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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희망' 후원회원에게 보내는 메세지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이면서도 나의 어머니로!! <노희철 베드로 신부 / 수원가톨릭대학교>
   기쁨과희망   2019-04-30 10:08:57 , 조회 : 101 , 추천 : 9


  

과달루페의 성모성지를 방문하고 돌아온 한 자매가 자신의 성모님 체험을 아주 장황하고(?) 행복하게 설명을 하였다. 그녀의 체험담을 들으면서 나는 한편으로는 그녀가 부럽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부르시는 성모님의 초대의 말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날 이후부터 성모님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감으로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모님과 만날 날을 희구하며 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의 간절한 원의가 하늘에 전달되었는지, 과달루페 성모성지 순례의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과달루페에 도착하자마자 “드디어 성모님을 진하게(?)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즉시 성모성지를 방문했다. 하지만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 날 다시 성모성지를 방문했다. 하지만 결과는 첫째 날과 동일하였다. 그래서 며칠 후, 다시 마지막으로 성모성지를 방문했다. 하지만 아무런 감흥도… 성모님의 숨결을 체험하지 못한 아쉬움과 답답함이 있었지만, 성모성지를 떠나기 전, 예수님과 대화를 하려고 성체조배실을 방문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과의 만남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말씀을 건네주시는 성모님의 음성이 내면에서 느껴졌다. 성모님은 나에게 “왜 나에게 간절하게 의탁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성모님은 나에게 깊은 친교를 나누자는 것이었다. 나는 사제가 되기 이전부터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모님께 의탁하고 전구하며 친교를 나누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가 바친 묵주기도는 성모님과의 돈독한 관계를 지향하기보다는 의무적이고 형식적인 차원에서 바친 기도가 아니었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성모님을 ‘나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라고 고백하였지만, 나 자신의 흉금을 털어놓고 ‘희로애락’을 함께 공유하는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로서보다는, 신학적인 측면에서의 논리적이고 형식적인 관계에 한정된 관계이었음을 수긍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나는 성모님과의 관계를 새롭고 참다운 관계로 회복시키게 되었다. 성모님은 갓난아기의 삶에 큰 영향을 주시듯이, 나에게 필요한 삶의 요소를 주시는 분이시다. 성모님은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의 아픔과 고뇌에 대해 해결해달라고 떼를 쓸 수 있는 분이시다. 아니, 우리가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기 이전에, “왜 나를 찾아오지 않느냐?” 하며 우리와의 개인적인 친교와 만남을 고대하시는 분이실 것이다. 성모님은 잃어버린 예수님을 찾으러 성전을 방문하시고(루카 2,44 참조), 악령이 들렸다는 예수님을 찾으러 가시며(마르 3,31 참조),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에 함께(요한 19,25)하셨듯이, 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시다.

성모님은 가슴을 열고 우리와 만나기를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모님을 ‘나의 어머니’로 고백함은 물론이요, 언제나 나의 곁에 머무르시며, 나와 함께 식사를 하시고, 나와 함께 기도하시며, 나를 주님의 나라로 인도해주시는 분으로 모실 수 있으면 좋겠다.


<노희철 베드로 신부 / 수원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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