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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류의 출현!
   정태옥   2015-05-01 07:39:49 , 조회 : 1,239 , 추천 : 137

오늘날 인류와 침팬지의 'RNA-DNA' 염기서열이 겨우 1.6% 차이로 침팬지는 동물원의 쇠창살에 살고, 인류는 우주의 주인인 냥 활개 치며 살아가고 있다. 이 1.6% 차이에 인류의 문화, 문명이 있다. 생물의 한 種인 인류에게 어떤 능력이 있어(또는 발생하여) 문화, 문명을 형성할 수 있는가? 아니면 문화, 문명 그 자체에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가? 약1천만 년 전 지구상에 인류가 출현한 이래, 수만 개의 문화, 문명이 소멸하고 발생했다. 이 인류의 유산은 'RNA-DNA'라는 단백질 정보가 아닌 정신권을 형성하여 사회유전 되었으며, 생성, 성장, 소멸을 반복하면서 보다 복잡한 사회구조와 인류의 성장을 이끌어 왔다. 이 와중에서 어떤 사람은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도 자신과 사회를 일치시키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구조적인 가난과 억압받는 삶을 강요받음으로써 소외감이 가중되어, 고립과 두려움 속에서 희망을 잃고 있다.


붓다. 공자. 예수의 공통점은 “물질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생물에서도 일어나고 인간에게도 일어난다.” 와 “소멸되는 생성” 즉 사회성이다. 붓다는 “전체는 압축되고 제한된 전체의 부분으로 구성된 부처이다.” 라고 설파하셨으며, 예수는 “인간은 神의 아들이다.” 이라 가르치셨다. 그들의 가르침은 사상이 아니라 올바른 삶 자체이었으며, 붓다와 공자는 당시 상류층 신분이었기에 그의 가르침에 별 저항이 없이 동양에서는 2500년 간 붓다와 공자의 말씀을 생활화함으로써, 나보다 우리라는 의식 속에 삶을 영위해 왔다. 그러나 예수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삶 자체와 가르침에 심오한 우주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어 “예수, 그는 누구인가?”가 그를 따르는 자들이 언제나 떨쳐버리지 못하는 의구심이었다. 당시 제자들의 의식 수준으로 ‘예수의 삶이 인간의 삶임을’인식하지 못했다. 예수의 직접 제자는 아니지만 오늘의 가톨릭(기독교)이 있게 한 바오로에 의해 예수를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로 정의 되었고 믿음의 대상이 되었다. ‘예수의 삶이 인간의 삶임을’인식한 일부 제자들은 교회에 흡수 되거나 소멸되고 말았다.  


여기에 5세기 이후 스콜라 철학(가톨릭 신학)이 플라톤의 ‘이데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를 존재로 인식하여 세상을 이원론으로 해석함으로써 예수의 본 모습은 어디가고 ‘독생 성자 그리스도’만 남아, 1천여 년 간 서양인의 사고를 정지시켰다. 물론 이 시대는 인류 전체의 사고가 ‘정적인 세계관’이었기 때문에 ‘사고의 정지’가 유독 서양에만 있던 현상은 아니었다. 문제는, 오늘날에도 이 사고를 가톨릭(기독교)이라는 종교를 통해 인류전체에 설파하고 있다는 데 있다.


서양인들에게 ‘동적인 세계관’으로 인식의 전환은 16세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비롯하여 갈릴레오, 뉴턴, 등 천체물리학에서부터 시작하였다. 그러나 서양인들의 사고는 18세기에 와서야 플라톤의 ‘이데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가 명사가 아니라 동명사일지도 모른다는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신학에서가 아니라 유물론에서부터 왔다. 마르크스로 대변하는 유물론은 물질의 일원론으로 서양인들에게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지만,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이기 때문에 유물론 자체가 ‘관념유물론’의 한계를 갖고 있다.


당시에는 근대 과학의 여명기이기 때문에 유물론의 한계점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마르크스 이후 정치권력에만 매몰됨으로써 - 좋은 의미에서 ‘삶의 올바른 실천행동’이긴 하지만 - 철학으로서 유물론은 정체되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그러나 인류가 일원론으로 사고의 전환을 가져 오게 한 공은 인류사에 커다란 발자국이 아닐 수 없으며, 사제인 샤르댕은 스콜라 철학이 아닌 이 물질의 일원론으로 사고의 전개를 한다. 18세기 교회를 떠난 계몽사상은 인류의 사회성에 큰 진전을 도왔지만, 존재론과 관념론의 한계를 못 벗어났으며, 헤겔에 의해 합리적인 이성을 통해 현상을 ‘현상 되는 것’ 동명사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지만, 神과 예수와 교회를 관념 속에 가두어 둠으로써 또 다른 하나의 스콜라 철학을 만들었을 뿐이었다.


“헤겔 이후에 철학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독일의 관념론이 지난 세기에 서양인들의 사고에 맹위를 떨치고 있을 때, 헤겔과 거의 같은 시기에 프랑스의 동물학자이며 오늘날 동물학과 식물학을 합쳐 생물학으로 명명한 라마르크(1744-1829)가 그의 저서 ‘동물 철학’에서, 생명의 물질 기원과 기린의 목으로 상징되는 ‘용불용설’과 ‘획득형질’의 유전을 통해 생물의 진화를 다윈보다 50년 앞 서 주창하였다. 더 나아가 생물의 진화는 복잡화의 증대이며 이는 의식의 증대로 이어진다고 하였다. 또한 인간의 심리는 물리, 화학법칙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으로 설명함으로써 당시의 사고로는 이해하기가 불가능하여 사람들로부터 배척받아 불우한 생을 마쳤다.


적어도 라마르크는 '물질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생물에서도 일어나고 인간에게도 일어난다.'는 진리를 알고 있었다. 오늘날 생물학과 의학에 그의 이론을 수용하기 시작했으며, 그의 뒤를 따라 샤르댕은 아리스토텔레스 이 후, 서양인 최초로 암석과 식물과 동물에서 인간의 한 단면을 보았다.
< ‘떼이야르 드 샤르댕’은 1881년 5월 1일 프랑스 중부 오베르뉴에서 태어났다. 18세에 예수회에 입회하여 1911년 신부가 되기까지 신학, 지질학, 고생물학 등을 연구했다. 소로본 대학에서 포유류의 진화를 연구, 자연과학 부분의 박사학위를 받고 “파리 가톨릭 연구원”의 지질학 교수 자격도 얻었다.


1923년 과학적 사명을 띠고 중국에 파견된 후 20년 이상 지질학 및 고생물학의 연구와 탐험에 몰두했다. 1929년 북경 주구점에서의 북경원인 발굴은 고고인류학 분야의 가장 빛나는 업적 중 하나다. 2차대전 후 파리로 돌아온 떼이야르는 “파리 과학 연구원 국립중앙연구소장”에 임명되었으며, “꼴레즈 프랑스”의 교수로 초빙되기도 했다. 1951년에는 인류학 연구기관인 뉴욕 ‘웬느 그렌재단’의 상임연구원으로 초청받고, 1955년 별세하기까지 거기서 연구와 집필을 계속했다.


그는 신학자, 철학자이기 전에 지질학자요 고생물학자였다. 그러나 경험적 현상의 발견과 설명에만 치중하는 단순한 과학자는 아니었다. 지질학과 고생물학의 발전 속에 함축된 인간의 의미를 숙고함으로써 조화있는 세계관 수립에 힘쓴 사상가이기도 했다. 그는 과학의 진화론을 신학에 도입하여 과학과 종교의 조화를 꾀하고 나아가 우주의 미래를 예시함으로써 현대 그리스도교 신학계로부터 예언자적 신학자로, 신화적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 샤르댕 지음. 이병호 옮김. 분도 출판사 간행 ‘자연 안에서 인간의 위치’ 서문에서 - >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글을 읽다보면 라마르크의 ‘동물 철학’을 읽고 있는 듯 착각을 할 때가 많다. 생명의 물질의 기원과 유기체와 무기체의 결합생성의 차이, 진화의 복잡성과 의식의 증대, 물리 화학법칙에 의한 동물의 행동과 신경계통의 복잡화와 뇌의 진화 등등 샤르댕 사상의 핵심이다. 샤르댕이 라마르크에 의해 얼마만큼의 영향을 받았는지 직접 언급한 일이 없어 그와의 관계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18세기 ~ 19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유물론에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히 보인다. 그러면서도 ‘물질 양의 증가에 의한 질적 변화’를 바탕으로 일원론을 제시한 유물론자들과는 대척점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가 신학자로서 스콜라 철학의 이원론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결코 아니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가 ‘명사’가 아니라 ‘동명사’임을 깨달은 그는 스콜라 철학의 이원론을 극복하기 위해 평생을 받쳤다.


그는 유물론자들로부터는 유신론자의 한 사람으로 낙인찍혔으며, 스콜라 정통 신학자들로부터는 유물론자 내지 범신론자로 취급되어 한 때는 그의 모든 저서가 교황청에 의해 금서로 되었으며, 그의 연구와 강의를 정지시키고 결국에는 말년에 미국 뉴욕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돌아가셨다. 그는 신학자로서 예수의 삶을 통해 ‘동적인 세계관진리’를 봄으로써 평생을 그의 신뢰를 저버린 적이 없었으며, 고생물학자, 지질학자, 고인류학자로서 '물질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생물에서도 일어나고 인간에게도 일어난다.' 와 '소멸되는 생성'은 그에게 자연스러운 의식의 전환이었다.


생명과 정신은 ‘복잡성의 물질적 결과’이지만 유물론자들은 도봉산의 바위 덩어리의 응축된 에너지보다 그 바위를 기어오르는 개미의 단위 당 응축된 에너지가 몇 억 배 크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또한 물질 덧붙임은 단순한 순열식 덧붙임이 아니라 자신이 소멸됨으로써 다른 개체와 결합하여 또 다른 공간을 형성하는 키메라 현상이며 보다 큰 공간으로의 프렉털 구조를 간과하고 있다. 샤르댕은 이 현상을 ‘똬리 틀기’라 표현했으며, 이 물질의 구조가 물질에 국한된 구조가 아니라 생물과 인간과 우주를 형성하는 본질임을 인식했다. 오늘날에서야 생물학과 물리학에서 물질의 키메라와 프렉털 구조를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인류가 세상을 이원론(전체와 부분)으로 인식하게 된 우주의 본질이다. 스콜라 철학에서 이원론은 인간에게 국한된 인식(영혼과 육신)이라는데 오류가 있다.


샤르댕에게 있어서 생물의 진화는 개체의 진화와 함께 전체가 하나의 생명으로 연관되어 진화하는 생명권의 진화이다. 오늘날 생물학에서는 DNA - 생명권 공진화라는 용어를 쓴다. 인류(Homo sapiens sapiens)는 'RNA-DNA'진화에 의한 척색동물문(門) 최종 수렴점이며, 40억 년 간 유기질 진화사의 축적되고 압축된 프렉털이며, 모든 생물의 합작품 키메라이다. 'RNA-DNA'는 생명의 정보로서 인간에게 존재하는 약30억 개 'RNA-DNA'가 생성되는 데에 약40억 년이 걸렸다. 즉 인간의 'RNA-DNA'는 생명권과 동의어이다. 오늘날 인류가 생성하는 정보는 빛의 속도로 빠르고 그 양이 기하급수로 늘어남으로써 단백질 'RNA-DNA'로 전환은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인류는 정보를 문화, 문명에 저장함으로써 정신권을 형성하여 새로운 DNA - 정신권 공진화가 시작되었다. 샤르댕은 인간에게 정신이 출현함으로써 'RNA-DNA'라는 단백질에 의한 진화가 인간에게서 끝났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샤르댕은 DNA - 생명권 공진화의 종착점이 인간의 출현으로 보았듯이, DNA - 정신권 공진화의 종착점을 ‘오메가 포인트’로 설정하여 예수와 같은 새로운 인류의 출현을 예견하였다. 마치 약40억 년 전 단백질이 이합집산을 통해 생명을 출현시켰듯이, 인간은 하나의 정신분자로써 인간과 인간 및 자연과의 키메라에 의해 새로운 인류의 출현이다. 즉 물질의 비가역 점 - 사회유전자의 출현이다. 물론 ‘생성과 소멸현상’이라는 윤회를 절대 벗어날 수없는 무기질에서, 생물은 번식과 진화를 통해 ‘불멸성’을 획득하기는 했지만, 공간과 시간의 한계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따라서 라마르크와 다윈으로 이어지는 種의 진화론이 샤르댕에 의해 보다 폭 넓게 인식하게 되었으며, 여기에서 인간의 영혼은 개체의 정보로 인식된다.


샤르댕은 현상을 통해 과학과 종교의 일치뿐만 아니라 동양과 서양의 사상을 뛰어넘어 하나의 새로운 사상을 제시한 사람이었다. 오늘날에는 과거의 사상이 미신이라 인식되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가장 앞 선 사상이었다. 문제는 사상의 전환을 거부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데 있다. 언제인가는 샤르댕 사상 또한 미신으로 전락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 인류는 머지않아 손오공처럼 자신을 복제하는 시대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의 사상은 먼 미래를 위한 사상이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가 인식해야 할 사상이며, 완성된 사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완성해 나가야 할 사상이다. 약40억 년 전 단백질에는 선택의 자유가 없었지만, 우리에게는 이 선택의 자유가 있다. 이 자유를 위해 단백질은 40억 년을 시행착오의 갈 ‘之’자 길을 걸어 온 것이다.


스콜라 철학(가톨릭 신학)에 정통한 사제인‘샤르댕’은 그의 경력에서 보았듯이 지질학자, 고생물학자, 고인류학자로서 “물질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생물에서도 일어나고 인간에게도 일어난다.”는 진리를 ‘인문학 언어’뿐만 아니라 ‘과학의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우리 일반인들이 두 분야의 전문지식 없이 그의 사상을 쉽게 알아듣기란 쉽지가 않다. 마치 물질(무생물을 뜻함) - 생명 - 정신의 출현현상은 TV나 라디오에서 동조된 희미한 특정 주파수가 진공관 - 트랜지스터 - 집적회로라는 증폭기의 발달에 따라 부피는 작아지고 성능은 수백 배로 커지는 기능과 같은 원리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인류는 이 원리를 형이상학, 관념론, 또는 이원론으로 인식하여 설명되었지만,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과학의 언어’가 더 설득력이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본 글에는 지질학, 고생물학, 고인류학에 관한 지식은 가급적 언급을 회피했다. ‘샤르댕’이후 발달한 전문 과학지식이 더 설득력이 있을뿐더러 본인 또한 전문 과학자들의 수준을 이해는 하지만 증명할 정도로 수준은 못 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현상을 인식해온 형이상학, 관념론, 또는 이원론이 ‘샤르댕’의 사상에서 어떻게 표현됐는가? 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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