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um et Spes Pastoral Institute *
 
 
 
 
 
 
 
 


 



‘기쁨과희망' 후원회원에게 보내는 메세지입니다.


   

연구원 이사장 김병상 필립보 신부님 선종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기쁨과희망   2020-05-06 11:54:43 , 조회 : 32 , 추천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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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 아니 넉 달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 지난 4월 21일 화요일, 연구원의 함세웅 신부님과 안충석 신부님이 방문하셨을 때, 김병상 필립보 신부님 하신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하신 후 4일 뒤 [인천교구청 확인 공식 사망 시간은 2020년 4월25일 (토) 오전 00시05분],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올해 초에 만나 뵈었을 때는 “나는 꿈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통일되면 두만강 강가에 세계 곳곳의 성모 성지를 만들겠어.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멀리 가지 않아도 그곳을 방문해서 기도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 두만강 변에서 돌아가신 순교하신 선교사, 수녀님들을 기억하면서 말이야.” 돌아가시기 전까지 여전히 꿈을 꾸시던 신부님의 말씀이 귓전을 맴돌고 있습니다.

신부님은 사제의 꿈을 꾸며 소신학교 들어가신 뒤 약 21년 만에 그 꿈을 이루셨습니다. 중간에 폐병을 앓아 학교를 중퇴하고 요양하시다 일반 대학을 마치시고 다시 신학교로 돌아오셨습니다. 서른세 살의 청년이 스무 살의 파릇한 청년들과 함께 사제 수업을 무사히 마치시고, 1969년 신부님이 되셨습니다.
연구원 잡지 <기쁨과희망> 6호, ‘만남’을 통해 들려주셨던 신부님의 진실한 말씀을 소환해봅니다.

“‘사제란 이거다’ 하고 마치 방향을 바라보고 흔들림 없이 사제생활을 지향하고 온 것은 아니에요. 다만 어머니의 기도 영향이 커요. […]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사제가 되어서 신앙의 꽃을 피워주길 바라셨고, 나는 그때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을 채워드려서 효도해야겠다, 생각한 거였어.”

“내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보수적인 신부, 옹졸한 사고방식으로 나를 고립시켰을 거야. 사제단 활동을 하면서 대사회적 시각이 넓어지고 역사관이 또렷해지고, 교회가 역사 앞에 저지른 과오에 대해서 확실하게 나름대로 철학이 생긴 거거든. 사제단 활동이 나를 올바로 키워주었다. 그런 생각을 해요.”

“사제를 신성시하면 사제는 자유롭지 못해. 자유가 없어지거든. 자아가 상실된 채 살아가는 거잖아. 사제에게 특권적 지위가 없어요. 그저 편안하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살라고 말하고 싶어.”

김병상 필립보 신부님, 하느님의 품에서 평온한 안식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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