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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사제 김병상 필립보<김일회 빈첸시오 / 인천교구 구월1동성당 본당신부>
   기쁨과희망   2018-10-02 20:05:45 , 조회 : 16 , 추천 : 2




나는 인천 주안1동 성당에서 신학교를 들어가서 5년간 본당신부이셨던 김병상 몬시뇰과의 인연으로 사회와 교회가 함께 연결되었음을 배웠고, 여태껏 사람 냄새나는 사제 옆에 있어 행복하다. 1932년생이신 김병상 필립보 몬시뇰은 지금 인천 서구에 위치한 요양시설에서 생활하고 계신다. 올 봄 갑작스럽게 뇌경색으로 쓰러져서 중환자실에 계셨다가 몸이 서서히 회복되어 지금은 거동이 조금 불편하지만 휠체어 타고 돌아다니신다. 며칠 전 몬시뇰을 만나러 가서 당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씀드렸다. 몬시뇰은 이 말을 듣고 무척 기뻐하셨다. 당신이 어떻게 신부가 되었고 행복한 시절이 언제였는지 이야기하셨다.

몬시뇰은 충남 공주 유구 요골공소에서 태어나셨다. 요골공소는 박해시대에 피신해 온 교우촌 마을이다. 4남1녀의 막내로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은 막내아들이 사제가 되는 것이었다. 신부님은 1948년 초등학교를 마치고 용산에 있는 소신학교(지금의 성심여고 자리)에 입학하였다. 전쟁이 나자 신학생들은 수원에서 대구, 대구에서 부산 그리고 제주도 서귀포 공소로 피난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다시 밀양에 임시로 만들어진 소신학교에서 생활하였다. 어린 중학생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이었다.  

1953년 7월, 신부님은 밀양의 임시 소신학교에서 폐병을 얻게 되었고 상심의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신학교에 입학한 기쁨도 잠시, 전쟁의 와중에서 살아남아 이제 사제가 되고자 했던 꿈이 사라질까 두렵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이 폐결핵에 걸리면 약이 없어 병을 고치기가 어려웠다. 어린 김병상은 병을 얻은 채 신학교를 뒤로하고 인천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긴 투병 생활을 하면서 긴 절망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몬시뇰은 폐결핵과의 기나긴 싸움을 하여야 했다. 신부님은 소신학교를 나온 지 11년 만에 다시 33살의 늦깎이로 신부가 되고자 가톨릭대학에 입학하였다. 같이 동문수학 했던 소신학교 동기들은 이미 서품을 받고 사제생활을 하고 있었다.

김병상 몬시뇰은 1969년 서른여덟의 나이가 되어 서품을 받았다. 소신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약 21년 만에 사제 서품을 받게 된 것이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 부모님의 손을 잡고 다니던 요골공소 어린 꼬마의 꿈은 마침내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인천교구의 6번째 사제가 된 신부님의 삶은 아름다운 꽃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기도 하였고, 정치 신부라고 온갖 욕설을 들기도 하였지만 행복하게 사셨다고 말씀하신다. 특히 한국경제가 어려울 때 실업극복운동본부에서 활동하시면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 매우 기뻤다고 하신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라는 서품 성구는 몬시뇰께서 한평생 사랑의 선교사로 사신 사랑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셨다. 행복한 얼굴로 크게 웃는 몬시뇰의 모습을 생각하며 건강 회복을 위해 기도드린다.  



<김일회 빈첸시오 / 인천교구 구월1동성당 본당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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