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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바치는 '정원사'라는 순수 우리말로 교회공동체를 아름답게 다듬고 가꾸자는 의미입니다.


   

생태계의 파괴- 십계명을 어기는 것은 아닌지 <김선화 율리안나 / 서울교구>
   기쁨과희망   2018-06-01 16:17:59 , 조회 : 59 , 추천 : 16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

얼마 전 길고양이를 주제로 글을 쓰는 친구를 만났었다. 나는 굳이 따진다면 고양이보다는 개를 좋아는 쪽이기도 했고, 주변의 길고양의 울음과 지저분해지는 환경에 불만을 가졌던 터라 ‘왜 길고양이 좋아하는지, 나와 같이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다. 그 외로 대답은 단순했다. “우리가 사는 이 곳, 이 지구가 과연 우리들만의 것인가? 함께 사이좋게 살아가면 좋지 않냐? 인간은 이 지구의 모든 것을 마치 자기 것인 양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은 아닌가?” 내 안에 큰 울림이 퍼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주인행세를 하였구나.

자본주의의 상징인 대량생산이 본격화되면서 우리는 소비시대에 빠져버렸다. 언제까지나 쓰고 버릴 수 있을 듯했던 소비는 70년 오일쇼크와 함께 지구의 자원도 영원할 수 없다는 공포가 마음속에 싹트기 시작했다. 자원은 고갈될 수 있고, 자연 파괴로 되돌아올 재해 앞에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어떤 이는 일회용품을 개발하였고, 자연환경 파괴의 주범은 후발 개발도상국에 국한시켜 제재함으로 불균형한 임시 방책에만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들은 어떠한가? 스마트폰에 미세먼지 농도를 알려주는 앱(application)을 깔고 매일 아침 울리는 미세먼지 경고음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왜 중국에서 넘어오는 오염된 공기를 막지 못하는가에만 분괴(憤愧)하며 일회용 컵에 담긴 커피를 식후마다 아무런 자책감 없이 마시고 있다.

이제 손수건은 옛 드라마의 향수어린 아이템이 된지 오래다. 우리 일상은 편리하고 언제든 손만 뻗으면 꺼내 쓸 수 있는 티슈가 있고, 물휴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리함을 포기하기엔 우린 너무 익숙해져 있으며 ‘이 정도쯤이야’라며 하찮게 여겨진다. 시장바구니는 물론 한동안 유행했던 에코백도 보기 어려운 현실, 가볍고 튼튼한 공짜 비닐봉지를 대체할 만한 것은 당분간 없을 듯하다.

얼마 전 큰 사회문제가 되었던 쓰레기 대란도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로 끝나버린 듯하다. 쌓여가는 쓰레기가 주는 불쾌감은 쓰레기 대란을 예측 못한 정부 탓, 시스템 관리 부족의 지자체 탓, 과잉 포장의 기업 탓, 쓰레기 분류를 제대로 못하는 이웃집 탓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도 서서히 생태계 파괴자에 동참하고 있음을 애써 모른 척 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는 하느님이 정성껏 만드신 생태계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 하신 이 세계를 우리는 거리낌 없이 내 것 인양 쓰고 버리는 중이다.

하느님의 창조물인 생태계의 파괴는 죄가 아닌지, 그리스도인들은 십계명에 갇힌 도덕불감증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우리의 도덕불감증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김선화 율리안나 / 서울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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