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um et Spes Pastoral Institute *
 
 
 
 
 
 
 
 


 



‘기쁨과희망' 후원회원에게 보내는 메세지입니다.


   

축복받은 불안– ‘공동의 집’을 구할 마지막 기회 <조진선 수녀 / 성가소비녀회>
   기쁨과희망   2020-08-28 11:29:46 , 조회 : 32 , 추천 : 2


  

지구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아니, 불타고 있다. 열이 높아 신음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재앙이 지구 전체를 강타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은 마침내 오늘을 초래하고 말았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수십만 명이 죽고, 홍수로 죽고, 화재로 죽고, 방사능으로 죽어가고 있다. 한 때 나는 내가 ‘지구를 구하는 소명’에 초대(부르심)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생명을 살리는 일을 부지런히 살아내려 했었다.

그러나 요즘 급격하게 파괴가 가속화되어 지구현실은 ‘기후위기’라는 불안의 시대를 맞고 있다. 아니 전 세계에 일어나는 화재, 가뭄, 홍수, 우박 등 기후재앙이 이미 일어나고 있고, 게다가 코로나19(이미 이전에 지나간 역병들의 경고가 있었고 아마도 또 다른 바이러스들이 출몰하리라!)로 우리 인간의 오만하고 잔인한 탐욕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을 생각할 때 ‘아, 난 지구멸망의 목격자로 초대된 자였던가!’ 라고 탄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의 SNS 프로필 문구는 ‘지구의 맥박과 혈압을 체크하라!’였다.

그러나 이젠 ‘지구를 구하라’로 바꾸었다. 절박감은 불안으로 이어지고 불안은 공포로 이어져 지구 종말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막다른 현실로 느껴진다. 구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하느님이 ‘사랑으로 충만하여’ 창조하신 우리 세상은 이렇게 울부짖고 있다.

하느님 앞에 서는 그날, 나는 그분께 뭐라 변명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엄습한다. 지구가 망가질 때, 미세먼지가 하늘을 가득 채우는 세상이 되어갈 때, 생물종이 하나하나 멸종해 갈 때, 어린 시절 내가 놀던 일급수 냇물이 빠른 시간에 오염되어 갈 때, 오존층이 파괴되어 갈 때, 동물들이 잔혹한 환경에서 사육되다가 더 잔혹한 방식으로 도축되는 과정에 처해질 때, 숲이 불태워지고, 그 속살을 마구 헤쳐 지구의 영을 파괴할 때 ‘너는 무엇을 했느냐?’라는 질문을 맞닥뜨리는 순간에 나는 뭐라 말할 것인가? 두렵다. 그래서 움직인다. 작은 일이라도 환경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려 뭔가를 한다.

지금의 위기는 어쩌면 최후의 기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 전에 지구를 살려야 한다. 지구의 체온을 낮추어야 한다. 그래서 오고 오는 미래 세대에게, 그리고 창조주 하느님께 ‘그래도 최선을 다했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지금은 역설적이게도 ‘축복받은 불안’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어째서 ‘불안’이 축복이 되는가. 그것은 지금 우리의 불안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미래는 생명의 세상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생명을 살리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살고 있다는 뜻이다.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 선택과 행동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졌다.

1.생명을 선택하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우리는 모든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멈춤’은 이제까지의 여정에 대해, 삶의 방식에 대해, 시스템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창조주 하느님의 선물인 자연을 훼손하고 파괴하는 자본의 착취시스템이 과연 하느님 나라의 원리인가? 하느님 나라는 어떤 생명이든지 차별과 배제를 받거나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되는 나라가 아니던가? (이사 11,1-9)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명령하신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신명 30,19)고.

2.실천 그리고 행동
몇 년 전 장상연합회 탈핵-자연에너지 팀 수녀님들과 함께 활동하던 시절의 일이다. 함께 차를 마시다가 찻잔에 차를 흘리게 되어 냅킨(휴지)으로 닦아냈다. 그리고는 내가 앉은 의자 뒤에 펴서 말렸다. 그 장면을 본 다른 수도회 수녀님이 ‘어머, 수녀님도 그렇게 하는구나, 나도 그런데’라고 하며 정말 몹시 반가워하였다. 주변에 그렇게 하는 사람을 볼 수 없었는데 나의 이런 작은 행동을 보고 신기하고도 동지애를 느낀 듯했다. 그렇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많지는 않지만 구질구질해도 종이를 말려서 여러 번 쓸 수 있음을 ‘아는 사람’들이 있다.

플라스틱, 1회용 물건들이 코로나 이후 더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내 작은 선택과 실천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그래도 나는 선택한다. 최선을 다해 쓰레기를 줄이기를. 그것이 하느님께서 만들어주신 우리 공동의 집 지구와 그 안에 사는 모든 생명을 돌보는 일이기에.


<조진선 수녀 / 성가소비녀회>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8tu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