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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러기에 담긴 큰 믿음-가나안 여인의 믿음 묵상(마태 15,21-28)<김일회 신부/인천교구>
   기쁨과희망   2020-07-29 14:41:37 , 조회 : 6 , 추천 : 0


  

예수께서는 가나안 여자의 믿음이 크다고 강조하셨다. 큰 믿음의 근거가 무엇인가? […]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를 거부한 것은 이스라엘의 지도층과 백성들이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면서도 오히려 하느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한다는 사실 앞에서 예수께서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인해서 결국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 하느님 나라는 우선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서 실현되어야 하는데, 그런 조짐은 없었다. 이제 예수의 구원 손길은 이방인에게로 향해야 했다.

이 이야기는 초기 그리스도교와 유다교 사이의 갈등을 배경에 두고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유다교로부터 분리되어서 새로운 종교로 나갈 생각이 없었다. 유다교의 신앙적 전통이 정말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몇 상황의 변화에 의해서 유다교는 그리스도교를 용납할 수 없었고, 그리스도교 역시 그 안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의 관계는 끊어지게 되었다. 그리스도교는 유다교 전통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이방인의 종교가 되었다. 그런 조짐이 예수의 공생애부터 이미 나타났다. 그것이 예수와 유다교 지도자들과의 갈등이다. 예수의 말씀이 유다교 지도자들에게서는 거부당하고 오히려 이방인들에게 수용되었다.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을 수 있다는 가나안 여자의 말이 비굴하게 들릴 수 있다. 비굴한 게 아니라 영성의 정곡을 찌른 말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부스러기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나안 여자는 주인의 상에 마주 앉아서 빵 덩이를 품위 있게 먹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부스러기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삶이 은총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안다는 뜻이다.

이것이야말로 큰 믿음이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정확하게 뚫어볼 때만 가능한 영적인 태도이다. 이런 태도에서만 영혼의 풍요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자기를 높이려는 수고에서, 그렇게 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그런 수고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멋진 식탁에서 소시지와 치즈와 여러 과일을 곁들여 온전한 빵 덩이를 먹고 싶지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만 먹고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이는 은총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그리스도교인들도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은총을 모르는 사람처럼 살아간다.

믿음의 본질은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예수 앞에서 자기를 철저하게 낮추는 것이다. 그것이 ‘부스러기라도 감지덕지로 먹는다’는 가나안 여자의 고백에 담겨 있는 영성의 진정한 품위이다. 사람은 억지로 겸손할 수도 없다. 가나안 여자의 부스러기 영성은 하느님 경험에서만 나올 수 있다. 그녀의 외침은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경험하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외칠 때만 가능한 영혼의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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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회 신부 / 인천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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