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um et Spes Pastoral Institute *
 
 
 
 
 
 
 
 


 



사회적 이슈와 일상의 물음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려는 우리들의 생각을 모아봅니다.


   

“이대로 끝이다!”, 그렇게 시작했다 <박주환 미카엘 신부/ 대전교구>
   기쁨과희망   2020-05-06 11:56:17 , 조회 : 29 , 추천 : 5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대수천’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흔들리던 제 사제 성소를 더욱 굳건하게 잡아주시고 바람 앞 촛불처럼 꺼져가던 사제적 열정을 다시 불태워주신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항상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이라는 반전으로 찾아옵니다. 절망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합니다. 쓰러진 이를 다시 담대하게 일으켜 세우는 희망 앞에 처참히 무너집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다시 일어섭니다. 그것은 과거의 일이면서 동시에 지금 벌어지는 일이고 앞으로도 영원무궁토록 이어질 것입니다.

2007년 1월에 사제품을 받았던 저는 2015년부터 1년 반 동안 건강 문제로 요양 중이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모친을 하늘나라로 보내드리면서 준비되지 않은 이별에 대한 상처는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게 해주었습니다. 더구나 모친의 죽음과 더불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 수년 동안 서로 얽히고설켜서 더는 사제로 살 이유를 찾지 못했고 살고 싶지도 않았으며 살아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절망적이었고 지쳐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를 꺼내지만, 그때 저는 홀로 남겨진 부친과 가족들에게 천주교 사제로 더는 살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가 생각한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교님께도 찾아가 사제로 살고 싶지 않다고,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계셨던 주교님은 저에게 있고 싶은 곳에서,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지내라고, 그러나 연락은 꼭 하라시며 손에 봉투 하나를 잡아주시고 저를 꼭 안아주셨습니다. 지금은 돌아온 탕자 이야기가 생각나지만,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나갈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요양 중이지만 ‘이대로 끝이다’ 생각하며 일을 시작했습니다. 사제를 그만두더라도 아내를 잃고 홀로 되신 아버지를 부양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제로 살던 한 인간이 갑자기 나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물류센터에서 일용직 일도 하고 창틀을 만드는 회사에서 외국인노동자들과 함께 일용직 일을 했습니다.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리고 신자 분들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새삼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인제 와서 감히 부끄럽게 고백합니다.

하지만 일을 하더라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 싶어 다른 일을 찾았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버스운전과 택시운전을 하시며 가족들을 부양하셨기에 저 또한 군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한 기술로 전세버스회사 비정규직 기사로 일을 했습니다. 직책 있는 관계자가 45인승 버스를 운전시켜보더니, 다음날부터 출근하라고 해서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출근하는 회사원들을 수송하고 오전에는 대학생들 학과 수송을 하며 저녁에는 다시 퇴근하는 회사원들을 데려다주는 일을 배우고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께 그동안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고생하신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보고자 버스운전 일을 시작했다고 말씀드렸더니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다가 조심히 운전하라는 짧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그 말씀을 듣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습니다.



<박주환 미카엘 신부/ 대전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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