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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이슈와 일상의 물음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려는 우리들의 생각을 모아봅니다.


   

여성, 본래의 존엄함을 회복하라! <함수아 고스마 수녀 / 까리따스 수원관구>
   기쁨과희망   2019-04-30 10:13:01 , 조회 : 30 , 추천 : 1


  

온갖 꽃들의 향연과 유록색의 어린잎들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세상의 5월은 아름답기 그지없고, 교회는 마리아가 인류에게 어떠한 존재임을 다시금 조명하는 성모성월을 지내고 있다. 요즘 들어 정치인, 연예인 등의 입에 올리기조차 부끄러운 일들이 뉴스에 오르고 있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그 심각성이 커져서 인간의 추악함과 타락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깊은 탄식이 절로 나오고 있다. 사람은 본래 혼자 살 수 없고, 혼자 살 수도 없어서 그 범죄의 뿌리와 실체들이 드러나면서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아 일어나는 사건들은 오늘을 사는 모든 어머니들, 자매와 어린 친구들에게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고, 또 앞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이는 한 개인의 문제라 볼 수만은 없다.

여성의 존재는 창세기에서 볼 수 있다. 인간의 창조설화를 보면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창세 2,23). 즉, ‘사람’이라 칭했던 그가 여자를 만나면서 ‘남자’가 된다. 이는 ‘남자’라는 단어는 ‘여자’가 있을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창조 때 여성은 분명 하느님의 모상으로 만들어졌고, 예수 또한 당시 문화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될 여성들과의 만남과 대화는 여성의 본래를 존엄함을 되찾아 주고자 하는 몸짓 언어였다. 뿐만 아니라 예수의 전도여행을 도왔던 여성들과도 동등한 위치에서 전도 일정에 대해 대화하고, 실행하였으리라 가늠할 수 있다. 예수 부활의 증거자 또한 여성이었으며, 초대 교회 또한 마리아와 더불어 많은 여성들이 선교와 일치의 중심에 있었음을 볼 수 있다.

현대 교회 또한 여성들의 다양한 활동을 배제하고는 그 존재유무를 확신하기 힘들다 해도 무리는 아니리라. 이렇듯 교회 내에서 보여지는 역할로만이 아니라 여성, 그 존재만으로도 그 존엄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 여성 스스로도 자신들의 존엄함과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그 근본은 나자렛의 마리아이다. 어린 마리아는 조상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에 대해 들었을 것이기에 “때가 차자”(“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갈라 4,4) 구세주이신 예수의 강생의 신비를 알리는 천사에게 하느님의 뜻에 대해 “예”라고 응답함으로써 강생의 신비에 참여하게 되었다. ‘예’라는 응답은 단순한 응답이 아니다.

마리아는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온전한 자기증여를 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였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실현하게 되는 마리아의 자세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소명이 무엇인지 다시금 되새겨 보아야 한다.
남자와 여자는 하느님 창조의 목적에 맞게 서로 보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여자 없이 남자가 없듯 그 둘의 존재는 동등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색해야 한다. 그 어떠한 목적으로라도 지배하거나 이용해서는 안 된다.

사회뿐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여성수도자들의 근본적인 존엄함은 역할만이 아니라 존재로서 존중되어야 하고, 배려되어야 한다. 또한 여성신자들의 노동력의 가치만이 아니라 여성의 섬세한 감각과 낳고 기르는 본성, 영적인 예민한 감각 등 소중한 자원들을 통해 보다 풍요로운 교회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연대해야 할지, 신부로 칭하는 교회가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일치하기 위해 어떠한 모습을 지녀야 할지 각자의 자리에서 깊이 성찰하고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매일같이 만나는 수많은 여성들은 누군가의 엄마, 아내, 딸이기 훨씬 전에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이며 이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태어난 고귀한 소명을 지닌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나를 여성으로 창조하신 하느님께 마리아처럼 마니피캇을 부르며 찬미를 드리고,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예수부활의 증거자로서 오늘을 사는 여성들에게 진정한 여성의 존엄함을 회복하도록 촉진자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함수아 고스마 수녀 / 까리따스 수원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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