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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바치는 '정원사'라는 순수 우리말로 교회공동체를 아름답게 다듬고 가꾸자는 의미입니다.


   

성지순례인가 성지관광인가 <조영숙 마리미카엘라 / 수원교구>
   기쁨과희망   2016-09-09 13:26:12 , 조회 : 609 , 추천 : 97


한 달 반의 실습을 끝내고 지쳐있을 때, 공허함과 호기심으로 명동성당을 찾아가 예비자 교리를 시작했다. 예수님을 동경하면서도 세례는 망설여질 때쯤 성지순례 일정이 잡혔고, 그 준비 과정으로 <순교자 신앙>이라는 작은 책자를 읽게 되었다. 짧은 내용이었지만 자신의 생애를 내어 주고도 기쁘게 죽음으로 갈 수 있는 삶을 보고 망설이던 세례를 받게 되었다.

연초에 35년간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기 위해서 국내 성지순례를 작정하였다. 물론 차도 없고, 동반자도 없이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가까운 곳부터 찾아가 기도하던 차에 수녀님의 안내와 인솔로 함께하는 성지순례가 되었다. 열심한 수녀님의 순교 사화 안내와 기도는 내게 은총이었다.

호남의 사도라고 불리던 유항검의 생가 터로 연못이 되어버린 ‘초남이’ 성지에서는 재산과 명예, 자신의 목숨뿐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순교함에 숙연해졌다.

부산교구의 성지 ‘죽림굴’은 더운 날씨에 높은 산을 어렵게 올라가 축축하고 무엇이 나올 것만 같았던 곳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최양업 신부님께서 박해를 피하여 숨어든 교우들과 불도 피우지 못하고 생식으로 연명하면서 마지막 편지를 쓰시며 미사를 봉헌하셨던 곳이었다.

예전 성지순례를 다니면서 느끼는 감격과 감사함이, 요즘은 함께하는 이들로 인해 반감되어서 속이 상한다. 성지순례를 통하여 “순교자들의 삶의 향기를 체험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기도 체험이 되기를”(옥현진 시몬 주교) 바라는데, 기도나 순교자의 삶을 듣고 묵상하기보다는 성지에 왔다 감을 증명하는 도장을 찍거나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이동하는 동안에도 일상적인 대화, 신자들의 뒷담화, 맛집 이야기에 여념이 없다. 잔뜩 싸온 간식으로 군것질을 하느라 성지인지 휴게실인지 분간할 수 없다.

어떤 이는 “순교자들이 무지하여 죽기가 쉬웠으리라”는 무지한 소리로 기도를 대신한다. 우리의 순교 선인들은 풍요로운 기회가 주어진 지금의 신자들보다 교리 지식과 성경에 해박했다. 자신의 수호성인의 삶을 모르면서도 예쁘고 부르기 쉽거나 생일에 맞추어 세례명을 정한다.

조선 교회의 반석이 되라고 베드로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은 신부님께서 정해주셨지만, 사제가 없던 초기 신자 광암 이벽은 조선 천주교회사에서 예언자적 역할을 하였기에 세례자 요한이라 불렀다. 형제 중에서 늦게 입교하였다 하여 정약종은 아우구스티노로, 전교를 열심히 하려고 권일신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로 세례명을 정했다.

박해시기에 쉽게 관원에게 노출되었던 이유도 모두가 천주교인이 되어 삶의 태도가 달라지고 가족뿐 아니라 신분에 상관없이 교리와 복음을 가르치고 전했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고 작은 일에도 충실하고 가난하여도 자선과 희사를 베푸는 삶, 인간으로 존중하고 서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순교자들이었다. 그런 선인들을 무지로 보는 교만한 신자들 때문에 속이 상한다.

성지순례를 잘할 수 있도록 주교회의에서 안내서를 발간하고 성지에서 도장을 찍어 111성지를 순례하면 특별한 ‘축복장’을 주는데 혼자 와서 식구 수대로 도장을 찍는 이들도 있다. 이 안내서가 생각 없는 성지관광이 아니라 은총이 충만한 성지순례의 길잡이가 되기를 확신한다는 유흥식 주교님의 당부가 무색하다.

성지순례를 통해 지난날 주님과 소원했던 나의 나약함을 굳센 신앙고백으로 다가오신 순교 선조들의 전구를 통하여 회복되기를 바라며,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의 호칭기도로 아침을 연다.

<조영숙 마리미카엘라 /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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