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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희망' 후원회원에게 보내는 메세지입니다.


   

팔순을 넘기며 무념무상(無念無想)을 떠올린다<안충석 신부 / 서울교구 원로사목자>
   기쁨과희망   2020-10-12 14:53:27 , 조회 : 20 , 추천 : 1



  
예전에 어른들은 칠십 수를 넘기면서 액땜 한다고 하셨다. 나이 먹는 어려움을 표현하는 소리였다. 이제 내 나이 여든 수를 넘으면서 무슨 액땜을 해야 하나. 무념무상이 떠오른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나이 여든에 주위 사람들의 부고를 들으시고, 고인의 나이와 자신의 나이를 헤아려 선종 준비를 하셨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도 지인들의 부고를 들을 때마다 추기경님처럼 주님 뵐 날을 헤아리게 된다. 어찌 보면 우리 인생은 주님을 만나 영원한 생명과 참 행복을 얻어 누리자고 출발한 긴 여정이 아니던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격리로 인해 그 어느 때 보다 인간관계와 생명의 화두가 떠오른다.

사제가 되려는 청운의 큰 뜻을 품고 소신학교에 별과생으로서 첫발을 내딛던 그 자리에 서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와 신학교 숲속에서 매미가 요란히 울어댔다. 매미는 7년 정도 땅속에서 유충으로서 있다가 땅 위에서 7일 동안을 살며 짝짓기와 새 생명을 잇기 위하여 그토록 울어댄다. 그 생명의 긴 기다림 속에 희망의 시간을 보내다 빈껍데기만 남긴 채 매미로서 일생의 여정을 마친다. 매미의 일생같이 우리 인생도 영원한 생명으로 탈바꿈하는 새로운 탄생을 위하여 그토록 오랜 희망의 기다림으로 살아간다. 그 희망만이 남은 생의 의미와 보람이다.

영원한 생명을 향해 연장되는 시간은 시간 죽이기가 아닌 시간을 살리는 부활, 파스카 여정이다. 그래서 노년기는 단순히 생명의 연장이 아닌, 새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는 선종 준비 기간이다. 노년기가 영원한 생명과 참된 행복을 얻어 누리기 위해서, 사랑의 주님을 만나러 가는 선종 준비를 하는 기간이니 그 얼마나 설레고 기쁨을 주는 희망의 시간이란 말인가.

불확실성에 휩싸인 안개 속에 갇힌 것 같은 삶에서 의로움과 진실에 대한 믿음의 생활이 없다면, 어떻게 그 안개 속을 헤쳐 나갈 길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이룬 것도 없는 과거와 현실 속에서 희망의 덕행으로 미래의 끈을 잡지 않고서, 그 무슨 힘으로 살아나갈 수 있단 말인가? 사랑의 동물로 태어나서 부모의 내리사랑과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또한 다른 인간들과 함께 하느님의 사랑으로 살아 나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그 무엇으로 살아 나아갈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의 뜻은 바로 인간의 행복이며, 우리는 사랑으로 살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완전하심 같이 완전하게 되어 영원한 생명과 참된 행복을 얻어 누릴 수 있다. 따라서 선종 준비는 망덕(望德)을 닦으며,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주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한편 주님을 만나는 설렘, 기쁨과 즐거움이 있지만, 이제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이제 남은 시간은 최선을 다하는 사랑의 시간이어야 한다. 사도 바오로같이 달릴 길을 달렸고 싸울 것을 위해 싸웠으니, 이제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린다는 믿음으로 이 세상을 이기는 파스카 삶을 완성해야만 한다. 등잔에 기름을 채우고, 한밤중에 오시는 신랑 예수님을 기다리는 슬기로운 여인처럼, 인생의 마지막을 잘 준비하여 선생복종(善生福終)을 희망한다. 사제로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착하게 살아 복되고 거룩한 죽음을 맞이하여, 주님의 천상 잔치에 참여하고 싶다.


<안충석 신부 / 서울교구 원로사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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