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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바치는 '정원사'라는 순수 우리말로 교회공동체를 아름답게 다듬고 가꾸자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열정으로 살아가는가? <최종수 신부 / 전주교구>
   기쁨과희망   2018-04-25 15:02:40 , 조회 : 116 , 추천 : 28


  
우리는 지금 어떤 열정으로 살아가는가?  
- 안중근 도마와 어머니 조 마리아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중심은 무얼까? 부모와 자녀를 이어주는, 가정을 화목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얼까? 사랑과 의무가 아닐까.

5월은 또한 성모성월이다.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고 성가정의 길을 묵묵히 가신 성모님의 삶을 묵상하고 따르는 달이다. 성모님의 일생은 예수님과 함께한 십자가의 여정이다. 우리 곁에 성모님의 삶을 잘 보여주는 한 신앙인이 있다.

안중근 도마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이다. 자식은 부모의 얼굴이다. 자식을 보면 부모를 알 수 있고, 부모를 보면 슬하의 자식을 알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통해 조 마리아의 생애를 짐작해 본다. 안중근 의사의 조력자가 바로 조 마리아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보려면 그와 가까운 사람을 들여다보라고 했던가. 조 마리아의 생애를 말하지 않아도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보면 조마리아를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안중근 의사도 그중 하나였다. 일본군 헌병 간수였던 지바 도시치를 보면 안중근 의사가 다시 보인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후였다. 지바 도시치는 안중근에게 복수하기 위해 일본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그는 만주로 자원해 안중근 의사의 간수가 되었다. 지바 도시치는 틈만 나면 안중근을 괴롭혔다. 폭언을 일삼고, 밤낮으로 감시를 늦추지 않았다. 이는 일본에 대한 충성이었기에 더욱 악랄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일본 청년 지바 도시치는 안중근의 인품과 평화의 열정에 그만 감화되고 만다.

안 의사는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고도 항소하지 않았다.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인 안 의사는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동양평화론 집필에 매진했다. 하지만 항소를 포기한 안 의사에게 사형은 생각보다 빨리 집행되었다. 동양평화론이 미완으로 남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초연히 목숨을 버린 것이다. 그런 안 의사를 지켜본 지바 도시치 교도관은 알 수 없는 의문에서 감동으로 매료되고 만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하고, 책을 읽고, 깊은 명상에 사로잡힌 안중근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것이다.

사형집행이 열리는 아침이었다. 지바 도시치는 누구보다 먼저 이 소식을 안중근 의사에게 알렸다. “오늘 당신이 죽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으면 나에게 하라. 당신의 유언을 대신 전하도록 하겠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잠시 명상에 잠겨 있던 안중근 의사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나에게 5분만 시간을 줄 수 있는가?” “그게 무슨 말인가?” “아직 못다 읽은 책이 있다. 5분만 시간을 준다면 그 책을 읽고 싶다.” 잠시 후면 사형이 집행되는 순간에도 책을 읽겠다고 한 안중근 의사.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그의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슬하에 2남 1녀를 둔 안중근 의사는 서른한 살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당시 25세였던 지바 도시치도 안중근 의사가 사형 집행을 당하자, 간수직을 그만두었다.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사당에서 매일 아침 제를 올렸다. 안중근 의사를 지켜보면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12사도는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지바 도시치는 안중근 의사의 인품과 평화를 향한 열정에 감화되어 스스로 제자가 되었다. 사망 전 지바 도시치는 아내에게 유언처럼 부탁하였다. 매일 아침 안중근 의사를 위해 제를 지내는 것과, 적당한 때가 오면 한국에 안중근 의사로부터 받은 유묵을 대신 전해주라는 유언이었다.

보물 제1150-1호로 지정된 그 유묵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爲國獻身軍人本分’(나라를 위해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도 이와 유사한 말을 했었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살려고 몸부림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히 목숨을 버리거라.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天賦)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아, 어미가 자식을 사지로 몰다니…. 이 얼마나 무서운 편지인가. 하느님을 섬기는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 시대에 조 마리아 같은 어머니는 어디에 있는가. 내 자식만 떠받치는 부모는 아닌가? 조선이 독립되면 내 뼈를 조국의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던 안중근 의사. 평화는 정녕 먼 나라의 이야기란 말인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염원이기도 하다.

안중근 의사와 조 마리아 여사는 절대 흔치 않은 모자(母子)이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 세계 평화를 위해 의혈의 길을 선택한 안중근. 성모님과 조마리아의 길은 신앙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바로 그 중심에 견고한 신앙, 민족을 향한 사랑과 평화를 향한 열정이 놓여 있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어떤 열정으로 살아가는가?


<최종수 신부 / 전주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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