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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이슈와 일상의 물음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려는 우리들의 생각을 모아봅니다.


   

건설적 파괴 <장유진 수산나 / 수원교구>
   기쁨과희망   2016-06-08 11:46:58 , 조회 : 590 , 추천 : 91


기본적으로 정치를 보는 시각은 불신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의원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금품수수, 청탁, 압력, 성추문 등 볼썽사나운 일들을 저질러 왔고, 국가 정책을 결정할 때 노골적으로 정파적 이익을 앞세우거나 의원 개인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려고 했다. 가뜩이나 취업절벽에 좌절하는 청년들을 두고, 여야의원의 자녀 취업 청탁 논란은 국민의 분노를 사고도 남았다.

정치인의 부패에 더해 정부에 대한 불신의 증가 이유는 여러 가지다. 빈부격차 심화, 실업률 상승, 개인주의 확산에 따른 불신풍조 만연, 포퓰리즘 정치에 대한 거부감, 권력 장악을 위한 정당의 상시적 정쟁, 그리고 단지 생존과 안전을 원하는 소박한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에 불신임 등이 더해진다.

지난 5월 30일 제20대 국회의원 임기가 개시되었다. 16년 만에 여소야대 구도가 되었다며 정치에 대한 일말의 희망적인 기대감이 일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 아니 차악이라도 택하고, 우리의 의무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고 선거를 독려했다. 선거를 했으니 할 도리를 다한 것일까. 선거가 끝난 지금 우리의 자리에서 각자가 할 일은 무엇인가.

공약을 지킬 수 있도록 감시하는 것은 국민들의 몫이다. 그저 감시가 비판에만 머물러 있으면 정치를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없고, 오히려 국민 사이에 만연한 정치 불신만을 키울 것이다. 건전한 정치 발전으로 이룰 수 있도록 채찍과 당근이 필요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라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

가톨릭교회는 정치 참여의 기준으로 공동선 추구, 빈곤과 고통 상황 안에서의 정의의 추구, 자율성의 존중, 보조성의 원칙 준수, 연대를 통한 대화와 평화 증진을 요구한다. 복음적 삶, 표징적인 삶을 살라고 요구한다. 정치가 책임과 도덕성을 갖출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이 솔선수범해야 하는 것은 틀리지 않은 말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100여 년 전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은 “약자 위에 강자가 있고, 천한자 위에 귀한 자가 있어 모든 불평등을 가진 사회는 서로 약탈, 서로 박탈, 서로 질투, 원수시하는 사회가 되어, 처음에는 소수의 행복을 위하여 다수의 민중을 해치다가 말경에는 또 소수끼리 해치어 민중 전체의 행복이 필경 숫자상의 공이 되고 말 뿐이니, 민중 전체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파괴함이니라”라고 했다. 마치 오늘 이 시대를 두고 예언한 듯하다.

우당 선생의 가르침대로 각자가 독립운동가의 기백을 가지고, 또 새로이 시작하는 국회가 혁명가처럼 꿈을 먹고사는 현실주의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파괴적 정신이 곧 건설적 주장이니, 나아가면 파괴의 ‘칼’이 되고 돌아오면 건설의 ‘깃발’이 될지니, 파괴할 기백은 없고 건설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생각만 있다 하면 500년을 경과하여도 혁명의 꿈을 꾸어보지 못할지니라.”

욕심 많은 사회에 고분고분 이용당하지 말고 무관심과 책임전가에 편승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생명이 중요하고,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한 사회가 만들어지길 기원한다.

<장유진 수산나 /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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