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um et Spes Pastoral Institute *
 
 
 
 
 
 
 
 


 



동산바치는 '정원사'라는 순수 우리말로 교회공동체를 아름답게 다듬고 가꾸자는 의미입니다.


   

교회 안에 머무르고 싶은 몸부림 <조영숙 마리미카엘라 / 수원교구>
   기쁨과희망   2017-07-12 14:52:58 , 조회 : 408 , 추천 : 89



​성지순례를 위해 새벽부터 서둘렀다. 깜박 멀미약을 챙겨먹지 않은 것이 생각났지만 앞자리를 포기했다. 일 년 반, 매월 성지순례를 하면서 중도에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다. ‘나와의 약속이요, 주님과의 약속’이라며 계속하지만 실망이 크다. 함께하는 이들 때문이다. 아침부터 좌석 문제로 언쟁이 나면 인솔 수녀님께선 매번 남의 자리를 맡아두지 말고 오는 대로 앉기를 부탁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항상 찜찜한 기분으로 출발한다. 그런데 이달엔 더 기가 막힌 일이 생겼다. 멀미로 앞에 앉겠다는 어르신에게 대꾸 없이 책만 읽던 자매에게 봉사자와 수녀님이 “이 자리에 올 자매가 못 온다니 자리에서 가방을 치우고 다른 순례객을 앉게 하자”하니, “오늘 이 친구 안 오는데 돈을 미리 낸 것이니, 비어두고 가셔야죠”라며 꼼짝 않고 오히려 수녀님께 역정을 내었다. 선착순 마감으로 대기자가 많아 수녀님께서 보조의자에 앉거나 함께 가시지 못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 못 온다는 자매들이 있어 자리를 비워달라고 양해를 구하는데 소란을 피웠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나다가 무서워졌다. 나이가 들면 저렇게 자기 밖에 모르고 이기심만으로 가득해지는 걸까? 더구나 그리스도인이요 성지순례를 가는 길이 아닌가?

일 년 반 전 성지순례를 시작한 것은 내가 지내온 세상과 교회 안에서의 봉사활동과 차이가 나서 이해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어려움을 극복하고 환갑 선물로 내게 축복장을 주고 싶어서였다. 봉사란 하느님께 무상으로 받은 은총을 되돌려 드리기 위해 무상으로 이웃에게 행하는 것이라 배웠다. 이사를 갈 때마다 신설 본당에서 봉사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내 것 네 것 없이 나누고 보태며’ 활동하였다. 그런데 요즈음엔 교회 봉사자들에게 실망이 크다. 일단 무슨 임명장을 받으면 큰 감투를 쓴 것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인사받기를 즐긴다. 성당 내 행사에 봉사를 와도 먼저 챙겨주어야 봉사를 한다. 음식을 나눌 때도 넉넉히 나눈다고 예산을 올려 많은 음식을 차리고 사제관과 수녀원 냉장고를 채우고 남는 것은 당연한 듯 나누어 챙겨간다. 봉사라고 해놓고 보상을 바란다. 아니 미리 자기 몫을 챙긴다.

본당에서 몸으로 하는 봉사가 많은 소공체는 봉사자가 없어서 공석이 많다. 전에 함께 봉사하던 이들도 성당을 멀리하고 있어 함께하자면 그냥  기도하고 있다고만 한다. 신자들이 직접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요즈음 교회 내에서 보이는 모습에 실망하여 하느님까지 의심하게 된 이들이 쉬는 교우가 되어버린다. 새로 신자가 되었다가 쉬는 교우보다 더 거부감을 보여 회두가 어렵다. 나도 몇 해 전 이런 고비가 와서 안타까운 마음에 성지순례를 시작하였는데...

특히 나이가 있고 봉사를 오래했다는 교우들의 아집과 욕심, 자기중심적 판단과 질시는 그로 대변되는 예수님마저 멀어지게 한다. 핑계 같지만 그 무리에서 벗어나고 싶다. 나 자신도 알게 모르게 그럴 수 있으니까. 교회가 쇄신되어야 한다고 한다. 모두들 사제들에게 칼날을 돌리지만 정작 교회의 구성원인 신자들과 봉사자들이 초기교회 공동체나 순교자들이 보여 준 복음정신으로 돌아가야 사제도 수도자도 변하지 않을까. 기계적인 주일미사 참례와 기복적인 기도, 뒷담화는 해도 사제나 수도자에게 미움 받지 않기 위해 침묵하고 묵인하는 신앙생활이 청산 되는 것이 교회 쇄신일 것이다.


<조영숙 마리미카엘라 /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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