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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지구를 위한 윤리학 <레오나르도 보프 / 번역 오민환>
   기쁨과희망   2018-09-04 15:07:28 , 조회 : 50 , 추천 : 7



전지구적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인간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적으로 확인되었다. 이 변화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적 행위에 기인한다. 인간의 행위는 자연의 순환주기에 어울리지 못했다. 자연에 순응하기보다는, 자연을 인간과 자신의 이익에 맞추려고만 했다. 2백 년 전부터 인간의 주요관심사는 부의 축적과 몇몇 소수의 삶의 기준에 맞는 이윤이었다. 처음부터 이들은 재화를 약탈하고, 민중 특히 토착민을 조직적으로 착취했다. 이러한 수탈과정을 진행한 국가들은 지구시스템의 한계에 걸맞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 국가들은 자연과 지구에 대한 승리가 불확실해도 늘 전쟁을 수행했다.

어머니 지구는 극단적인 사태들을 (가뭄과 홍수, 폭설과 폭염) 통해 내재된 한계에 반응하고 자신을 표현했다. 이 사태들로 지구는 인간에게 큰 근심거리를 안겼다. 유엔에서 개최했던 다양한 기후회의는 한반도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단지 21차 파리 기후협약(2015)에서 지구 온도상승을 2도 이내로 막자면서 처음으로 최소의 합의에 도달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협약은 구속력이 없다. 당사국들은 이 협약에 동의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환경정책을 후퇴시켰던 미국 의회가  보여주었듯이 강제력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협약을 무의미하고 허망하게 만들었다.

이제 윤리적이고 과학적인 물음이 중요하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자연과 공동의 집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과거나 지금이나 적합하지 않고 파괴적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2015)에서 ‘공동의 집’을 말한다. “이러한 상황은 누이인 지구가 세상의 모든 버려진 이들과 더불어 외치면 우리가 다른 길을 찾아볼 것을 호소하게 합니다. 우리 공동의 집을 지난 200년 동안 아프게 하고 잘못 다룬 적인 일찍이 없었습니다”(53항). 상처 입은 생명력을 복원하고, 그래서 우리에게 항상 베풀었던 것을 계속 베풀 수 있는 지구를 위한 재생의 윤리를 긴급 요청한다. 여기에는 신중함의 윤리, 즉 지구의 순환주기와 공동 책임에 대한 존경의 윤리가 중요하다. 하지만 지구를 위한 윤리로는 불충분하다. 이 윤리는 영성을 동반해야 한다. 이 영성은 마음과 감수성의 분별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로부터 로마 주교 프란치스코의 회칙 끝에서 말하는 신중함의 열정과 사랑을 향한 진지한 헌신, 책임 감수 그리고 공동의 집을 위한 공감이 나타난다.  

사후에 공개된 생택쥐페리의 1943년에 쓴 ‘X 장군에게 보내는 편지’는 이를 뒷받침한다.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지성의 삶 위에 있는 영혼의 삶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바로 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인간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스페인 내전 당시 <파리 수와르>지 특파원으로서 일하던 1936년에도 그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영혼의 삶을 성찰했다.

“인간은 오직 타인과 공동체를 이루고, 사랑과 우정 안에서 자아를 실현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단지 서로 가까이 서 있음으로가 아니라, 같은 신성 안에서 연대함으로써 하나로 결합한다. 사막이 된 세상에서 우리는 함께 빵을 나눌 수 있는 동료, 꼼빠니아를 갈망한다”. 또 그는 X 장군에게 보내는 편지를 “오, 우리는 한 하느님을 얼마나 필요로 하고 있는지!”라는 말로 맺는다.

영혼의 삶은 실재로 인간을 충만하게 한다. 이것은 종종 종교심과 동일시되거나 혼동되는 영성의 아름다운 종합이다. 영혼의 삶은 좀 더 심오하고, 지성과 의지력처럼 원천적이며 인간학적인 실재이다. 그것은 본질적 심층에 속하는 그 무엇이다. 우리는 육신의 삶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수많은 피트니스 센터 덕분에 어느덧 몸가꾸기는 문화현상이 되었다. 다양한 경향의 심리분석가들은 우리의 정신 상태를 돌보고, 노이로제 또는 우울 없이 상대적으로 균형 잡힌 삶을 살도록 돕는다. 하지만 우리의 문화적 프락시스는 영혼의 삶을 돌보는 것, 즉 우리의 가장 근본적 차원을 잊고 있다. 그곳은 가장 대담한 꿈이 머무는 위대한 삶의 물음, 그리고 가장 위대한 유토피아에서 만들어진 자리이다. 영혼의 삶은 무한한 것에 대한 공감, 신중 그리고 개방을 통해 다가서게 된다. 영혼의 삶, 그리고 생명으로 초대하고 감사하도록 만드는 방향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 목적 없이 방황하게 된다.

지구를 위한 윤리학은 영혼의 삶이다. 이는 우리가 사랑과 신중함에 빚을 진 어머니 지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출처: https://leonardoboff.wordpress.com/2017/04/09/eine-ethik-fur-mutter-erde/)
  

<레오나르도 보프 / 번역 오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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