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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이슈와 일상의 물음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려는 우리들의 생각을 모아봅니다.


   

구산 성당 <김학렬(若望) 신부 / 수원교구>
   기쁨과희망   2016-09-09 13:25:06 , 조회 : 658 , 추천 : 133


“구산공소는 6·25전란 중에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마련해 주신 피난처이며 안식처였다”(윤공희 대주교). 1950년 6·25사변 중에 명동성당 주임 장금구 신부와 보좌였던 윤공희 신부, 최민순 신부 등이 갈 곳 없던 이계항, 김창린, 김덕제 신학생 등과 함께 구산공소로 피신하여 신앙과 고통을 나누었다. 낮에는 구(거북)산 산속에 숨어 지내다가, 우리 할머니가 강으로 이고 가는 빨래바구니와 방망이 신호에 따라서, 신자들의 집으로(윤공희 신부는 김동식의 집) 가 안식처를 제공받았다.

1830년경부터 이선생(훈장)에 의하여 시작된 구산공소는 유방제 파치피코 신부에게 보례를 받기(1834) 시작하여, 모방 신부님을 모셨다. 구산공소가 설립되어(1836년 5월) 모방 신부와 앵베르 주교와 후대 선교사들이 방문하는 공소 겸 언어교육의 장소였다. 정하상 성인이 마재에서 서울을 오가던 도중에, 20여리 떨어진 한강가의 마을 구산에 자주 들렸고, 같은 나이의 친구였던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이 입교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유방제 신부가 구산에 머물 때, 정약용(若望)이 조카 정하상의 안내로 종부성사를 받고 선종할 수 있었다. 이후 구산공소의 신앙은 기해박해(1839)와 병인박해(1866)를 거치면서, 김씨 문중의 7명을 포함하여 모두 9명의 순교자가 나오는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구산공소’ 신자마을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신앙의 자유를 맞아 선조들은 명동성당 터 닦기 공사에 주력했고, 다음에는 약현성당(문밖 성당) 소속이었다가, 백동(혜화동), 신당동, 천호동성당의 신축 때마다 노력 동원(부역) 역할을 다하였다. 수원교구가 분리되면서도 이 현상은 계속 이어져, 경안(광주)성당에 이어 신장(하남)본당의 분리 신축 때도 주 노동력을 제공하였다. 이렇게 서울 중심부에서 시골 변두리로, 새 본당이 분리될 때마다 소속이 바뀌는 동안, 구산공소는 그대로 공소였다. 1979년 6월 29일에 변기영 신부에 의하여 ‘구산성당’이 출범하게 되면서부터 ‘떠돌이 공소’ 신세를 면하게 되었다.

나의 기억으로는 지금의 성당에서 구산으로 가는 우측 중간에 초가 공소(강당 20평)가 있었다. 그러다가 6·25 전쟁 후 모두가 먹고 살기도 힘든 때에, 순교에 버금가는 신심으로 40여 가구가 힘을 모아 새 공소를 고딕식으로 아담하게 지었다(1956년). 지금도 노기남 대주교님께서 하사하신 (명동성당을 짓고 남은) 목재로 상량식을 거행하던 장면이 뇌리에 생생하다. 앞강의 깨끗한 모래와 돌을 날라 와 지극한 정성으로 지어서 그런지, 철근 하나도 넣지 않았지만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금 하나 가지 않은, 아름답고 소박한 성전이다. 그러나 박해 중에도 소중히 간직했던 신앙의 중심이 세파에 밀려서는 어쩔 수 없이 철거를 당하고, 본당도 이전·신축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미사-강변지구 개발로 모든 것이 철거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185년 동안 응축되었던 신앙의 중심이 이렇듯 허망하게 허물어지고 말아야 하는가? 똑똑한 세상의 경제 논리로는 그렇게 되는 것이 마땅하였다! 그러나 우리 순교자들의 전구를 들으신 천주님의 섭리는 세상의 생각과는 달랐다. 교구장 주교님께서 똑똑한 세상 경제의 논리를 바보 같은 순교신앙의 논리로 바꾸는 용단을 내리게 해 주시어, 신앙의 유산인 공소 건물이 통째로 이전·유지되게 하셨다. 36평정도 되는 성당 건물을 새롭게 짓는 비용이 더 싸게 먹힐 수 있으나, 비용이 더들어가더라도 선조들의 피땀이 배어든 신앙의 유산을 통째로 이전하려는 것이다. 구산본당이 11번째로 장소를 옮겨 새 성전을 짓기 전에, 신앙의 유산을 우리 나름의 문화재로 여겨, 통째로 옮기는 것이다. 이는 대대로 이어져 오는 신앙유산을, ‘기억지킴이’를 위하여, 통째로 대물림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늘에 계신 구산의 순교자 선조들이 이 모습을 굽어보시며, 대견해 하시고, 감탄하고 흐뭇해하시며, 모든 일이 서로 잘 작용하여 좋은 결과가 맺어지도록 전구하여 주실 것을 확신한다. 구산성당의 바보같은 ‘기억지킴이’를 사랑하는 분들의 기도와 협력을 바라마지 않는다”(http://www.saveourgusan.com/).

<김학렬(若望) 신부 /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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