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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포와봉사(Kerygma et Diakonia)'는 사제들을 위한 강론길잡이입니다.



   

2014 <가해> 제4권-통권 95권 - 5월의 묵상과 교황방한에 대한 순교자적 성찰
   기쁨과희망   2014-05-16 18:32:06 , 조회 : 734 , 추천 : 128
홈피_선포와봉사95호(부활6주일).pdf (1.10 MB), Download : 20


찬미 예수님,<선포와 봉사> 집필자와 동료사제들
그리고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께 부활절과 5월의 인사를 드립니다.


세월호 참사를 깊이 생각합니다.


부활절이며 또 일 년 중 제일 좋은 시절, 성모성월임에도 올해는 너무 무겁고 우울합니다.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부끄럽고 죄스럽습니다. 분노가 치밀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아직도 속죄의 사순절, 주님의 수난과 죽음 앞에서 성금요일 십자가 전례를 거행하고 있는 심정입니다. 4·16 참사, 진도 앞바다에서 물속에 가라앉는 ‘세월호’를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굴리고 있던 참으로 무력한 우리 자신과 대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학생들이 대부분인 승객을 외면한 채 도망쳐 나온 선장과 선원들을 우리는 모두 꾸짖고 질타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디 그들 뿐 이겠습니까?  많은 이들이 이미 언급했지만 그 선장이 바로 나 자신, 우리 모두의 모습 그리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맨 낯입니다.
저는 문득 요한복음 8장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라고 예수님께 끌고 왔던 당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나이 많은 이들로부터 차례로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 간음한 여인을 고발한 당대 권력자들, 기득권자들을 오히려 꾸짖으신 셈입니다.

신문과 방송은 한 달 가까이 매일 세월호 참상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해경의 미숙한 대처와 무능, 해수부와 안행부, 청와대 등 정부 공기관의 안일한 대응과 거짓보고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많은 외신들은 행정 책임자인 대통령 박근혜의 냉혈적 처신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단연 JTBC가 돋보이며 특히 유가족들과 시청자들의 신뢰를 독차지 하고 있습니다.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과 유가족들의 아픔을 늘 염두에 두고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손석희 사장 기자의 냉철하고 진솔한 설명이 모두에게 공감을 주고 있습니다. 반면 거짓 언론과 방송은 외면당하고 유족들은 KBS와 청와대를 찾아가 항변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언론 방송의 회개와 청와대의 속죄, 나아가 우리 시대의 핵심적 사안인 정치적 쇄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배 침몰 사고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매우 애쓰고 있지만 권력의 시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조직이라 많은 이들의 신뢰를 받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해운업계 사무실을 압수 수색하고 유병언 회장 일가를 조사하고 있지만 정작 배가 침몰하기 직전의 황금 같은 두어 시간, 학생들과 승객들을 모두 구조할 수 있었던 그 두어 시간을 허비하고 놓친 핵심적 사안에 대해서는 두꺼비 걸음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를 제기하고 소리를 높이는 것은 한 학생이 119에 신고한 오전 8시 52분부터 배가 완전히 침몰한 오전11시 18분까지 두어 세 시간 동안 해경을 비롯한 공기관에서 구조 활동을 더욱 체계적으로 펼쳤었다면 모두 구조했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황금 같은 그 시간에 공기관이 어떻게 응답했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핵심은 바로 구조할 수 있는 이 두어 시간을 허비했다는 여기에 초점이 있습니다.

특히 2014년 5월 3일자 한겨레신문 1면과 8면에 실린 김용옥 교수의 “가만있지 말라, 분노하라”라는 격문은 참으로 우리 시대 대표적 지성인의 자기 고백과 역사적 성찰을 담은 귀한 글입니다. 제 머릿속에 맴돌고 있던 내용을 김용옥 교수가 일목요연하게 정리 종합 해 주었기에 참으로 고마운 글이었습니다. 6·25 전쟁 당시 서울을 버리고 도망간 이승만이 대전에서 서울이 안전하다고 뻔뻔스럽게 방송한 거짓말, 1592년 임진왜란 때 서울을 버리고 평양으로 도망간 선조가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을 원균의 모함으로 오히려 죄인으로 몰아 심한 고문을 가했던 어이없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김 교수는 바로 이러한 자들이 책임감 없는 거짓 지도자임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승객과 배를 버리고 도망친 선장이나 이 비극의 책임과 핵심을 늘 회피하는 박근혜 정부는 바로 다를 바 없다며 그가 바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정도라는 것임을 일갈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과연 이 나라를 지키겠습니까?.

김용옥 교수는 결론으로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애타게 챙겨주며 질서를 지킨 단원고 학생들, 그들을 보호하며 목숨을 던진 선생님들, 선박직이 아닌 헌신적 승무원들, 책임을 통감하고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라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강민규 교감선생님, 우리는 이 모습 속에서 우리 민족의 도덕성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민족 구원의 빛줄기는 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302명은 살아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선조들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다시 부활의 희망과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며 확인합니다.


순교자들을 기리며 기도합니다
- 광화문 네거리에서의 시복미사는 재고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와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저는 우리 순교자들을 생각했습니다. 8월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시어 아시아청소년대회 미사와 124위 순교자 시복미사를 봉헌하실 예정입니다. 이미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은 한국천주교 전래 200주년인 1984년 103위 순교자 시성미사와 1989년 세계성체대회 때에 방한하여 우리에게는 두 번 큰 경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큰 행사 뒤에 과연 무엇이 남았는가를 깊이 성찰할 때, 올해는 무엇보다도 순교의 참 의미를 깊이 되새기고 순교자들의 삶을 재현해야 한다고 부산의 김정수 신부님 등 많은 분들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기회에 순교자들의 죽음을 새롭게 생각하고 묵상했습니다. 김정수 신부님은 한 선배사제와 오랜 대화를 나눈 끝에 순교자들의 삶을 ‘아프다’, ‘배고프다’, ‘목마르다’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정리 종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이 제안을 듣고 순교를 시대적 관점에서 늘 새롭게 묵상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순교자들을 기리면서 세월호 참사와 희생자들과 연계하여 묵상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중에는 학생 이외에 일반 승객들도 120여명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청소년 학생들이 대다수이기에 보도와 구조 등 모든 것이 학생들 중심으로만 이루어지고, 일반 승객들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과 관심이 없었음을 일반 승객 가족 한분이 JTBC에 나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꽃다운 청소년학생들의 죽음 앞에서 저희 일반 승객들의 가족들은 뒤로 숨으면서 아무 말 하지 못했습니다. 방송과 신문은 모두 청소년 학생들 위주로 보도하고 있고, 일반 승객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는데 이 부분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은 마음이 아팠었습니다. 청소년 학생들 중심으로 물론 보도하고 모든 일을 진행해야 하지만 일반 승객들도 함께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언급했습니다.

이 보도를 들으면서 저는 미소한 사람을 기억하고 그분들을 모시는 것이 바로 주님을 모시는 것이라는 마태오복음의 25장의 말씀을 떠올리며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200여 년 전에 순교하신 우리 선조들을 생각하면서 그분들의 아픔과 죽음을 묵상했습니다. “아! 그렇구나. 억울하게 목숨을 빼앗기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셨던 우리 순교자들, 그분들의 아픔을 더욱 구체적으로 묵상해야겠구나!”하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124위 시복미사가 8월 16일 토요일 오전 10시에 광화문 광장에서 봉헌된다고 합니다. 참가인원을 20만 명 선발하여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사항을 제시한 사람들만 참석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부끄럽고 안타깝습니다. 세계 그 어디에서도 이러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권력에 짓밟히고 모두에게 경시 당하셨던 순교자들, 이분들은 200여 년 전에 이 땅에서 버림받은 불쌍한 분들이셨습니다. 이분들의 후손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건장하며 떳떳하고, 여유 있고 더러는 매우 부유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우리가 200여 년 전에 매 맞고 고통당하고 굶주리고 죽임을 당한 그 당대 참으로 아무것도 아니셨던 그분들을 이렇게 장엄하게 기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들을 기리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은 오늘 이 땅에서 그렇게 소외되고 매 맞고 고통당하고 잊혀진 작은 분들, 죽임을 당하고 있는 우리의 벗들을 찾아가 껴안고 보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200여 년 전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짓밟혀 돌아가신 순교자들을 우리는 이제 광화문 네거리에서 교황님을 모시고 미사를 봉헌하며 온 세계가 TV로 지켜보는 가운데 복자로 공경할 것이라니 참으로 감격스럽고 가슴 뭉클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 씁쓸한 지적도 있습니다. “아니! 토요일 대낮에 광화문 네거리를 봉쇄한 채 10여만 명의 가톨릭신자들이 잔치를 펼치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가?”라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평과 불만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목숨을 빼앗기면서도 아무 말 하지 못하셨던 우리 순교자들, 그분들을 기리면서 광화문 네거리에서 큰 잔치를 펼치며 많은 시민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보다는 오히려 좀 한적한 곳에서 남북의 일치와 화해를 염원하며 순교자들과 같이 아픔을 겪고 있는 분들을 기리는 것이 더욱 아름답고 뜻있는 시복미사라고 생각해 봅니다.
광화문에서의 시복미사는 중세 교회의 일종의 개선주의 그리고 봉사보다는 군림하는 교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반영할 수도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름과 삶과 정신에 적합한 시복미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순교자들을 기리며 하느님께 은총을 청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예수님,
피난길에 오르셨던 예수님,
골고타 언덕에서 벌거벗긴 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
주님과 같이 모든 것을 내어놓고
목숨까지 빼앗기신 순교자들을 겸허한 마음으로 기억하게 해 주소서.
오히려 약하고 가난한 이들과 손잡고
불의한 권력과 맞서 싸우는 정의의 사도가 되게 해주소서.
주님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꽃동네 방문은 더욱 재고해야 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온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분의 강론, 행업, 가르침이 예수님의 삶과 복음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한국 방문에는 많은 함정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선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의 1984년 한국 방문 당시는 광주 학살의 주역인 전두환이 대통령이던 때였습니다. 교황은 국제법상 바티칸 시국의 수반으로 국빈 방문자격으로 그 나라 대통령을 만납니다. 이에 때로는 결과적으로 불의한 집권자를 공인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올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에서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우려를 갖게 됩니다. 불의한 선거과정을 통해 대통령이 된 그를 결국 공인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미묘한 정치적 위험과 함께 또 다른 함정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황의 꽃동네 방문입니다. 교황님은 꽃동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황님은 꽃동네의 실체, 그 설립과 성장 과정들을 잘 모르고 계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꽃동네 방문은 교황과 꽃동네 그리고 나아가 우리 교회공동체 모두에게 훼손이 됩니다. 꽃동네의 실체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과 정신과는 전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꽃동네 문제는 그동안 교회 안팎으로부터 많은 지적을 받아왔고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이점을 주교님들은 교황님께 자세히 알려드려야합니다. 몇 가지만 예범적으로 제시합니다.

첫째, 오웅진 신부님의 사적환시에 기초한 강론과 행업은 신학적으로 큰 문제가 있습니다.
둘째, 골롬반회 모 신부님 등 많은 분들이 이미 지적하신 대로 꽃동네는 가톨릭 사회복지 정신을 따른 공동체가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병든 이들을 격리하고 가두어 놓은 일종의 큰 수용소 모형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꽃동네의 재정 운영이 투명치 않아 늘 지적을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넷째, 꽃동네는 권력과 유착하여 권력의 편에 서서, 정부의 복지지원을 독점하다시피 했답니다. 매우 부끄럽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만 최근 작은 예수회의 박성구 신부님이 장애우들과 함께 꽃동네 앞에서 이점에 대해 공개적으로 항의하고 있습니다. 주교님들이 이 내용을 조사하고 교황님께도 알려드려야 합니다.
그 외 이미 여러 차례 TV 방송과 신문 잡지 등에 많은 사안들이 고발되었습니다. 꽃동네 방문은 오히려 온 교회공동체에 더 큰 아픔과 아쉬움을 주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호소합니다.

교황님의 방한 때, 김희중 대주교님이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언급하신 대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만나 위로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합니다. 나아가 민가협, 유가협, 동아투위, 해직 노동자, 시민단체 봉사자들과 통일운동 선구자 등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들을 만나 복음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과 꿈을 지닙니다. 교황님의 방한은 가톨릭신자들과의 만남만이 아니고, 한국인 모두를 위한 만남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꿈같은 염원입니다만, 교황님이 제주 강정마을과 밀양 송전탑건설 저지 현장을 방문하셔서 평화의 사도, 자연환경 옹호자로서의 아름다운 모습을 확인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하느님! 들어주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들의 영육간 건강을 기원하며 건투를 빕니다.

                2014년 5월 14일 성 마티아 사도 축일에
                김승훈(마티아)신부님을 기리며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가족들과 함께
                함 세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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