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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이슈와 일상의 물음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려는 우리들의 생각을 모아봅니다.


   

종교인을 타락시키는 돈 <장유진 수산나 / 수원교구>
   기쁨과희망   2017-11-03 09:55:08 , 조회 : 639 , 추천 : 231


  
요즘 텔레비전에서는 천주교의 어두운 면들을 면면히 보여주고 있다. 충북 보은 신부 폭행사건, 아이 폭행 유치원 원장 수녀, 대구희망원 사건, 여목사와 전직 사제의 충격적인 추문 등 천주교를 변호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사건들이 흘러넘치고 있다. 일부 성직자와 수도자의 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내 편이라고 감싸주기에는 도를 넘어선 사태다. 성역은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믿어왔던 성직자, 수도자의 개념도 점점 더 희미해지는 듯하다. 우스갯소리로 직업이 신부고, 수녀라는 말로 우리의 실망감을 덮는다. 유독 성직자에게 잣대를 엄격히 하는 이유는 성직자에게는 자기가 갖고 싶지 않더라도 따라붙는 ‘권력’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물러나야 하는 자리임에도 떠받침에 물든 몇몇 성직자들로 인해 신자들은 등을 돌린다.

이 시점에서 생각한다. 이들에게 돌을 던져야 할 것인지, 아니면 함께 돌을 맞아야 할 것인지. 솔직히 돌을 던질 자신이 없다. 들키지 않았다고 크지 않은 일이라고 해서 당당하기가 쉽지 않다. 종교인을 타락시키는 ‘돈, 권력, 성’ 나조차도 자유롭지 못하다. 내 안에 숨겨진 욕망의 불씨, 탐욕의 불씨를 잠재우지 못하면서 누구를 탓할 수 있는가.

알맹이 빠진 무늬만 종교행사, 채우고 또 채우는 밑 빠진 신앙, 신앙 뒤로 악취가 나는지 향기가 나는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는다. 불교경전 아함경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탐욕을 벗어나려면 자기 욕심을 깨닫고 분노를 벗어나려면 진리의 눈을 떠라.” 한국 사회는 분노했었다. 촛불을 들고 나가 민중이 거리를 덮었고, 작은 승리들로 승리의 쾌감도 느꼈다. 그때의 민중은 돈보다 더 귀한 진리를 찾으려고 그렇게 노력했다. 현실이 녹록치 않았어도 진리는 촛불처럼 빛났다.
탐욕을 벗어나려면 자기 욕심을 깨닫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선 현실을 직시하고 한계를 안다면 필요이상의 것은 포기할 수 있지 않을까. 자기 그릇에 가득차지도 마르지도 않게 욕구를 담자. 그 어려운 중용이 여기서도 발휘될 수 있도록.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편리함 뒤에 숨어있는 욕심 많은 물신, 돈의 속성에 물들기 때문이다. 더러우면서도 숭고한 돈, 석유수출기구(OPEC)의 창시자 후안 파블로 페레스 알폰소는 석유를 ‘악마의 배설물’이라고 불렀다. 석유는 부의 원천이지만 많은 부정부패와 뇌물, 갈등의 매개물이기 때문이다. 악마의 배설물이란 인간을 타락시키고 오염시키는 더러운 대상이란 뜻이다. 석유대신 돈을 놓아도 뜻이 통한다.

돈을 방출이 아니라 축적에만 몰두하는 순간, 그것은 인간관계를 파탄시키고 이기주의를 낳는 악의 원천이 된다. 재물에 대한 탐욕은 신앙생활과 양립할 수 없다. 그래서 종교인에게는 더더욱 조심해야 할 대상이다.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리는 유혹과 올가미와 어리석고 해로운 갖가지 욕망에 떨어집니다.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1티모 6,9-10).


<장유진 수산나 /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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