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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희망' 후원회원에게 보내는 메세지입니다.


   

나는 진정 해방된 민족이며 자유인인가? <함수아 고스마 수녀 /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기쁨과희망   2018-08-01 10:39:36 , 조회 : 88 , 추천 : 14



일찍 끝나버린 장마와 비켜간 태풍으로 인해 올 여름 한반도는 열섬에 갇혔다. 견디기 힘든 폭염 속에서 스스로를 위안하듯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 있다. “덥다, 덥다 해도 8월 15일만 지나면 꺾일 것이다.” 8월 15일, 이날은 더위만 꺾긴 게 아니라 일제의 탄압이 꺾여 우리 민족이 주권을 되찾은 광복절이다. 일제강점기의 고통을 체험해 보지 못한 세대이기에 광복의 기쁨과 감격을 어머니의 체험을 통해 가늠할 뿐이다.

어머니가 어릴 적 외할아버지는 누리던 안락한 삶을 버리고 해방된 조국에서 살고자 숱한 어려움을 겪어가며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조국의 해방은 현실적 풍요조차 물리칠 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는 72년 전 다시 찾은 민족적 해방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는 진정 해방된 자이며 그 자유를 영위하고 있는가? 어렵게 되찾은 자유와 주권을 뒤로한 채 타인의 권력과 재물에 노예가 되고, 이런 저런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스스로의 자유를 저당 잡히고 살고 있지는 않는가?

세상은 어떻게든 더 있어 보이는 자리로,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는 욕망에 휘둘리고, 취업 준비생들은 그럴싸한 직장을 선호하여 불나방처럼 도시로, 도시로 몰려든다. 그뿐이랴! 뛰어 놀기에도 부족한 어린 아이들까지 미래의 직업을 향해 능력을 키우려고 버거운 가방에 짓눌려 가며 학원을 전전하는 모습은 실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다.

시인 조찬구는 ‘현대인’이란 시에서 “… 삭막한 현대 도시인의 삶, ‘죽어라 벌어서 죽어라 사고서 죽어라 버린다’ 하네…”라고 현대인을 묘사한다. 죽을 만큼의 바쁨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곳이 교회이든 수도회이든. 이러한 현대인의 바쁨은 무엇을 얻고자 함이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매일을 감동 없이 시계추처럼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인간 본래의 존엄함은 있는가? 무언가 결정할 때 너무나 쉽게 적용하는 ‘다수결의 원칙’. 다수가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듯 넘어가는 행위는 폭력이라는 범주에 넣는 것조차 어색할 만큼 일상화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일상화된 소소한 폭력으로 누군가를 억압하고 있지는 않는가? 또한 자신에게조차 “더, 더” 하며 채근하고 밀어붙이고 있지 않는가?

예수께서는 “갇힌 이들의 해방”을 선포하시며(루카 4,18) 병자와 마귀 들린 자 등 온갖 형태로 구속받는 백성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킴으로서 메시아의 시대를 여시고,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마태 11,28) 하시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와 해방을 살도록 부르신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와 해방은 타인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해방과 자유를 누리도록 존중하고 허용해야 한다.

우리는 매순간 선택할 자유가 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내 몫이고, 그 선택의 결과 또한 내가 감내할 몫이다. 72년 전 민족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희생들이 헛되지 않아야 하겠지만 그에 앞서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 본연의 가치와 존엄함이 있음을 인식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유와 해방을 살아낼 용기와 신앙이 커가기를 스스로를 응원하자.    


<함수아 고스마 수녀 /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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