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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기억과 추모의 공동체 <오민환 바오로 / 연구원 연구실장>
   기쁨과희망   2016-06-08 11:45:06 , 조회 : 789 , 추천 : 114


올해는 유난히 비참하고 끔찍한 죽음이 많이 보도된다. 오죽하면 일간지 1면에 ‘추모가 일상이 된 나라’라는 큰 제목이 박히겠는가. 부모의 손에 죽은 해맑은 아이들, 콘크리트에 가두어 버린 사체, 허리 잘려 버려진 시신, 울산과 거제 하청노동자의 잇따른 자살, 강남역 여성 피살과 구의역 19세 용역 노동자의 어이없는 죽음,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의 죽음….

마치 무슨 연쇄살인이 벌어지는 듯, 이 나라의 죽음이 참혹하다. 무자비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열심히 살아보려 하지만 세상은 죄다 절벽이다. 생존을 위한 시스템이 무너진 사회에서 하루를 살아낸다는 것도 버거운 시민들은 무고한 죽음 앞에서 더 깊이 공감하고 허망해진다. ‘헬조선’의 청년들이 죽어간 강남역과 구의역에는 추모쪽지와 국화가 가득했다. 왜 죽어야 하는지 묻지도 못한 채 그냥 무자비하게 살해당한 여성과 지하철 안전문을 고치기 위해 홀로 안전하지 않은 문으로 달려 든 청년의 죽음, 모두 꽃다운 청춘의 비참한 죽음이다. 그리고 죽음이 어쩌면 나였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 추모의 공간을 이루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6년을 ‘자비의 해’로 선언했다. 정말 이 세상은 자비(misercordia)가 그립다. 대화를 잃어버린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묻지마’라면서 상대를 너무나 쉽사리 제압하려 한다. 그리하여 경제만 위태로워진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목숨도 위태로워졌다. 더 이상 자비롭지 않은 ‘헬조선’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든 숨쉬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도대체 이 무자비와 비정함은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차갑게 만들었나. 분명한 것은 양극화와 불평등이 사회 곳곳에 만연하고, 그것이 민주주의를 좀먹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죽음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특히 사회적 타살이라 부르는 죽음은 그 원인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진실의 문제이다. 2년 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도대체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말해주지 않는가. 너무도 슬픈 죽음의 진실이 은폐되고 있다. 진실을 은폐하고 진리를 왜곡하는 이들이 버젓이 판치는 이 무자비하고 비정한 세상에서 희망이란 무엇인가.

불의로 진실을, 진리를 억눌려는 이들을 두고 바오로 사도는 “비정하고 무자비한 자”(로마 1,31)라 했다.
자비는 정의와 무관하지 않다. 6월은 예수성심성월이다. 예수의 성심은 비정하고 무자비한 자들에 의해 창에 찔리고 깊은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예수의 착한 마음, 거룩한 심장은 제자들을 다시 모이게 했고, 스승의 죽음을 기억하게 했고, 교회를 이루게 했다. 교부들의 전통은 아담의 늑방(심장)에서 하와가 나왔듯이, 새 아담 그리스도의 늑방에서 새 하와인 교회가 탄생했다고 증언한다.

이로써 예수성심은 그리스도인 정체성의 뿌리가 된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지만, 세상에는 교회가 왔다고 한탄할 것만은 아니다. 교회는 예수성심을 기억하고 예수의 삶을 살아가는 기억과 추모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예수성심은 하느님의 마음이요, 하느님의 마음은 정의와 자비이기 때문이다. 예수성심은 착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 뿌연 6월, 예수성심, 하느님의 마음으로 숨을 쉬고 싶다.

<오민환 바오로 / 연구원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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