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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희망' 후원회원에게 보내는 메세지입니다.


   

마음들이 자유롭게 흐르도록 <정연혁신부/수원교구>
   기쁨과희망   2016-02-05 10:23:32 , 조회 : 816 , 추천 : 110


자비의 희년이 시작되고 꼭 한 주간이 지난 날 나는 다른 본당으로 부임하였다. 와서 보니 이전 본당과 지금 본당 사이에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었다. 두 성당의 유리창이 모두 유리화로 아름답게 장식이 되어 있고 게다가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공통점이 분주하게 성탄과 새해를 새 본당에서 맞이하려는 나에게 옛 집에 다시 온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유리화를 자세히 보다가 문득 이음새를 쳐다보았다. 여러 조각을 잇는 그 사이는 최대한 자신의 너비를 작게 하여 그림들이 하나의 통일된 모습을 갖게 하여,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이 큰 도화지에 그려진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조각들이 서로 잘 이어지도록 강한 힘으로 이음새를 지지해 주어야 한다.

  교황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자비의 얼굴입니다”(자비의 얼굴 1항)이라는 말씀으로 희년을 선포하는 칙서를 시작하셨다. 자비는 보이거나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자만 예수 그리스도는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분이었다. 그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셨지만 보이는 “살”(요한 1,14)이 되어 오셨다.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영적인 자비를 보이는 인간적인 자비가 되게 하셨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자비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용서를 주고받는 경우에 그러하다. 육신으로 살아가면서도 우리가 하느님과 닮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때가 바로 이 용서의 경험이다. 그리고 그 용서의 근본이 되는 자비로운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게서 그 자비를 배울 수밖에 없다.

  하느님과 사람이라는 두 개의 유리 조각 사이에 얇디얇은 줄로 두 인격체를 잇고 있는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한다. 서로 다른 하느님과 사람이라는 두 인격체가 소통하도록 세상에 오신 그 마음을 생각한다. 그분께서는 전혀 상이한 존재인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이음새를 자처하셔서 사람이 되어 오셨고, 십자가에 매달리셨다. 그리고 “자비의 보이는 형태인 하느님의 얼굴”이 되셨다.

  그분께서 마지막 목적으로 두셨던 것은 하느님과 우리가, 그리고 우리들 서로가 대화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진실한 사랑을 나누기에 존엄한 존재로서 가지는 자유로움과 당당함을 가지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하느님의 자비를 닮은 우리의 자비는 우리의 마음이 그를 향해 막힘없이 흐르도록 하는 그분이 보내신 거룩하신 성령의 위대한 선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이라는 유리화의 얇은 접착제가 되면 마음들이 우리를 통해 자비를 체험하며 자유롭게 흐르지 않을까?

<정연혁 신부/수원교구 광남동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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