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um et Spes Pastoral Institute *
 
 

 

 

 

   
   
   

 






'선포와봉사(Kerygma et Diakonia)'는 사제들을 위한 강론길잡이입니다.



   

2014 <가해> 제6권-통권 97권 - 교황의 방한, 감동의 사건
   기쁨과희망   2014-09-29 20:38:02 , 조회 : 700 , 추천 :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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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선포와봉사> 제6권으로 올 가해가 끝납니다. 9월 순교자의 달 끝주간과 함께 연중 마지막 때를 연계하며 올해 한해를 잘 마무리하도록 다짐 합니다. 그리고 전례력 나해와 성탄절, 나아가 2015년 새해의 희망과 꿈도 이 기회에 앞당겨 그려봅니다.

교황님이 한국을 다녀가시며 많은 것을 남겨 주셨습니다. 4박5일간의 그분의 행업에 대해 많은 이들과 언론이 예찬했습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분의 말과 행동이 진심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가슴으로 말한 분’이라고 모두 그분을 칭송했습니다. 사람은 보통 머리로 생각하고 종합하며 입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교황님은 가슴과 심장, 마음으로 말해야 함을 우리 모두에게 새롭게 일깨워 주셨습니다. 저도 많은 분들의 감동과 예찬에 공감하면서 그분의 행업을 반추하고 있습니다.



수도자들과의 대화

이에 연구원에서는 2014년 9월 1일 심용섭 신부님 주재로 수도자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백성의 소리, 민중의 소리, 시대의 소리를 듣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소수의 수도자들이 모여 사제들과 신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심용섭 신부님은 대화식으로 문제를 던지며 수녀님들의 생각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수녀님들께서 혹시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에 대하여 또는 이 연구원에서 발간하는 소식지, 잡지 등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인지, 평가 등에 대해 물음을 던졌습니다. 몇 수녀님들은 잘 알고 있다고 했고, 또 다른 수녀님들은 잘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10여 명의 수녀님 중 두 분은 교육현장, 세 분은 삶의 현장, 두 분은 본당사목, 세 분은 선교 매체 등지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었습니다.

이어 ‘수도자의 영성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핵심적 문제를 던지며 심 신부님은 수도자로서의 전적 봉헌, 철저한 내적 회개와 함께 세상을 변혁해야 할 수도자의 삶을 넌지시 암시했습니다. 17년간 로마에서 선교하고 귀국한 후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한 수녀님의 말씀은 독특했습니다. 그분은 많은 이들이 한국교회를 로마교회와 같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 지적했습니다. 그분은 오늘의 한국교회는 50년 전 또는 100년 전의 로마교회, 과거의 로마교회와 같다고 해야지 아무 설명 없이 단순하게 한국교회가 로마교회와 같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오늘의 변화된 로마교회와 유럽교회를 너무나도 모르는 무지한 발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 한국교회는 깊이 뉘우쳐야

그분은 계속 오늘의 로마교회는 변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노인들의 교회, 침체된 교회에서 젊은이들의 교회로 크게 변모하고 활성화하고 생기가 넘쳐흐르며 사제와 수도자, 신자와 젊은이 모두가 힘을 모아 신선함 속에서 새 방향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이 20세기 초반의 폐쇄적이며 답답했던 옛 로마교회, 그 모습을 표준으로 삼고, 지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로마교회와 같다는 표현은 로마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이야기하는 새롭게 변화하는 로마교회에 대한 대단한 큰 실례라고도 했습니다.

저는 수녀님의 이 말을 들으면서 신기했고, 한편 우리 한국교회가 참으로 침체되어 있구나 하며 걱정했습니다. 한국의 유교가 중국의 유교보다 더 수구적이고 더 전통적이라는 말을 들어 왔었는데, 한국교회가 바로 그러한 모습을 지니고 있구나 하며 새삼 더 깊이 고민해야 함을 생각했습니다. 틀에 갇힌 한국교회, 경직된 사고의 우리 사제들과 주교들, 수도자와 신자들은 이제 모두 예수님의 말씀, 복음의 가르침으로 되돌아가 깊이 깨닫고 쇄신해야 함도 깊이 생각했습니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세례자 요한의 큰 외침과 예수님의 복음선포를 새롭게 가슴깊이 간직해야 합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젊은이들에게 ‘깨어나라, 세상에 나가 싸워라’ 하신 시대적 증언과 요청을 우리 한국교회 구성원들, 주교와 사제들은 참으로 마음깊이 되새기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황사영 순교자를 더욱 기려야

복자가 되신 124위 가운데 황사영 순교자는 안계십니다. 황사영 순교자의 백서가 바로 생생한 순교 증언이며 시복의 근거가 된 문서입니다. 그런데 그 핵심증언자를 배제한 채 시복식이 거행되었으니, 황사영 순교자를 복자후보에서 삭제한 한국교회 담당자들의 그 비굴함과 치졸한 이중적 잣대가 황사영 순교자에게는 또 다른 칼을 들이댄 잔인한 행업이 된 셈입니다. 이에 대해 한 원로 가톨릭 언론인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황사영 순교자는 시복과 시성 절차를 훌쩍 뛰어 넘어선 초인적 존재입니다. 복자 위에 오르지 않으신 것이 훨씬 더 돋보입니다. 그의 부인 정난주(마리아)와 추자도에 버려진 두 살짜리 경한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이를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여기서 역사란 결국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물음과 함께, 기록되지 않은 또는 잊혀진 인류사, 묻혀진 많은 이야기의 보고(寶庫) 등을 생각하면 가시적 사안과 확인된 사실을 넘어, 무한히 펼쳐진 우주와 인간의 삶 전체 그리고 하느님의 신비를 새롭게 생각했습니다.


교황의 행업과는 대조가 된 염수정 교구장의 너무나 모자라고 부끄러운 언행

다른 수녀님은 교황의 방한 기간 중에 많은 언론이 교황님의 역할을 칭송한 것에 대해 큰 기쁨을 간직하고 있음을 피력했습니다. 교황님의 말씀과 행업은 너무 좋고 일치와 화해, 평화를 지향했기에 마음 뿌듯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떠난 직후 우리 한국사회에 펼쳐진 모습은 왜 여전히 이렇게 갈등과 분열 뿐 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매우 아팠다는 것입니다. 특히 염수정 서울대교구장 추기경이 이 시점에서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교황님의 말씀과 행업과는 전혀 다른 앞뒤가 맞지 않은 말을 기자들 앞에서 했기 때문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이를 크게 보도했던 사실에서 마음이 더욱 아프고 부끄럽고 분노심까지 생겼다고 술회했습니다.

교황은 치유와 일치, 기쁨을 안겨 주었는데, 어떻게 교황과 뜻을 같이 해야 하는 염 교구장이 교황의 행업과는 전혀 다른 말로, 가족과 국민 모두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며 부끄럽게 할 수 있는가 하며 반문했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연합뉴스 등 여러 기자들의 기사를 종합하면, 그날 염 교구장의 설명은 두서없는 말로 기자들의 핵심적 질문은 알아듣지도 못한 채 횡설수설이었답니다. 한마디로 그분의 말은 정리되지 않은 모자란 내용이었답니다. 뜻있는 많은 신자들은 교황님이 뿌려 놓은 말씀의 씨앗을 잘 심고 가꾸어야 할 이 시점에 오히려 그 밭을 마구 파헤친 어이없는 꼴이 되었다고 울먹이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사실 교황께서는 8월 18일 낮, 로마로 향한 비행기에서 기자들에게 당신이 가슴에 단 노란 리본에 대한 뒷얘기를 공개하셨습니다. 글쎄, 대전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난 오후, 어느 분이 내게 와서 이 노란 리본을 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교황은 ‘고통 앞에서는 중립은 없다’라는 그분 특유의 사목적 선언과 함께 그 리본을 가슴에 지녀야 할 사목자로서의 자세, 신앙인의 신념을 설파 하셨습니다. 매우 설득력 있는 사목자로서의 확신이며 예언자와 같은 실천적 선언이었습니다. 그러면 교황님께 노란 리본을 그만 달았으면 하고 말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 사람은 바로 한국정부의 관리, 외교부 직원입니다. 외교부 관리가 교황대사에게 전화를 했겠지요. 전화를 받은 교황대사는 나름대로 변명을 했을 테고,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교황께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교황님은 알았다고 하시고는 이 사실을 그 관리와 교황대사를 위해, 비행기에서 공개한 것입니다. 그래야 외교부 관리가 교황대사에게 연락했고, 또 교황대사가 교황께 말씀드린 사실이 확인될 테니 말입니다.
이와 같이 교황님은 외교적 이시면서도 참으로 지혜로운 사목자이십니다. 노란 리본을 반대하는 모든 이들, 단식하는 이들 앞에서 폭식하며 조롱하고, 비웃는 사람들, 세월호 유가족들도 양보해야 한다는 등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고 있는 모자란 우리 모두에게 남겨 주신 실천적 길잡이입니다.


의인 10명만 있다면? 실천적 주교 5명만 있다면?

또 한분의 수녀님은 얼마 전에 강릉시장이 교황님을 본받아 작은 차를 이용하며 높은 자리를 없애고 솔선수범한다는 기사를 읽고 모든 주교와 사제들도 이렇게 일처리를 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습니다. 남북의 일치와 화해를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 같은 언어를 쓰는 가족으로 설명하신 교황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한 수도자는 교회가 일치되기만 했다면, 새누리당과 정부가 아무리 분열을 획책해도 그 분열을 모두 타파할 수 있었을 텐데 하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예를 들어 밀양 송전탑 저지를 위해서 애쓰는 주민들을 찾아가 현장에서 며칠을 지내면서 얻은 교훈은 만일 밀양의 주민들이 모두 같은 뜻을 가졌었다면 이렇게 비참하게 핍박 받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밀양의 주민들이 만일 분열되지 않고 하나가 되었었다면 이라는 가정 속에서 그는 많은 기도를 올렸다고 했습니다. 분열이 바로 패배의 원인이며 분열이 바로 우리 사회 죄악의 주범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사건만도 그렇습니다. 새누리당과 청와대 등 정부여당의 자세는 언어의 유희, 말장난만을 할뿐 전혀 가족들의 아픔과 상처에 다가가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오직 가족들을 분열시키고 또 국민들과 이간시키는 이중인격자인 셈입니다. 그들은 오직 당리 당락과 정보 정략적으로만 접근하고 있습니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교회 공동체와 시민이 큰 힘을 발휘했던 것은 바로 뜻을 같이하고 한 목소리를 냈기 때문입니다. 교황의 현존은 바로 이러한 일치, 한 목소리를 내라는 권고로 재해석하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뭔들 못하겠는가’라는 신념으로 우리는 책과 교육을 합해서 앞으로 나서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수도회도 단체이고, 회원유지를 위해서 노후 문제 등과 관련,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참 신앙인은 현실적 계산을 넘어서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새삼 체제와 은총의 관계를 새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언제나 은총이 우선하는 공동체를 이룩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 수도회는 외쳐야 할 불의한 현실 속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있습니다. 꿀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그 꿀을 뱉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가 해야 한다고 외치면서 또 신앙인과 수도자가 마땅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러나 우리는 모두 “나는 아니야!” “우리 공동체는 아니야!”라는 도피적인 생각에 머물러 있습니다. 교황님은 복음인식을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살고 가슴으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실천하는 분입니다. 현재 한국 주교들 중 참으로 정의와 평화를 위해 가슴으로 살고 있는 분이 네다섯 분만 계시다면 가능할 텐데 네다섯 분도 안계신가 하는 물음도 제기되었습니다. 사제와 수도자는 모름지기 어떻게 일치와 복음의 씨앗을 심을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가난과 청빈

이와 같이 많은 문제가 있는데 그 산적한 문제 중 고구마줄기와 같이 얽힌 현실 속에서 어떤 것을 먼저 잡아 끌어내야 핵심을 포착할 수 있을까 고민하자며 심 신부님은 제안했습니다. 주교, 사제, 수도자 모두 현실적으로 분열되어 있다면 이 ‘분열을 치유하는 핵심적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분은 치유의 핵심은 바로 복음적 가난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복음적 가난은 무엇일까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교황님은 수도자와 사제들에게 수도자의 부유한 삶이 교회를 부패시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깊이 되새겨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교황의 한국 방문은 한국교회에 주신 하느님의 선물, 성령의 새로운 바람, 은총입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무엇을 해야 참으로 성령의 뜻을 이룩하는 것일까를 찾아야 합니다. 새삼 청빈 곧 실천적 가난을 되새깁니다. 해방신학에서, 실천적 가난이란 가난의 구조적 현실 즉 비참한 가난, 불의한 가난을 퇴치하고 그에 저항하는 행업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영성의 핵심을 꿰뚫어 읽어야 합니다. 정의는 과연 무엇인가? 불의와 맞서 싸우며 사회 불의에 도전하는 행업입니다. 그렇다면 수덕이란 무엇일까? 라는 물음에 대해서도 답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내적 안정이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다고 하며 세상과 무관하게 내적 평온함을 찾는 것이 도(道)라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세상과 무관한 삶, 곧 중세시대의 한계적 인식입니다.

이제는 제3의 새로운 길, 곧 정의와 수덕 그리고 도(道)가 바로 같다는 것을 종합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가난과 청빈은 불의한 부에 대한 저항 곧 저항적 가난이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사회 불의에 도전하며 자신의 원욕과 탐욕을 제어하는 수덕이 함께 할 때 영성의 풍요로움이 이루어집니다. 바로 그것이 구체적 실천 방안이며 의식 개혁이고 구체적 삶입니다. 가난은 결코 이론과 연구의 대상이 아닌 세상에 관심을 갖고 세상을 바꾸고 부정과 불의를 타파하며 아픈 이웃과 함께 하는 구체적 연대의 삶입니


생각이 다른 이에게도 감동을 주는 언행

사목연구원은 우리 모두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잘 깨닫고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매개여야 합니다. 바르게 객관적으로 접근하며 뜻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이웃에게도 감동을 주고 이웃을 설득할 수 있는 언어로 종합해야 합니다. 한 수도자는 교황님과의 만남에서 수녀님 대표가 교황님께 드리는 말씀에서 “죄송합니다. 교황님 저희들이 세속화되었습니다”라고 했는데 이는 여성의 자율성과 자존감을 상실한 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전 세계 모든 여성수도자들은 여성의 가치와 자율성을 강조하고 나아가 여성사제직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황님께 왜 그렇게 말씀했는지 매우 부끄럽다고 토로했습니다. 수도자의 삶 자체가 복음적 증언이며 존재 자체가 이웃과 함께 하는 봉사인데 ‘교황 앞에서 왜 그렇게 비굴하게 말했을까’라며 여성신학적 관점에서 의구심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다른 수도자는 물론 그 말에도 일리는 있지만 자신은 교회 공동체의 사목자 앞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부족한 점을 고백하는 것은 아름다운 용기라고 생각한다면서 사실 그 말속에서 자신의 삶을 깊이 생각하며 수도자가 되겠다고 다짐한 첫 결심, 첫 서원, 종신서원 때 그 순수함과 열정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가, 되물으면서 깊이 성찰했다고 고백하며 보완해주었습니다.

악하지만 약삭빠른 청지기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성서의 가르침, 도둑이 밤중에 몰래 오니, 늘 깨어있는 자세로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라는 가르침을 되새깁니다. 따라서 우리는 가치의 순서를 늘 바로잡아야 합니다. 무엇이 첫째인지 가난과 사랑에도 호적이 있어야 합니다. 가치의 체계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교황님의 말씀과 방문은 한낮 추억과 연기로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좋은 얘기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 좋은 말씀을 우리는 모두 각자의 것, 각자의 길잡이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핵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 수도자들은 때로는 착한 강아지처럼 주인의 말을 무조건 따르듯, 규칙과 질서, 전통의 노예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수도자로서 할 일은 참 많습니다. 수도서원 때의 다짐, 그때 길잡이로 택했던 성서말씀과 하느님 체험의 감동을 생생하게 간직하면서 자기소임에 충실할 때, 그의 증언적 삶이 이웃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자기 소임에는 충실하지 않으면서 밖으로만 뛰고 있는 자매들도 꽤 있습니다. 교황님의 가르침 속에는 진지함, 간절함, 애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또 한분의 수녀님은 이렇게 고백 했습니다.


골고타, 고난의 현장이 바로 영성의 첫자리

두 시간 반 동안 계속된 수도자들과의 대화에서 저는 사제로서 나름대로의 신선함과 힘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고민과 성찰, 자기 정체성과 공동체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고, 공동체와 역사 현실을 바꾸려는 수도자의 기도와 헌신은 바로 예언자의 삶임을 확신했습니다. 저는 이날 교황님의 방한에서 얻은 큰 힘을 각자의 자리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많은 분들의 아름다움을 확인 했습니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그중 10여 명의 신자들과 수도자들은 광화문 단식미사 현장으로 갔고, 남은 이들은 대화를 계속하며 만남의 의미를 간직했습니다. 밖에 나오니, 하늘에서는 소나기가 무섭게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하늘의 비, 무언가를 깨끗이 씻어내고, 또한 땅을 적시는 하느님의 행업, 그 비를 맞으며 광화문 단식 현장에서 사제들과 수도자, 신자들과 뜻있는 시민들은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습니다. 소나기 내리는 그날 저녁 미사는 바로 2000여 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골고타 언덕 바로 그 현장이었습니다.

하느님,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신부님들의 영육간 건강과 건투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축일에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가족들과 함께
                    함  세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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