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um et Spes Pastoral Institute *
 
 
 
 
 
 
 
 


 



동산바치는 '정원사'라는 순수 우리말로 교회공동체를 아름답게 다듬고 가꾸자는 의미입니다.


   

2016년 부활시기와 4월 유감 <조영숙 마리 미카엘라 / 수원교구>
   기쁨과희망   2016-04-04 15:06:23 , 조회 : 676 , 추천 : 146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요한 20,9).

짧지 않은 사순시기를 보냈고, 성주간 전례를 지내면서 부활대축일을 맞이했다. 사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성삼일 전례에 참여하기란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기도해가며 이리저리 시간을 쪼개어 전례에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전례 도중 분심이 들어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성주간 전례는 중요한 전례라시며 많은 참여를 독려하시던 신부님 말씀이 무색하게 참여 신자들의 수는 적었고, 전례 담당자들의 잦은 실수로 분위기는 흐트러졌다.

성당에서의 봉사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자신의 낮춤과 비움으로 그리스도께 대한 오롯한 봉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임명장을 받고 책임을 맡으면 사람들이 좀 달라진다. 신자들 사이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만의 만족을 위해서 준비도 없이 분주한 모습이 전례의 중요성을 반감시킨다. 성지주일부터 성주간, 부활축일까지 독서단장을 맡은 자매의 귀에 거슬리는 성경 봉독은 묵상이 어려웠다. 속담에 ‘듣기 좋은 콧노래도 한두 번’이라 했던가. 거친 목소리에 사전에 성경을 충분히 읽지 않았는지 도저히 독서를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성당에서 단체장을 맡은 사람은 지도자라기보다는 봉사자이다. 그리고 나 이외 다른 봉사자가 적재적소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적절히 안배하고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나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갑질’이 아니라, 완장 찬 을의 ‘을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총선이 다가오면서 성당 입구에서는 낯선 이들이 고개를 숙이면서 명함을 돌리고 한 표를 구걸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만물이 움트는 화사한 4월이 선거로 어수선 하다. 4월의 선거를 위해서 지난달은 매우 어수선하였다. 탐탁지 않은 언론은 정치꾼들의 치사하고 야비하게 보이는 싸움을 톱기사로 실시간 내보내고 있다. 투표로써 주권을 행사할 국민이 제대로 인물을 선별할 기회는 주지 않고, 완장 찬 이들 마음대로 자르고 재단한다.

선거중립을 지켜야 할 대통령의 눈에 보이는 압력도 보인다. 이러한 작태를 보면서 선거 참여율이 겨우 과반수를 넘기고 참여 국민의 과반수를 얻는 것이 대단하다고 자위하는 모습은 영 못마땅하다. ‘반의 반’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모양이다. 이들이 표심을 잡겠다고 바삐 다니며 자기선전을 하지만 과연 누구에게 표를 주어야 할까? 밥상은 거창한데 집어 먹을 것이 없다. 이처럼 더러운 싸움판에서 당선되면 나라를 위해 국민이 주는 세비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당이 살아남게 하려고 힘쓸 것이다.

결국은 자기의 이익만을 위하여 의정활동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날씨 좋은 임시공휴일 꽃을 보러 나서고 싶은 유혹이 강하다. ‘죄다 나쁜 놈들이니 그 중 덜 나쁜 놈에게 투표하라’고 농담처럼 말하는 지인에게 ‘경중을 따질 수 없다’했더니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꼭 투표하란다.

나랏일이나 교회 일에서도 진정한 봉사가 무엇이지 모르고 나만 드러내려고만 한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자리다툼과 자기 목숨 구하기에 바빠 도망친 제자들이 꼭 그 모습이다. 부디 성령의 도우심으로 눈이 열리고 마음이 찢겨져 빈 무덤의 의미를 깨닫게 되기를 기도해본다. 부활의 참 의미를 깨닫기 위해 얼마나 많이 자신을 비워내는 과정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나 자신도 투덜대고, 까칠한 이라, 아직도 그 아름다운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조영숙 마리 미카엘라 /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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