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um et Spes Pastoral Institute *
 
 
 
 
 
 
 
 


 



사회적 이슈와 일상의 물음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려는 우리들의 생각을 모아봅니다.


   

두 번째 기회 <심미정 베로니카 / 수원교구>
   기쁨과희망   2017-11-09 10:33:39 , 조회 : 408 , 추천 : 136


  
얼마 전 정기검진을 하고 걱정과 반성의 일주일을 보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닌 일이었는데, 온갖 생각들로 복잡했던 날이었다. 정기검진 결과를 우편으로 받았는데, 폐섬유화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가습기 살균제로 뉴스가 떠들썩할 때 들었던 기억이 있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서운 병이었다. 이미 진행된 병에는 치료법도 없고, 증상을 완화시키지도 못하는 병이었다.

폐섬유화라는 질환을 알고부터 별별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왜, 무슨 이유로 이 병에 걸렸을까. 그렇게 몹쓸 병에 걸릴 만한 일을 하지도 않았고, 가족력도 없는데 왜. 아니면 벌을 받는 걸까. 벌 받을 만한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해 낮주님, 밤주님 다르다고 하면서 마신 술 때문일까, 아니면 마음속으로 지은 죄 때문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렇게 벌 받을 만큼 나쁜 짓은 한 게 없었다. 점점 억울했다.

그렇게 혼자 고민하고 분노하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반성의 시간이 찾아왔다. 예전에 읽은 <벼락을 맞았습니다>를 다시금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죄 아닌 게 없었다. 고백성사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했던 일, 입으로 경솔하게 생각 없이 내뱉었던 길고 짧은 말들, 부모님께 배은망덕했던 행동들, 그 밖에도 수없는 생각들에 반성이 더해졌다.

매일 어울리던 술자리도, 마시던 술의 양도 줄였다.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꼈다. 주위에 사랑받기 충분함에도 외로워하는 친구들을 보아 왔다. 그에 비해 난 가족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이웃들과도 제법 잘 지내고 있다. 잘못한 일도 많지만, 제법 배려하는 삶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르고 나니 이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소소하게는 집안 청소를 시작했고, 마음 정리정돈도 시작했다. 억울하고, 슬프고, 참담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정리할 시간이 있으니 감사할 일 아닌가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생각 많았던 일주일을 보낸 후 병원을 다시 찾았다. 자세한 병의 상황을 알고 싶었고, 내게 남은 시간을 알고 싶었다. 근심 가득한 얼굴로 진료실을 들어가자 의사는 내게 혹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니 폐섬유화라고 해서 다 중병이 아닌데, 검색해보고 큰 병 걸린 줄 알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고 했다. 근심이 훌훌 날아가고 연신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는 날이었다.

내게 주어진 새 삶이라고 하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 두 번째 기회라고 해야 하나. 우선 이 일을 계기로 과거의 삶을 반성하고, 삶의 나침반이 정돈되었다. “예수그리스도는 사랑을 설파하고, 석가모니는 자애를 가르치고, 공자는 인의를 주장했다. 여기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가장 중요한 사항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에 나왔던 글귀다. 해프닝이었지만 죽음을 앞에 둔 사람처럼 깊이 생각했던 일주일이었다. 위령성월을 맞아 다른 분들도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죽음은 가장 극적이어서 삶에 대해 더 깊은 고찰을 하게 만든다.


<심미정 베로니카 /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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