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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이슈와 일상의 물음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려는 우리들의 생각을 모아봅니다.


   

평범한 히어로 -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김선화 율리안나 / 서울교구>
   기쁨과희망   2017-09-11 11:36:28 , 조회 : 648 , 추천 : 242


  
6·25 한국전쟁을 겪은 격동의 세대도 아니고, 3~5공의 군부독재시대를 몸소 겪어보지도 못한 애매한 세대인 나에게 ‘광주민주화운동’은 교훈 없는 잔혹동화처럼 지루한 활자 속에 박혀있는 역사로 알고 있었다.

‘광주민주화운동’보다 ‘광주사태’라는 단어가 더 익숙했던 어린 시절, “광주에 빨갱이가 내려와 난리가 났데”, “광주는 김대중 만세를 외쳐야 들어갈 수 있데”라는 어른의 대화가 얼핏 기억이 난다. 국정교과서의 주입교육 산물인 나의 가슴을 다시 뛰게 했던 기억은 ‘5공 청문회’였다. 청문회를 통해 믿을 수 없는 증언들과 무자비한 군홧발에 짓밟힌 광주 시민들의 사연들을 보고 들으며 ‘이게 나라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시위를 하던 학생과 시민만이 아닌 ‘집안에서 잠자다 몰살당한 가족, 회사를 가다 붙잡혀간 남편, 길에서 맞아죽은 중학생의 부모의 울부짖음’과는 상반된 정치군인들의 증언은 한결같이 “모른다, 그런 적 없다, 발포 명령은 없었다. 시민군에 대항한 방어였다”. 그 당시까지 광주에는 한 번도 가본 적도 없었던 어린 학생의 마음에도 분노가 끌어 올랐다. 그동안 ‘광주사태’로 알고 지내온 시간이 미안했고 반드시 공정한 판결이 내려지길 바랐다.

37여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한은 아직 풀어진 것 같진 않다. 직접 겪어보지도 않은 이런 나에게도 광주항쟁은 트라우마로 남았었던지,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러가는 내내 마음이 떨렸고, 용기마저 필요했었다. 그러나 기대가 커서였나, 영화초반의 평화로운 모습은 아이러니했고, 이 영화를 보는 유족의 마음이 어떨까 걱정되기까지 했다. 작년 촛불시위를 보고 당황했다는 외국인들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스쳐갔다.

작은 위로는 영화 속 김사복씨의 모습이다. 그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로, 영화 속 히어로라기보단, 내가 먼저이고, 내 가족이 더 중요한 가장이며, 먼저 떠난 아내의 고집으로 산 중고차가 재산목록 1호인 소시민인 반면, 남의 예약 손님을 가로채기도 하고, 길이 막힌다는 이유로 시위학생들을 비난 만하는, 때로는 시세보다 비싼 택시비를 받는 것이 마냥 기쁘기 만한 그런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런 그가, 아니 내가 될 수 있고, 우리가 될 수 있는 평범한 그가, 이유 없이 군인의 총에 무참히 쓰러져 죽어가는 장면을 목도하면서 변하게 된다. 애지중지 아낀 차를 총탄막이로 삼아, 사람을 구하는 데 앞장설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평범한 히어로를 뉴스에서 본다. 지하철 틈에 낀 시민을 구하기 위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힘을 모아 지하철을 밀어내는 기적을 보고, 자동차를 들어올리고, 손에 손을 맞잡아 생명들을 구해내는 감동의 장면을 종종 본다. 이제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평범한 히어로들에게 걸 맞는 역사의 심판도 보고 싶다. 그리고 ‘이게 나라냐’라는 말은 어느 누구의 입에서도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선화 율리안나 / 서울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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