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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자 요한, 마지막 예언자? <최승정 신부 / 서울교구>
   기쁨과희망   2018-06-01 16:15:41 , 조회 : 137 , 추천 : 18


  
비단 이사 49장뿐만 아니라 구약성서의 전 부분을 통해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얼마나 진지하게 신학적으로 해석했는지를 보며 어떤 놀라움을 느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의 가장 암울하고 비극적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과거-현재-미래를 자신들의 믿음의 눈으로 보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노력했으며, 자신들의 후손들에게 그들의 업적인 신학적으로 해석된 역사를 넘겨주었고, 또한 그 후손들이 그들의 일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중략]

이런 맥락에서 세례자 요한의 대축일에 ‘야훼의 종의 노래’를 읽으며 […] 그 노래에 담긴 중대한 의미를 발견한다. 세례자 요한을 마지막 예언자라 보았을 때, 구약에서 예언직이 그에게서 절정에 이르고 있음을 볼 때,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자신들의 사도직을 통해 왕직-예언직-사제직으로 불린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과연 구약의 예언전통이 어떻게 우리의 오늘에 현재화될 수 있는지 묻는다. […]

그것은 신학적인 의미에서 ‘예언’이란 바로 미래에 대해 아는 초인적-초자연적 능력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통찰력, 즉 ‘시대의 징표’를 읽는 능력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개인적 의미에서건, 아니면 사회-정치적 의미에서건 우리의 신앙의 눈으로 우리의 현재를 들여다보고, 해석하는 것을 거부할 때, 우리는 올바른 성서의 (예언)전통 안에 있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현재를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좁은 의미에서) 종교적 영역에 국한하여 이해하려 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현대를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으로서 적절치 못하다. 성사 안에서 받은 은총을 통해 우리가 각자의 현재를 신앙의 눈으로 통찰하며 살아갈 때, 세례자 요한은 ‘마지막’ 예언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적 예언자의 첫 번째 원형이 된다.

오늘의 현장교회에서도 세례자 요한과 같은 예언자들을 만난다. 자기 삶의 자리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서 섰던 예언자들을…. 서울대교구의 김승훈 신부님, 예수회의 정일우 신부님, 살레시오회의 도요안 신부님, 이소선 어머니, 민주주의자 김근태…. 우리와 함께하며 우리를 지켜주었던 그 숱한 세례자 요한들을 기억하며, 하느님께서 얼마나 세상을 사랑하시고 또 그 사랑 때문에 얼마나 세상의 회개를 원하시는지 새삼 깨닫는다.

몇 년 전 제주 강정마을에서 한 사제는 이렇게 외쳤다. “나는 불의를 보고 침묵하라고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 말마디는 우리가 모두 익히 알고 있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의 것이었지만 그 사제의 외침에 깜짝 놀란 사람은 비단 필자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치 세례자 요한의 외침에 권력자들이 놀랐듯이….


<최승정 신부 / 서울교구>

*2018년 <선포와봉사> 4권 ‘성 요한 세례자축일’(6월24일)복음 해설에서 발췌했습니다. 강론길잡이 <선포와봉사>의 정기구독을 부탁드립니다(1년 6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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