회가 돈 있는 사람들과 함께 놀고, 그 사람들 돈으로 성당 짓고, 그건 공의회 이전 교회다. 사람을 살리는 교회가 아니고, 그저 권력을 따라가고 돈을 따라가는 현세적인 교회다.” (김승훈 신부)

이해동 목사가 말했듯 추모의 밤을 보내며 사람들은 김승훈 신부의 말을 듣고 있었다. “괜찮아, 다 잘 될거야”, “나는 할 수 있을 만큼만 하는 거야.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거야.” 그리고 두려움 없이 불의를 꾸짖고 정의를 밝히는 낮고도 단호한 목소리를. 그리고 눈물과 웃음으로 10년 만에 다시 그를 보내면서, 다시 말하고 걸어갈 힘을 얻었다.

김승훈 신부의 형 김승겸 씨는 “늘 신부님을 생각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오늘 민주화를 위해 애쓴 분들이 오셨는데, 현실은 30~4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하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정현진 기자  |  regina@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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