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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면 생각나는 사람들 <함세웅(아우구스티노) 신부 / 서울교구>
   기쁨과희망   2019-05-08 15:56:28 , 조회 : 62 , 추천 : 4




5월은 성모님의 달입니다. 그런데 1980년대 초 어느 5월에 신학생이 면담을 청했습니다.
“신부님, 성모성월 성가를 도저히 못 부르겠습니다. 이 5월이 어떤 5월인데 ‘성모성월이요 제일 좋은 시절’이라고 성가만 부르고 있습니까? 제 피가 솟구쳐 오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신학생의 손을 잡고 침묵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 순간 저는 또한 옛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당했던 수모와 함께 고문에 못 이겨 소리치며 신음하던 청년, 학생들을 십자가 예수님의 고통과 함께 연계해 묵상했습니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십자가 고난의 현장이었습니다. 그 5월 중순, 금남로 가톨릭센터 6층 집무실에서 윤공희 주교님은 금남로 거리를 내려다 보시며 큰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무장한 군인들이 청년, 학생, 시민들을 마구 짓밟고 때리고 끌고 가는 장면을 목격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군인들에 맞서 어머니들이 쫓기는 학생들을 돕고 구하고 숨겨주는 장면도 보셨습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무서운 폭력의 현장이었습니다. 이 순간 윤공희 주교님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떠올리며 반성하셨습니다. “아, 내가 얼마나 여러 번 이 말씀을 묵상하고 신자들에게 강론을 해 왔던가? 그런데 강도 당한 사람을 외면한 그 사제가 바로 나였구나”라고 깨달으셨다는 것입니다.

주교 복장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가슴에 모신 십자가를 움켜잡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바로 강도 당한 사람을 외면한 채 지나쳤던 그 사제임을 이제야 깨닫고 고백합니다. 저 길거리에서 군인들의 폭력에 매맞고 짓밟히고 죽어가고 있는 청년 학생들을 저는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저 군인들에 맞서 항거하며 피신시켜 주는 강인한 여인들이 바로 우리 시대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임을 확신하고 고백합니다. 부끄럽습니다. 하느님, 용서해주십시오.” 그리고 주교님은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며 끊임없이 화살기도를 바치셨습니다.

그해 저는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에서 두어달 고초를 당한 뒤 풀려났습니다. 그 뒤 어느 날 저는 이 사실을 한 수도자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윤공희 주교님께서 그해 가을 전주교구 사제 수도자 모임에서 고백하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듣고 윤공희 주교님은 참으로 살아 계신 진실한 사목자임을 확인했습니다.

1980년 광주의 비극을 몸소 체험하신 주교님께서는 그 근처 군부대에서 건강을 위해 즐겨치시던 골프를 끊으셨습니다. 그 군부대 영창에 사제들이 갇혀있었기 때문입니다. “교구장인 내가 어떻게 건강을 위한답시고 사제들이 고난받는 그 현장에서 골프를 칠 수 있겠는가” 하면서 단연코 끊으셨다는 것입니다. 1980년 광주는 주교님을 새로 태어나게 한 은총의 사건이었습니다. 김준태 시인은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며 광주를 껴안고 기도했습니다. 이 5월에 민족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 모두 질적으로 변해야 할 근거를 새삼 확인합니다.
순교자들과 선열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함세웅(아우구스티노) 신부 / 서울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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