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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복자, 가깝고도 먼 당신 <이영춘 사도요한 신부 >
   기쁨과희망   2016-09-09 13:24:01 , 조회 : 764 , 추천 : 111


2016년 올해는 병인년(1866년) 박해가 시작된 지 150년이 된다. 150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로 따지면 강산이 15번 변한 것이고, 요즘처럼 빠르게 변하는 것으로 치면 그 이상은 될 아주 긴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100세 시대라고 하는 말로 치자면 그렇게 먼 시간도 아닌 느낌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멀게도 느껴지고 가깝게도 느껴지는 150년 세월이다.

올해가 병인박해 150주년이라서 각 교구마다 기념행사들이 행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행사를 바라보는 마음이 왜 공허하고 멀게만 느껴지는지 자문하게 된다. 왜냐하면 여러 곳에서 강의하다보면 지금의 신자들과 성인·복자·순교자들이 너무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전주교구에는 병인박해 때 순교한 7성인, 그리고 여러 박해 때마다 순교한 24위 복자가 계시는데, 신자들에게 물어보면 몇 분인지 아는 신자도 드물고, 한 분 한 분까지 아는 신자는 더 드물고, 어디에 살았고 어떻게 살았으며 어떻게 순교했는지 아는 신자는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성인이나 복자가 많으면 무슨 소용인가? 신자들의 마음속에는 죽어있는 성인이요 복자인 것을! 성인이나 복자는 살아 있는 현재의 우리들을 위해 필요한 분들이다. 그래서 성인이나 복자를 현양하는 일은 모두 우리를 위한 일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성인이나 복자 한 분 한 분의 삶과 영성을 알아야 한다. 도매급으로 그 분들을 생각하지 말고, 한 분 한 분의 중요성을 생각해야 한다. 단 한 분이라도 진지하게 그 삶과 영성을 찾아내고 알려야 한다. 다 같은 순교자인 듯 보이지만 각자의 처지와 환경, 증언이 다르듯, 삶의 모습과 영성도 다르기 때문이다. 순교자들의 다양한 삶과 영성은 곧 다양한 삶 속에 있는 신자들의 마음에 각자에게 맞는 형태로 다가갈 수 있고, 그렇게 됨으로써 더 친근한 성인 복자로 신자들 사이에 자리매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 성인이나 복자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신자들은 그 성인과 복자의 모범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도 생길 것이다.

그리고, 가톨릭교회의 중요한 전통인 ‘성인들의 통공’이라는 교리와 그 실천의 모습이 퇴색된 경향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성인이나 복자의 전구를 신자들이 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천주교회는 순교자들에 대해 시복시성운동이니 성지개발이니 성지순례 등 많은 일들을 해왔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성인들의 통공’ 교리를 소홀히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성인들의 통공이 빠진 순교자 현양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현양이란 말인가! 간구하지 않으니 성인이나 복자의 전구를 통한 은총도 없는 것이고, 그분들과 신자들은 별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순교자현양의 핵심은 전구를 청하는 일이다.

병인박해 150주년을 맞이하여 순교자들과 신자들이 더 가까워지길 바란다.


<이영춘 사도요한 신부 / 호남교회사연구소 소장 겸 전주교구 용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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