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um et Spes Pastoral Institute *
 
 
 
 
 
 
 
 


 



동산바치는 '정원사'라는 순수 우리말로 교회공동체를 아름답게 다듬고 가꾸자는 의미입니다.


   

하느님의 종 <임상호 스테파노 / 수원교구>
   기쁨과희망   2016-02-05 10:29:33 , 조회 : 652 , 추천 : 102


  “제발 성당에 같이 다니자”하시던 어머님 말씀을 항상 뒷전으로 하던 내가 스스로 발길 옮겨 성당을 찾은 건 1976년 1월 4일 첫 주일이었다. 그해 동대문성당에서 4월 11일 영세를 받고 총회장과 빈첸시오 아 빠오로 회장을 겸임하셨던 대부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첫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 경기도 광명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살고 있는 광명의 성당에는 나가고 싶지 않아 명동성당을 다녔다. 이일을 모르시는 어머님은 레지오 단원에게 “우리 아들이 냉담 중이니 와서 권면해 달라”고 당부하셨다. 하는 수없이 광명성당의 교우가 되었고, 봉사와 신심 단체에 가입하다보니 동시에 4개의 단체장을 맡아 활동하였고 또한 사목위원으로서 꽤나 열심한 신자가 되었다.

  얼마 후 본당 구획정리 작업의 일환으로 광명성당 일부와 철산성당과 서울대교구의 개봉성당일부가 합쳐진 신설 본당의 성전건립추진위원장이 되어 하루해가 저물도록 성당에서 살게 되었다. 사목회가 결성되면서 총회장으로 봉직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신부님과의 접촉도 늘어나게 되었다. 7년간의 총회장을 하며 세분의 신부님을 모시면서 일반 교우보다는 더 많은 일을 겪어보았다. 후임 신부님이 부임하더라도 전직 총회장의 예우(?)를 받아 식사자리에 함께 할 일이 많았다.

  어떤 때에는 본당 일에 관하여 신부님과 독대를 하는 진지한 만남의 자리도 있지만 사목위원이나 단체장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서로 간 눈도장 찍는 ‘아양 떨기(?)’도 한몫을 하게 된다. 신부님의 영명축일과 서품일을 기억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본당 신부의 가족 애경사는 물론 심지어 기일까지 챙겨 참석하는 열심한 신자들도 있으니 과잉 충성으로 하여금 눈 찌푸리게 되는 일도 다반사다.

  사목회의 때 나름대로의 주장을 펴다가 신부님의 의견과 일치되지 않을 경우, 본당 신부님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어 갈등이 생기는 일도 부지기수다. 헌데 어쩌랴. 교회라는 곳이 일반적 사회생활 개념과는 다르지 아니한가? 봉사자의 삶이란 순종이 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충고도 듣지만 올바른 의견 개진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꺾여야하는 일도 꽤 많지 않은가... 총회장이나 사목위원, 단체장 등 임명권자의 권위(?)를 저버릴 수 없는 ‘순종’이란 이름으로 교회 내 민주주의 즉 한계의 벽에 부딪치는 까닭이다. 임명권자는 본당 사목뿐만 아니라 세속적 모든 일에도 누구(전문가)보다 빼어나 팔방미인 격으로 군림하는 존재이니 섣불리 이견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이다.

예전에는 사제의 사목활동에 보조역할자로서의 ‘사목회장’과 더불어 평신도들이 뽑는 ‘평신도협의회장’ 제도의 2가지 다른 직분이 있었으나 평신도들이 뽑는 본당 내 평협회장(교구 평협회장은 설정되어 있음) 제도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다. 본당 신부님의 사목적 환경에 반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어야 마땅하거늘 기본적 요소마저 잘라버린 토양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상황이 되니 누군들 제 뺨 맞을 각오로 신부에게 바른 소리하며 일깨워 주는 이 있겠는가?

  올바른 주장을 펴다 갈등만 생긴 경험이 있다 보니 이제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본당 내 하위직책(?)을 맡아 35년간 이어지는 봉사직에 순종하는 자세로 말없이 숨죽인 채 임하고 있다.

바람직한 ‘교회상’은 어떤 것인가?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인지하는 실정임에도 고치지 못하고, 하느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스스로 군림하려는 ‘큰 종’과 무조건 순종하는 ‘작은 종’들 때문이리라.  

<임상호 스테파노 / 수원교구 광명성당>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8tu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