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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바치는 '정원사'라는 순수 우리말로 교회공동체를 아름답게 다듬고 가꾸자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희망> - 4. 하느님의 심판 (번역: 오민환)
   기쁨과희망   2020-07-29 14:58:51 , 조회 : 10 , 추천 : 0


  

**1975년 독일천주교회의 뷔르츠부르크 시노드 문헌, <우리의 희망 - 이 시대 안에서 신앙고백>(Unsere Hoffnung. Ein Bekenntnis zum Glauben in diser Zeit) 번역문으로, 연재 중입니다. <편집자주>

독일 뷔르츠부르크 시노드 문헌 <우리의 희망> - 제1부 우리 사회 안에서 희망의 증거

4. 하느님의 심판

사람의 아들이 재림할 때, 세계와 역사에 대한 최종적 하느님 심판의 대망으로서 그리스도교의 희망은 죽은 자들의 부활과 밀접하게 묶여 있는 우리의 희망이다. 하지만 하느님 심판의 메시지를 정말 우리의 희망으로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심판의 메시지는 확실히 우리가 기꺼이 ‘구원’에 관한 상상과 연결하는 진보와 조화의 꿈과는 모순될 수 있다. 그럼에도 심판의 메시지는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전도유망한 약속 사상을 표현한다.

즉 그것은 모든 인간의 평등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특별한 사상으로, 단지 무차별주의를 목표로 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인간의 평등이 하느님 앞에서 행한 실천적 삶이 책임으로 드러나고, 또한 부당하게 고통받는 모든 이를 놓치지 않는 희망을 약속한다.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평등사상은 모든 이를 위한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고, 또한 모든 이를 위한 정의의 역사적 투쟁에 대한 관심을 마비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교의 평등사상은 늘 새롭게 정의를 위한 책임의식을 일깨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다르게 하느님의 심판을 견뎌내야 할까?

물론, 우리가 이 심판의 메시지를 작은이들과 무력한 이들 앞에서는 공공연히 그리고 절박하게 선포하긴 했지만, 종종 세상의 힘 있는 자들 앞에서는 너무도 작은 소리로 자의반타의반 선포함으로써, 교회는 하느님의 최종적 심판 메시지가 지닌 해방의 의미를 스스로 자주 흐릿하게 만들지는 않았던가? 우리 희망의 언술은 무엇보다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마태 10,18)서 용감하게 고백한다면, 그 심판의 메시지는 명확해진다! 그러할 때 그 심판의 메시지가 지닌 위로의 능력과 격려의 힘이 드러난다. 즉 심판의 메시지는 정의를 만드시는 하느님의 능력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정의를 향한 우리의 갈망이 죽음으로 좌초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뿐만 아니라 정의도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말한다.

마침내 그 메시지는 결국 우리의 양심(Gewissen) 위에 주인으로 군림하는 죽음을 퇴위시키고, 결코 죽음과 함께 주님의 통치와 종의 신분을 봉인하지 못하도록 보증하는 하느님 정의의 창조 능력에 관해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희망의 언술이 아니던가? 정의를 세우는 데 있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언술이 적절하거나 적절하지 않다는 말인가? 천상에서 불의의 관계에 저항하라 외치는 자극이 우리에게는 없단 말인가? 우리가 지닌 우리 고유의 희망을 굳이 욕보이려 하지 않는다면, 불의와 결탁하는 것을 금하고, 우리를 늘 새롭게 불의에 맞서서 외치도록 의무를 부여하는 표준적 규범은 없단 말인가?

동시에 하느님 심판의 메시지가 또한 영원한 몰락의 위험도 말하고 있다는 것에 침묵하면 안 된다. 하느님 심판의 메시지는 처음부터 화해와 속죄와 함께 모두를 위해, 모든 것을 위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미리 예단하지 않도록 한다. 바로 이러한 메시지가 늘 반복해서 우리 삶 안에서 변화하면서 개입하였고, 우리의 역사적 책임에 진지함과 박진감을 가져온다.


(번역: 오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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