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植物은 어떻게 먹고 사는가?
   정태옥   2012-12-06 11:16:49 , 조회 : 792 , 추천 : 103

235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식물학’에서, 식물의 뿌리에는 작은 입이 있어 "식물은 흙을 먹고 산다" 고 했다. 18세기 근대 과학의 여명이 오기까지 이 말은 식물학에서 절대 진리였다.  
  

19세기 들어서 식물학자들은 "식물은 뿌리에 입이 있어 흙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흙속에 있는 N, P, K ,Ca, B 등 식물의 양분을 선택 흡수하며 살아간다."고 의기 양양하게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틀렸다고 천명하였다.

그래서 식물학자들은 N, P, K ,Ca, B 등 식물의 양분을 비료로 만들기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비약적인 농업의 발달에 크게 이바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러 분야의 과학이 발달해지면서 20세기 식물학자들은, 그 N, P, K ,Ca, B 등 식물의 양분이 바로 지각을 이루는 흙의 한 요소임을 알게 되자 "식물은 흙을 먹고 산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식물은 흙을 먹고 산다"는 말과 오늘날 식물학자들이 "식물은 흙을 먹고 산다"는 말은 같은 말이지만, 그 말에 내포하고 있는 인간 의식의 크기는 아주 많이 다르다. 마찬가지로 인간 개개인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명발달에도 의식의 증대에 따라, 같은 현상이라도 달리 보이게 되는 것이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와 19세기 식물학자들은 나름으로 맞는 사고와 행동을 한 현상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식물에 대해서 그들처럼 사고하고 행동한다면 이것이 악이고 죄이다.

20세기 식물학자 의식 속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19세기 식물학자들의 의식을 내포하고 있는 오늘의 의식이다. 이것이 인간에게 선이다.
  

- 인간 진화의 축은 키메라에 의한 의식(정신)증대에 있다. -



붓다의 불성 !

공자의 인성 !

예수의 영성 !

이것은 내세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과 마음의 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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