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um et Spes Pastoral Institute *
 
 
 
 
 
 
 
 


 



동산바치는 '정원사'라는 순수 우리말로 교회공동체를 아름답게 다듬고 가꾸자는 의미입니다.


   

사목자와 평신도 <오민환 / 연구실장>
   기쁨과희망   2018-03-07 14:50:51 , 조회 : 181 , 추천 : 37



매년 사제 서품식이 끝나면 이런저런 뒷이야기를 듣게 된다. 서울 어느 본당 이야기다. 첫 미사를 봉헌한 새 사제에게 안수를 받으려고 사람들이 제대로 나왔다. 신자들이 영성체를 할 때처럼 줄지어 나오지 않았는가 보다. 그러자 제대 뒤에 있던 본당 신부가 마이크를 들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이게 뭐하는 거냐, 질서 있게 다시 줄을 맞춰 나와라.” 신자들은 자리로 돌아가 다시 줄을 맞추어 나왔다고 한다. 순간 새 사제는 얼어붙었고, 축제 같은 분위기는 싸해졌다고 한다.

본당 신부의 눈에 신자들은 예의도 없고 질서도 모르는 철부지로 보여 가르침을 준 셈이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생각났다. 맹자는 인(仁)의 단서는 상대방을 안타깝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공감능력이다. 어진 사제를 점점 보기 쉽지 않은 이유를 엿볼 수 있었다.

또 다른 새 사제의 첫 미사에서 소위 ‘아버지 신부’의 축하 강론을 듣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새 사제가 신학생이던 시절, 함께 스키 타러 다녔고 함께 술도 마셨고, 또 해외여행을 다니며 놀았는데 거기에서 사제로서의 품성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새 사제에게 보내는 축하와 격려의 강론으로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치적을 은근히 밝히는 듯 했고, 일반 신자로 앉아서 듣기에 불편한 말들이 계속 되었기 때문이다.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생각났다. 맹자는 의(義)의 발단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에 있다고 했다.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다. 불의한 시대를 꾸짖는 사제들을 점점 보기 힘든 이유가 있었다.  

단편적인 사례지만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활력을 잃은 본당 공동체가 적지 않고 주일미사 참석자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특히 청년 미사와 주일학교는 더 썰렁하다. 단지 세상이 변했다는 탓만 하기에는 너무 안일하다. 마침 올해는 평신도 희년이다. 아직도 본당에서 평신도를 사목 협조자가 아닌 군주의 신민 정도로 생각하는 사제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평신도는 더 이상 글을 모르는 사람, 비전문가로서 라이쿠스(Laicus)가 아니다. 평신도의 전문성은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활용도가 높다.

2차 바티칸공의회 <평신도 교령>은 “세상 한가운데에서 세속 일을 하며 살아가는” 평신도 사도직에 주어진 그리스도인의 고유한 사명을 강조한다(2항). 평신도에게는 “현세 질서 개선”이라는 고유한 임무가 있다. 공의회는 분명히 말한다. “평신도는 시민으로서 전문 지식과 고유한 책임감을 지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협력하며 어디서나 모든 일에서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찾아야 한다”(7항). 또 공의회는 이러한 임무를 지닌 평신도는 본당 사제와 일치하면서, “인간 구원에 관련되는 문제들은 물론, 자신과 세상의 문제들을 교회 공동체에 들고 와서 함께 논의하고 연구하고 해결”하도록 권고한다. 또 공의회는 사목자에게 평신도를 형제로 생각하고, “사도직 활동을 수행하는 평신도들에게 특별한 배려”를 하라고 말한다(25항).

아직도 한국 교회는 사제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러나 시간이 많지 않다. 사목자에 대한 불신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목자에게서 양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목자라 하기에는 힘들다. <평신도 교령>을 다시 꺼내 읽으며 사목자를 생각한다.


<오민환 /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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