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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이슈와 일상의 물음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려는 우리들의 생각을 모아봅니다.


   

미투 운동에서 ‘나도’의 의미 <황성필 / 자유기고가>
   기쁨과희망   2018-04-09 14:42:34 , 조회 : 139 , 추천 : 31


  
미투 운동에서 ‘나도’의 의미
–피해의 전시가 아닌 가해의 고발이기 위하여


‘미투 운동’은 2007년 여성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처음 시작한 캠페인이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기본 인권을 보장 받지 못하는 계층의 여성들 중에서 성폭행 피해자인 사람들과 연대하고자 했던 풀뿌리 운동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할리우드의 유명한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상습적인 성추행 사실이 드러나면서 #MeToo 해시태그 운동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2017년 타임지가 ‘올해의 인물’로 침묵을 깨고 미투 캠페인에 동참한 여성들을 선정할 정도로 사회문화적인 대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등과 같이 SNS를 중심으로 2016년부터 유명인의 성추행 및 성폭력 가해사실과 이를 묵인, 방조하는 문화를 고발하는 움직임이 있어왔다. 2018년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검찰 내 성폭력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미투 운동은 지금까지도 여론의 지지를 받으며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미디어에서 미투 운동을 다루는 방식은 크게 우려가 된다. 어떤 언론은 성폭력 상황을 묘사하는 이미지를 여과 없이 썸네일로 올리기도 하고, 어떤 미디어들은 가해자의 가해 방식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글의 제목을 붙이기도 한다. 독자의 주목을 끌고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방편으로서 선정적인 사진과 제목을 사용하는 것은 미투 운동에 참여한 고발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위이다.  

타라나 버크가 미투 캠페인을 시작한 배경과 관련하여 “성폭력 피해자였던 나도 다른 누군가에게서 ‘나도야’(Me Too)라는 말을 듣고 나서 절망에서 치유로 변화가 시작되었다”라고 밝혔듯이 미투 운동은 ‘나도 피해자다’라는 의미로 시작되었다. 또한 피해 사실의 고발 자체를 지나치게 영웅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타당하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의 미디어에서 미투에 접근하는 방식은 이와는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

즉 해시태그 운동에서 ‘나도’의 의미는 ‘나도 고발한다.’의 의미로 보아야지 ‘나도 당했다.’ 혹은 ‘나도 피해자다.’의 의미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규정은 사람들로 하여금 단지 가해와 피해 자체에만 집중하게 하여 피해자에 대한 낙인을 작동하게 하고, 지금까지 피해 사실을 고발할 수 없었던 사회 구조적 요인과 고발자의 주체적인 선택을 탈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피해자’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현실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낙인이 여전히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Me Too’를 ‘나도 당했다’ 혹은 ‘나도 피해자다’의 의미로만 이해하고 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고발자의 피해 상황만을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부각하는 미디어의 전달방식에 있다. 기사의 제목은 ‘고발’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지, 고발자의 고발 내용 중 가장 자극적인 부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발자가 직접 고발했다고 하더라도, 사건 당시의 상황만을 부각하며 구체적이고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또 다른 가해가 될 수 있다. 고발자가 원하는 것은 가해의 고발이지 피해의 전시가 아니다.


<황성필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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