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um et Spes Pastoral Institute *
 
 
 
 
 
 
 
 


 



사회적 이슈와 일상의 물음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려는 우리들의 생각을 모아봅니다.


   

아픈 몸, 아픈 교회 <박상희 도미니카 / 수원교구>
   기쁨과희망   2016-08-10 11:07:16 , 조회 : 833 , 추천 : 119


  병원이라고만 하면 왠지 모를 두려움이 앞선다. 코끝을 자극하는 소독약 냄새, 차갑게만 느껴지는 기구들, 끙끙 앓는 환자들의 신음소리 모두 두려움을 배가시킨다. 두려움 때문에 웬만하면 병원 방문조차 꺼려했다.

  아픈 건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얼마 전 몸이 좋지 않은 신호들을 보내왔다. 몸의 피로가 계속 풀리지 않았지만 만성피로려니 하고 넘겼다. 또 살이 자꾸 찌는데 그것도 운동 부족이겠지 하고 바쁜 일상 속에 지나쳐 버렸다. 그런데 월경을 자꾸 거르게 되면서 내게 폐경이 온 것인가 하는 마음에 산부인과를 찾았는데, 폐경은 아니고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라고 했다.

  덜컥 겁이 났다. 동네 병원도 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고 미뤘는데, 병원에 가서 이런 저런 검사를 받고 나니 진단이 내려졌다. 방사선 치료 가 선택되었다. 다시 받고 싶지 않은 몽롱하고 기분 나쁜 치료지만 내 몸은 건강해질 거라는 믿음으로 견뎠다. 아직 경과에 대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좋아졌을 거라 믿는다.

  내 몸처럼 교회도 많은 신호들을 보내고 있다. 하다못해 영화 속에서도 천주교회는 매너리즘에 빠지고 복지부동하는 모습으로 비친다.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는 악령과 싸우는 사제를 감시해야 할 문제 신부로 취급하고, <곡성>에서는 악령이 들린 딸을 어떻게든 구하고 싶어 성당을 찾아온 아버지에게 공감은커녕 아플 땐 병원에 가라며 냉소적으로 응대한다.

  교회의 많은 신자들이 냉담자로 분류된다. 세례에는 혈안까지는 아니고 조금 관심을 가지지만 신자관리에는 더 소홀한 게 현실이다. 봉사자는 봉사에 지치고, 냉담자는 권위적인 모습 혹은 기대에 못 미치는 교회의 모습에 등을 돌린다. 성당은 점점 화려해지고 세련미를 더해가지만 신앙심은 세례 받던 그 때 그대로 혹은 더 작아져만 간다.

  성당에 다니는 신자라고 하면 왠지 우쭐하던 시대가 있었다. 사제나 수녀에 대해서도 우호적이고, 덮어두고 존경하던 그런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점점 그 존경은 점점 옅어지고 있다. 어느 때부턴가 교회는 불편하고 소외되고 난처한 곳에서 소리 없이 멀어져 간 것 같다. 기다림이나 인내의 불편함보다는 효율과 가성비에 더 집중하는 크고 견고한 조직으로 변해버린 듯하다.

  동양최대의 교회건축물, 많은 스타강사 신부님들, 수녀님들, 비약적으로 발전한다는 한국교회 안에는 직업이 신부인 사제와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수도자, 봉사자 또한 늘어나는 것 같다. 세상 안에서 소외 받고 상처 입은 이들은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소외받고 이해받지 못해 상처받는다. 늘어나는 냉담자와 자신의 신앙에 확신과 정체성을 갖지 못하는 신자들은 교회공동체에 보내는 어떤 병적 징후가 아닐까?

  오염된 공기는 희석시키는 바람과, 오염물질을 씻어내는 비, 그 공기를 침전, 여과시키는 나무 등 여러 복합적인 방법으로 정화된다. 하지만 오염이 지나칠 경우 자연 스스로의 정화 작용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작은 신호들이 보일 때, 대처하고 해결하는 것이 병을 크게 키우지 않는 길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서는 안 된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이 오기 전에 신호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방법이 있을 때 해결하고 노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박상희 도미니카 /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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