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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바치는 '정원사'라는 순수 우리말로 교회공동체를 아름답게 다듬고 가꾸자는 의미입니다.


   

하느님, 어디 계셨나요?... <오민환 / 연구원 연구실장>
   기쁨과희망   2016-07-11 14:34:08 , 조회 : 679 , 추천 : 99


하느님, 어디 계셨나요? - 엘리 위젤(1928-2016)을 기억하다


평생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를 증언했던 엘리 위젤이 지난 7월 2일 87세의 나이로 뉴욕에서 숨을 거두었다. 1928년, 루마니아 시게투의 경건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위젤은 15세 때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다.

1944년 5월 22일 아우슈비츠, 한 가정이 결딴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머니 사라와 세 명의 누이들과 헤어졌다. 선물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붉은 외투를 입고 있던 막내 여동생 치포라는, 얼마 후 가스실에서 처형되었다. 그녀는 여덟 살이었다. 어머니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위젤은 아버지와 함께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여기서 위젤은 인생의 가장 어두운 날들을 경험한다. 강제수용소 해방 직전에 아버지가 사망했다. 위젤은 고백한다. “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 나는 무척 두려워 움직일 수 없었다. 우리 모두는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 자리에 없었다.”

위젤은 1958년에 쓴 <흑야>(Night)에서 수용소에 갇히던 그 첫날밤,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길었던 그 밤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나치는 소년의 왼팔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수감번호 ‘A-7713’을 새겨 놓았다. 어두운 날들은 어두운 삶으로 이어졌다. 어떻게 하느님이 그럴 수 있는가. 하느님만을 찾는 경건한 한 가정을 이렇게 송두리째 파멸로 이끄는 하느님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바닥모를 끝없는 고통이 그를 감쌌다.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은 하늘을 향했다. 하느님은 돌아가셨다!

철학자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이라고 했다. 신학자 도르테 죌레는 “‘그날 이후’ ‘그날 이전’과 같이 하느님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이 하느님의 통치란 말인가? 그러한 하느님은 뉘른베르크 재판에 넘겨져, 전범으로 심판받아야 한다”라며 분노했다.

야만의 시대에 ‘살아남은 자’로서 위젤은 깊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경건한 유대인으로서 가졌던 하느님 신앙에 대한 처절한 의심이었다. ‘그날들’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 때, 그의 친구 프랑수아 모리악이 용기를 주었다. ‘홀로코스트는 인간이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되는 책임’이라고.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강제수용소의 경험을 담은 <흑야>였다. 이후 위젤은 나치의 대학살 홀로코스트를 60여 권의 책으로 증거한다.

위젤은 묻는다. “여덟 살이었던 여동생, 그 아이가 도대체 독일에 어떤 피해를 줄 수가 있었나요? 왜 그 아이가 그런 잔혹한 죽음을 겪어야 했나요?” 위젤은 1986년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에서 “중립은 가해자에게만 이로울 뿐 희생자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며, 침묵은 결국 괴롭히는 사람 편에 서는 것”이라 했다. 깊은 고통과 좌절, 그리고 심각한 의심과 정체성의 위기를 헤쳐 나온 위젤은 ‘세계의 양심’, ‘인류의 스승’, ‘인류의 대사’가 되었다. 이제 인류는 또 하나의 위대한 스승을 잃었다. 그가 노벨상을 받으며 남긴 말은 우리 시대를 위한 예언자적 유언이 되었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아름다움의 반대말은 추함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믿음의 반대말은 이단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삶의 반대말은 죽음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오민환 / 연구원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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