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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바치는 '정원사'라는 순수 우리말로 교회공동체를 아름답게 다듬고 가꾸자는 의미입니다.


   

참혹한 죽음이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 <황태종 요셉 신부 / 제주교구 선교사목위원장>
   기쁨과희망   2018-04-09 14:43:47 , 조회 : 108 , 추천 : 19



참혹한 죽음이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
–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으며


1948년 8월 15일 우리는 드디어 해방되었다. 제주도는 일제에 항거하였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인민위원회를 구성하고 마을 향사를 사무실로 사용하면서 자체적으로 치안을 확립하고 학교를 설립하는 등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노력하였다. 40여 일의 짧은 ‘독립’을 마치고 1945년 9월 9일 미군정이 시작되었지만 초기에는 실질적으로 인민위원회에서 각 면과 마을 행정을 자율적으로 이끌어 갔다.

그러나 미군정은 점차 도청과 경찰의 요직에 일제 때의 관리를 그대로 앉히고 우익인사들을 집결시키면서 인민위원회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키워나갔고 1946년 제주에 경찰 병력이 증강되고 조선경비대 9연대가 창설되어 공권력이 강화되자 인민위원회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을 시작하였다.

1947년 3·1절 기념대회에서 소요를 진압하려는 경찰의 총탄에 주민 6명이 사망하였다. 15세의 국민학생도 총에 맞아 죽었고 젖먹이 아이를 가슴에 안은 채 피살된 엄마도 있었다. 이로 인해 민심은 극도로 악화되었지만 미군정과 경찰은 사과 한 마디 없이 주동자 색출에만 주력하였다. 젊은이들이 경찰에 끌려가 고문과 구타로 사망하였고, 서청 단원에 붙잡혀 구타당한 뒤 총살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잔혹한 탄압은 1948년 4월 3일 새벽에 좌익진영이 12개 경찰지서와 우익인사와 우익청년단체를 급습하는 무장투쟁을 불러왔다.

1948년 4월 말에 9연대와 무장대가 서로 평화협상을 맺었음에도 미군정의 무력 진압 방침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그리고 1948년 10월 17일 이승만 정부는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폭도로 간주하여 사살하겠다는 포고령을 발표하고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주민에 대한 무차별적이고 끔찍한 집단학살이 발생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는 예비검속으로 수많은 이들이 체포되어 학살당했고,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끌려갔던 이들도 즉결처분으로 사형에 처해졌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禁足)령이 풀리기까지 무려 7년 7개월 동안 고립된 섬 제주에서 3만 여명의 아빠와 엄마,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들이 무참히 희생된 참혹한 비극이었다.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이하면서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앞에 우리 모두가 꿇어 엎드려야 한다. 어떻게 비무장에 저항도 하지 않는 수많은 이들을 학살할 수 있었는지 성찰해야 하고 참회해야 하며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해야 한다.

그리고 제주 4·3 사건을 기억하며 갈등과 적대감을 조장하거나 폭력과 전쟁을 추구하려는 그 어떤 시도나 명분에도 절대로 동의하지 말며, 다시는 제주도와 한반도가 다른 나라들의 이익을 위한 전쟁터로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폭력과 전쟁에 대한 유일한 승리는 오직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전쟁을 하지 않는 것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황태종 요셉 신부 / 제주교구 선교사목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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