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um et Spes Pastoral Institute *
 
 
 
 
 
 
 
 


 



사회적 이슈와 일상의 물음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려는 우리들의 생각을 모아봅니다.


   

나라고 왜? <김선영 도로테아 / 서울교구>
   기쁨과희망   2016-07-11 14:31:32 , 조회 : 742 , 추천 : 152


“나만 아니면 돼!” 언젠가 모 TV 프로그램을 보던 중 복불복 게임을 하는 출연자들이 자기가 살아남으려면 상대를 떨어뜨려야 하니 어떻게든 상대를 이기려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며 수시로 내뱉던 말 중의 하나이다. 처음엔 무심코 들던 이 말이 한동안 잊히지가 않아 그 말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보게 되었다. 이 말은 내가 살기 위해서 상대가 죽든지 말든지 그저 나만 이기면 된다는 것이고, 내가 살기 위해서라면 남은 그저 나를 위해 마땅히 사라져줘야 하는 장애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는 말이었다. 심지어 상대는 내가 밟고서라도 올라가야 할 사다리에 불과하다는 그런 의미까지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참으로 무서운 말이구나 싶어 소름이 돋았다. 물론 그 게임을 하던 출연자는 이렇게까지 깊은 의미를 담지 않고 프로의 재미를 위해 했던 말이겠지만. 그런 이유로 나는 그때이래로 가장 싫어하는 말이 되었다.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부조리한 일들 또한 이런 무서운 생각이 지배하는 탐욕에서 빚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월호가 그랬고, 강정마을이, 쌍용자동차가, 콜트콜텍 해고근로자, 구의역 사고 청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겪는 그 아픔을 보면서 나를 비롯한 우리는 한동안은 관심을 갖는다.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흐르면 가슴은 아프지만 다행히(?) 나를 비켜간 일이고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는 단지 그들의 일이라는 생각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 버리곤 한다. 적어도 지금 나는 아니니까…. 그러나 이렇게 일상으로 돌아간 우리는 과연 얼마나 다행일까? 정말 나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건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서로 연결 되어있다고. 그런데 나만 아니면 된다고 우리 중 누가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쓸 수가 있을까?

쓰라린 아픔의 한 가운데 있는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을 한다. “내게 이런 일이 닥칠 거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라고. 맞다. 그들에게 벌어진 엄청난 일들이 오늘은 내 일이 될 수가 있고 또 미래 우리 자식들에게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아무도 이런 일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면 이렇게 지낼 수만은 없다는, 아니 그냥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가슴 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있다.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 3,16).

얼마나 준엄하고도 강하게 내 가슴을 때리는 구절인지 모른다. 나라고 그들처럼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애초에 없는 것이다. 나라고 왜?

그럼에도 정작 그들과 함께하는 자리엔 용기를 내지 못하여 적극적으로 참여는 많이 못하고 있다. 단지 상황이 될 때,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방법으로든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을 아프게 고백할 수밖에 없다. 많이 부끄럽다. 그러면서 남미의 작은 벌새 크리킨디를 기억한다.

“나는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라고 나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김선영 도로테아 / 서울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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