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um et Spes Pastoral Institute *
 
 
   
            내용 : 미리 보는 주일 독서와 복음
            강사 : 함세웅 신부 / 본 연구원장
            일시 : 3월 10일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8시
            대상 : 하느님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신자

   

스승이신 하느님 - 하느님의 교육방법
   함세웅   2006-04-26 08:34:23 , 조회 : 3,070 , 추천 : 375


# 스승이신 하느님 - 하느님의 교육방법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맨 처음에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록했을까요? 글쎄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서를 갖고 있습니다. 성서란 히브리 민족의 공동작품입니다. 수세기를 두고 전해 내려온 히브리 민족의 종교 전통의 집약입니다.

여성신학자 로즈매리 류터는 성서의 전달과정을 ①계시적 원체험 ②원체험을 공동체의 의식으로 번역 ③이스라엘 역사적 공동체의 형성 ④반성과 수정 ⑤의식화(儀式化)의 단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연 하느님의 말씀을 처음에 듣고 기록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또는 모세, 사무엘, 글쎄 그 누구이든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하느님을 분명히 체험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하느님의 계시 또는 계시적 원체험이라 부릅니다. 우리가 각자 거쳐 온 사랑의 첫 체험 또는 신앙의 첫 체험을 연상하면 이해가 가능할 것입니다. 

둘째로 계시적 원체험자는 그 체험을 자기 가족 또는 가까운 친구에게 말로 또는 글을 통해 전달합니다. 이렇게 체험의 공유가 이루어집니다. 때문에 계시의 원체험이 가족 또는 부족에게 전달되어 확신되어 원체험에 버금가는 각자 나름대로의 신앙체험을 할 때 계시적 원체험이 재현되는 것입니다. 감동을 받거나 공감을 하는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  

셋째로 하느님께서는 이들을 선택하시어 모범민족으로 삼으십니다. 이스라엘 선민사상이 바로 이것입니다. 선생님은 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을 다 잘 가르치고자 하지만 교육의 효율성을 위해 모범적 학생을 뽑아 칭찬하고 또는 잘못된 학생을 벌줌으로써 다른 학생들을 이끌고 자극을 줍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당신 특유의 교육 방법으로 아브라함의 가족과 그 후손을 뽑으시어 선택된 민족으로서의 모범된 삶을 살고 이를 통해 모든 민족이 함께 변모되어 진전하도록 모든 것이 그들에게 저절로 이루어지거나 미래가 보장된 것은 아닙니다.

넷째로 시간이 흐르고 제도화가 되면서 사람은 타성에 젖게 되며 순수성을 잃게 됩니다. 때문에 반성하고 수정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원체험에 비추어 늘 현실을 반성하고 개선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삶입니다. 회개를 통해서만 이스라엘은 자신의 본 모습을 되찾고 계시적 원체험을 생생하게 재현할 수 있습니다. 예언자들의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다섯 번째로 이스라엘 민족은 공동체의 선익과 유지를 위해 종교의식을 갖게 됩니다. 공동기도, 제사, 종교적 규범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례기도, 또는 공동기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는 늘 사람과 역사, 그리고 문화적 삶을 통해 전해왔고 또 그렇게 전달될 것입니다. 스승이 아무리 훌륭해도 학생들의 학구열이 없다면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학생들의 학구열이 아무리 훌륭해도 스승의 교육방법이나 교재가 신통치 못하다면 같은 결과입니다. 참교육은 스승과 학생의 합심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의 교육도 이와 같습니다. 때문에 하느님과 사람은 필연적으로 합심의 관계에 있어야 합니다. 합심이 깨진 것이 바로 원죄(原罪)입니다. 때문에 합심을 되찾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당신 특유의 교육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교육, 구원의 역사이며 성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성서란 하느님의 말씀이며 동시에 사람의 응답입니다. 성서는 하느님과 인간의 합작품입니다. 물론 성서의 주도적 저자는 하느님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느님의 일을 도와드린, 그리고 그 말씀을 듣고 기록한 협조자입니다. 이를 우리는 도구적 저자라고 합니다. 성서는 물론 기록이지만, 기록되기 이전에는 말로 전달된(口傳) 전승의 전단계가 있습니다. 기록이전에 말씀의 단계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성서는 물론 읽고 묵상해야 하지만 그 보다는 우선 귀로 들어야 합니다. 주일미사에서 우리가 성서를 듣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들을 때마다 같은 말씀이지만 그 말씀이 주는 교훈은 다르게 마련입니다. 나의 삶이 변했기에 내가 변한 만큼 그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뜻도 늘 다르게 마련입니다.

때문에 성서의 본뜻(자의적 해석)과 내가 여러 가지로 알아듣는 교훈(심리적 해석)을 다시 연계하여 재해석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해석학적 순환’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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