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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주일에 생각하는 ‘구원의 보편성’ <최승정 신부 / 서울교구 교리신학원장>
   기쁨과희망   2019-10-04 14:47:52 , 조회 : 27 , 추천 : 0


  

[…] 전교주일 미사, 그러니까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에서 공동체가 읽게 되는 독서와 복음은 모두 보편적 구원이라는 신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 교회는 차별하지 않고 온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해야 하고, 세상의 구원을 이루어야 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한편으로는 역사 안에서 교회는 그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해 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서양의 입장에서 본다면 세상의 끝인)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전해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

세상의 모든 종교는 구원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모든 기성 종교가 추구하는 구원은 보편적이다. 하지만 그 보편성 안에 감추어져 있는 종교적 근본주의는 오히려 세상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간다. 왜냐하면 보편적 구원이란 곧 구원의 독점성 위에 자리 잡곤 하기 때문이다. 결국 종교적 근본주의는 자주 신념에 찬 (정의로운?) 폭력으로 발전하여 세상의 평화를 위협하게 된다. 불교도와 이슬람인들이, 이슬람인들과 힌두교인들이, 그리스도교인들과 이슬람인들이 서로를 적대시하며 폭력적인 수단까지 마다하지 않고 피 흘린 역사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샤야와 바오로가, 그리고 마태오가 말한 보편적 구원이란 그와 같은 독선적 신념이었을까? 예수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작은 해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수는 그 누구보다도 신념에 찬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세상에 왔음을 분명히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예수는 그렇게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러나 역사 안에서 볼 수 있듯이 그를 따르던 교회는 잘못된 선택을 하곤 하였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지배하고, 박해하고, 억압한 교회의 역사로 인해 오늘날 선교mission라는 용어는 (적어도 서양 문화권에서는) 매우 부정적인 어감으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이루는 교회가 세상을 향해 분명히 가르쳐야 할 점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구원에 대한 신념/신앙이 결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정당성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관점에서 천주교회는 그리스도교의 타 교파와, 또한 타 종교와, 그리고 무신론자들과 세상의 평화를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나서야 한다. 이사야와 바오로, 그리고 마태오는 보편적 구원을 꿈꾸며 언제나 ‘평화’의 바탕 위에서 그것을 전했음을 교회는 잊지 말아야 한다.

*강론길잡이 <선포와봉사> 2019년 다해6권 ‘민족들의 복음화를 미사’(65-84쪽) 독서, 강론 해설에서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최승정 신부 / 서울교구 교리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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